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의무재송신 및 재송신료 현안을 두고 이해 관계자들의 진영논리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겉으로는 연대의 결속과 해체를 의도적으로 노출하면서 실상은 ‘플랜 B’를 통한 정교한 두뇌싸움이 대리전 양상으로 숨 가쁘게 전개되는 분위기다. 그리고 이런 ‘대결모드’는 4월 9일 지상파와 일부 케이블 회사의 극적인 재송신 계약을 기점으로 더욱 고조될 조짐이다.
현재 지상파 의무재송신 및 재송신료 현안의 최대 고비인 일부 케이블 회사의 블랙아웃 위기는 잠정적으로 넘긴 상황이다. 지상파 방송사와의 재송신 협상을 끌어가던 티브로드와 현대HCN이 결국 CPS 280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격적인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것이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내리는 분석이다. 우선 여론전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티브로드와 현대HCN이 지상파 방송사와 재송신료 협상을 벌이며 치열한 여론전을 벌였다는 의혹을 거두지 않고 있다.
실제로 두 케이블 회사가 법원에 간접강제금 이의신청을 제출한 당시, 각 언론은 일제히 ‘지상파의 고집으로 재송신료 협상이 난항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결과적으로 이는 절묘한 신의 한 수였다. TV 블랙아웃 상태가 벌어진다면 당연히 그 원흉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거세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협상 난맥의 원흉을 지상파로 돌리기만 한다면 재송신료 협상에 있어 상대적인 우위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TV 블랙아웃이 벌어지면 지상파는 물론 플랫폼 사업자인 유료 방송 사업자의 타격도 엄청나기 때문에, 실제로 유료 방송 사업자들이 지상파 방송사가 내세운 협상 결과를 전향적으로 검토하는 한편, 고의적으로 협상이 난항에 빠졌다는 의견을 언론에 흘린 일종의 ‘투 트랙 전략’으로 보고 있다. 물론 여기에 대한 논의는 전략적인 접근방식으로 재단할 수도, 혹은 결과론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티브로드와 현대HCN은 ‘플랫폼사업자공동대책위원회’의 중론을 따라가면서도 계약 후발주자로서의 조급함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케이블 회사는 결국 지상파 방송사와 재송신 계약을 맺었다.결론이 정해진 상태에서 전략의 충돌만 요란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부분이다.
다음은 논쟁의 공이 넘어간 ‘국회’와 ‘미래창조과학부’, ‘방송통신위원회’다. 현재 지상파 의무재송신 및 재송신료 협상은 일단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의 방송법 개정안으로 커다란 변곡점을 그릴 예정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새정부 초기, 지상파 방송사에 대한 통제권을 가지기 위해 ‘지상파 길들이기’의 일환으로 방송법 개정안이 진행되고 있다는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논의의 핵심은 정부가 지상파 의무재송신 확대라는 ‘채찍’과 ‘수신료 현실화’라는 당근을 번갈아 내세우는 대목에서 더욱 증폭되고 있다. 실제로 이경재 방통위원장 후보자는 수신료 현실화를 지상파 의무재송신 논의와 함께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여러번 피력한 바 있다.
여기에 남경필 의원을 필두로 청와대와 국회가 유료 방송 지원을 통한 ‘창조경제’에 정책적 역량을 집중하게 되면 문제는 의외로 단순해진다. 유료 방송 업계의 진흥을 통해 경제의 성장동력을 끌어 올리는 한편, 지상파를 통제하는 수단과 혜택을 번갈아 활용하며 ‘길들이기’에 성공하겠다는 복안인 셈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수신료 현실화가 과연 진정한 현실화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과 더불어, 공민영의 경계가 모호한 MBC 문제도 걸려있어 어려운 문제가 될 전망이다. 여기에 방송 정책이 미과부와 방통위로 나누어 진 부분도 ‘포인트’다.
현재 대부분의 언론들은 지상파의 각개격파에 재송신료 협상에 임하는 유료 방송 사업자들이 굴복하고 말았다며,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는 식의 보도를 하고있다. 하지만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일 뿐, 실상은 조금 다르다. 새정부의 유료 방송 사업자 진흥 정책과 지상파에 대한 정부의 통제 욕망이 교묘하게 일치하며 결국에는 재송신료 협상 단계에서 콘텐츠의 지적 재산권은 포기당하는 한편,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유료 방송 사업자들이 승리의 깃발을 가져갈 공산이 높다. 그 어느 때보다 ‘진정한 무료 보편의 공공 미디어 서비스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눈을 크게 뜨고 감시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