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컴퍼니가 들춰낸 iTV와 이수영 회장의 ‘추억’

[칼럼] 페이퍼컴퍼니가 들춰낸 iTV와 이수영 회장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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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가 파헤치고 국내 ‘뉴스타파’ 취재진이 끄집어낸 일부 재벌의 역외탈세 논란이 뜨거운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5월 22일 뉴스타파는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ICIJ와 ‘조세피난처 프로젝트’를 진행,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 계좌 보유 한국인 명단을 공개하며 해당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한국인이 모두 245명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명단에 익숙한 이름이 등장했다. 바로 OCI의 이수영 회장이다.

OCI는 1959년 8월에 설립된 ‘동양제철화학’을 전신으로 하는 기업으로서, 현재 OBS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는 iTV의 대주주였던 회사다. 그리고 당시 동양제철화학은 이수영 회장이 이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이 대목에서, 2013년의 역외탈세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새삼 이수영 회장이 추억되는가. 그 진짜 이유를 현재의 OBS에서 찾아내기 전에, 일단 과거로 가보는게 순서다.

   
 

1997년 10월, 서울과 근접해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상대적인 문화 박탈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경인 지역에 iTV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당시 iTV는 다른 지역 민영방송사와 달리 100% 자체 편성과 제작을 천명하는 한편, 올바른 지역 문화 발전을 모토로 한다는 긍정적인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지역민들의 기대와 관심은 상당했다.

하지만 그러한 성원을 바탕으로 탄생한 iTV가 순탄한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100% 자체편성 및 제작을 하려면 최소 1,000억 원의 자본금을 보유해야 했으나 자본금 400억 제한 규정에 걸려 개국 당시부터 ‘임대와 리스’를 전전해야 했으며 김영삼 정부 시절 닥친 IMF의 직격탄을 맞으며 크게 휘청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협소한 권역으로(경인지방) 광고 단가 자체가 낮은 데다 이마저도 제대로 유치하지 못해 iTV는 만성적인 재정 불균형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진정한 고통은 대주주인 동양제철화학과 노조의 반목이었다. 당시 동양제철화학은 IMF 및 자금 부족을 이유로 개국 4개월만에 인건비 30%와 제작비 40%를 삭감했으며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해 많은 직원을 내보냈다. 그런데 동양제철화학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iTV 권역확대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노조로부터 정치와 언론의 유착에만 관심을 쏟기 시작했다는 비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 와중에 적자는 쌓여만 갔으며 iTV 노조는 정치와 밀접한 관계를 맺은 사장을 영입하는 대주주에게 공공연한 불만을 내보였다.

본격적인 파행이 감지된 것은 2004년이었다. 2004년 초, 일명 ‘PSE 프로젝트’ 사건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대주주와 iTV 노조의 다툼이 다시 격렬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iTV는 자사 회장을 메인 뉴스에서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보도를 내보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으며, 박상은 전 회장이 전격 퇴진하는 일이 숨가쁘게 벌어졌다. 또 방송 역사 초유의 파행방송 사태와 파업이 연이어 벌어졌으며 iTV의 미래는 어두운 터널로 끌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물론 2002년 노사합의로 개혁위원회를 출범해 최소한의 협상 채널은 가동되고 있었지만, 2004년에는 이러한 노력도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계양산 DTV 중계소 허가와 역외재송신 허가 등 iTV의 숙원사업이 하나, 둘 씩 이뤄지고 있었지만 말이다. 불길한 전조곡이었다.

그리고 결국 2004년 12월 31일 iTV는 결국 TV 방송을 중단했다. 방송사가 문을 닫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셈이다. 동시에 iTV 노조원들의 끈질긴 자구노력과 열정도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2001년부터 사실상 iTV를 포기한 동양제철화학이 7년 사옥 임대료 250억을 꼬박꼬박 챙겨가는 사이, 개국 당시부터 누적되어있던 장비 리스료 268억 원을 스스로 갚은 iTV의 저력이 신기루처럼 흩어진 것이다.

   
 

하지만 경인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문화 미디어의 동력은 살아있었다. 그리고 그 동력은 2007년 12월 28일 OBS 개국이라는 성과로 결실을 맺었다. 2006년 4월 28일 경인 지역 지상파 방송 사업자 선정에 이어 5월 29일 정식으로 개국 준비단이 발족되고 8월 29일 창립총회, 다음날 30일 법인이 설립되는 등 착실한 준비와 새로운 지역 미디어의 부활을 염원하는 마음이 모인 쾌거였다.

그러나 2013년 현재, OBS의 미래는 마냥 낙관적이지 않다. 미디어렙 문제부터 시작되어 경영난, 그리고 파업에 이은 대주주인 영안모자와 노조의 불화. 얼핏보면 iTV의 가슴아픈 과거가 다시 되풀이 되는 것 같은 짙은 데자뷰를 느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역외탈세 논란의 중심에 선 동양제철화학의 후신인 OCI의 이수영 회장은, 그 자체로 이름모를 ‘추억’에 젖게 만든다. 참고로 OCI는 역외탈세를 부정하는 한편, 사실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했기 때문에 추후 진실관계는 시간이 지나야 알겠지만, 유난히 혹독한 2013년을 맞이하는 OBS의 현재와 더불어 이수영 회장의 재등장은 그 자체로 묘한 상념에 젖게 만든다. 이유는 간단하다. 과거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 역사이며, 현재이자 미래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