유권자 중심 선거의제 발굴 숙제
이 남 표
2008 총선미디어연대 평가단,MBC 전문연구위원
18대 총선이 끝났다.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총선 결과의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총선 역사상 처음으로 투표율이 과반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과 20대 투표율이 불과 19%에 그쳤다는 사실이다. 바꿔 말하면, 특정 정치세력의 승리와 패배를 운운하기 전에 대의제 민주주의 자체가 심각한 위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투표율의 경향적 하락, 특히 젊은 세대 투표율의 충격적 하락이 우리 사회의 ‘선진화’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해석은 한참을 잘못 짚은 것이다. 흔히 말하는 ‘선진국’의 투표율은 미국을 제외하고는 일반의 상식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2005년 독일 총선의 투표율은 77.7%였고, 2006년 스웨덴의 총선 투표율은 82%, 2007년 프랑스의 대선 투표율은 84%였다. 투표일을 따로 임시공휴일로 정하지 않은 영국의 2005년 총선 투표율도 61%였다. 따라서 우리의 18대 총선 투표율 49%는 선진국의 징표가 아니라 위기의 지표인 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의 위기 요인을 딱 하나로 집약하여 꼽기는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 언론의 18대 총선보도가 그 위기를 가속화시켰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우리 언론은 유권자 중심의 선거의제를 발굴하여 보도하지 못하고 거대정당 중심의 선거의제에 총선기간 내내 끌려 다녔다.
‘2008총선미디어연대’는 ▲ 정책분석․기획보도를 늘이고, ▲ ‘동정 따라잡기식 보도’의 양과 보도비중을 줄이고, ▲ 여론조사 보도를 신중하게 하고, ▲ 특정정당에 대한 정략적이고 편파적인 편들기 태도를 중단하고, ▲ 지역관련 의제 발굴 및 바른 지역언론의 기능을 부각시키라는 등의 다섯 가지 선거보도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일부 언론사의 몇몇 시도를 제외한다면, 전체적인 18대 총선보도 결과는 실망스러운 수준이었다.
3월말 총선후보자 등록이 시작될 때까지 언론은 줄곧 거대정당의 공천소식만을 쫓아가기에 급급했다. 이후 총선 당일까지는 지역구별로 이른바 ‘여론조사’에 근거한 경마식 당선자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유력정당의 유력후보들에게는 더 없이 친절한 보도였겠지만, 먹고 살기에 바쁜 시민들이 현실적으로 절박한 자신의 이해관계를 토대로 후보자들의 정책․공약을 꼼꼼하게 비교하기에는 더 없이 불친절한 보도였던 것이다.
유례없이 낮은 투표율은 유권자인 시민들의 정치적 냉소의 표현임에 분명하지만, 그 아래에는 짙은 정치적 무력감이 깔려 있다. 도대체 어떤 정당의 어떤 후보자에게 표를 던지면 자신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다수의 유권자들이 철저하게 회의했던 것이다. 그리고 정확히 이 지점에 선거에서 언론의 역할과 정책보도의 중요성이 자리한다. 유권자들에게 정녕 필요한 정보는 자신의 지역구에서 누가 얼마나 앞서고 있느냐가 아니라 어떤 정책과 공약이 자신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느냐다.
어쨌든 18대 총선은 끝났다. 그리고 이제부터 정작 중요한 문제는 왜 언론이 정책보도에 인색할 수밖에 없는가, 정책보도를 가로막고 있는 구조적 요인은 무엇이었는가를 곰곰이 따져보는 일일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장의 언론인과 총선미디어연대가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