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일부터 시작되는 채널재배치 이후, 이제 방송과 통신 업계의 관심은 700MHz 대역 주파수 할당에 쏠릴 것으로 예상된다. 당연한 수순이다. 주파수 광대역화를 노리는 통신 3사의 이전투구는 700MHz 대역 주파수 통신 할당이라는 명분아래 급속도로 정리될 것이며 이에 맞서는 방송계의 논리도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감히 ‘전쟁’이라는 표현을 쓰기에 아깝지 않은 700MHz 대역 주파수 할당전(戰)이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다. 현재 많은 언론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모바일 광개토 플랜 2.0을 지상과제로 천명하며 심각하게 모바일 트래픽을 걱정하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단면에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진실들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제 주파수는 공공의 재원이며 모든 주파수를 통신사에 몰아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틀에 박힌 이야기도 지치고 전 세계가 700MHz 대역 주파수를 통신에 쓰고 있다고 말하지만 전파가 도달하기 어려운 70% 산악지형과 방송에 228MHz 폭만 할당한 대한민국의 특수성을 납득시키는 것은 아무도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미국식 디지털 전송방식의 폐혜를 설명하기도 힘이 든다.
대한민국은 IT 강국이라더니, 정말 통신 IT 강국에 걸맞는 상황인식들을 가지고 있음에 놀랄 뿐이다. 대단한 전문가들 나섰고, 대단한 통신 사랑주의자들 나섰다. 이들에게 공공의 영역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이 와중에 ‘통신 바라기’를 자처하는 한 고위 공무원이 주요 학회를 움직여 여론전까지 시도하는 것을 보면 방송의 플랫폼적 공공성을 믿는 필자가 마치 악당처럼 느껴질 정도다.(뉴스 및 프로그램의 공공성과는 별개다)
그러나 포기할 부분은 포기한다고 해도(사실 포기한 것은 아니지만) 700MHz 대역 주파수 통신 할당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꼭 묻고 싶은 말이 있다. 바로 “진정으로 통신의 발전이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다고 믿느냐”고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들은 통신의 발전이 지상과제이며, 이러한 발전을 추진하는 일에 있어서 방송의 몰락은 “어쩔 수 없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피해”쯤으로 인식하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본 고에서는 ‘절박함, 기회비용, 자격’이라는 3가지의 키워드로 주파수 문제를 바라보려고 한다.
700MHz 대역 주파수의 ‘절박함’, 즉 ‘필수’로 돌아와 보자. 과연 통신에 해당 주파수가 절실하게 필요한가? 그건 절대 아니다. 최근 통신사들은 다양한 영역의 주파수를 흡수하고 있다. 위성 DMB는 물론 국방부가 활용하던 주파수까지 모조리 빨아들이고 있으며(방통위는 부정하고 있지만) 와이브로 주파수까지 삼켜버릴 기세다. 충분히 주파수를 확보하고 있으며, 다양한 영역의 주파수를 가지고 간다는 뜻이다. 물론 주파수라는 재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기는 하겠지만, 그래도 이익을 추구하는 통신사가 너무 광대한 주파수를 확보하는 것은 다양한 산업의 고사를 의미한다는 점에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이에 반해 방송은 주파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디지털 전환 이후 방송이 활용하는 228MHz 폭은 전 세계 유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부족한 실정이며, 이대로는 제대로 된 방송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그나마 숨통을 틔워줄 700MHz 대역 주파수를 통신에 할당하는 부분은 심각한 결격사유일 것이다. 그렇다. ‘필수’적 영역에서 주파수 할당 여부를 살피면 단연 방송의 활용에 무게가 실린다. 난시청 해소와 UHDTV를 상기하길 바란다. 특히 ‘난시청 해소’를.
하지만 냉정한 현대사회에서 단순히 ‘절실함’이라는 감정적인 이유로 대세를 그르칠 수 없는 법.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분은 잠시 미뤄두고 사회 전반의 기회비용을 따져보도록 하자. 해당 주파수를 통신이 가져간다면? 아니면 방송이 가져간다면? 이 대목에서 통신은 산업적 낙수효과를 주장하고 있으며 방송은 공익적 파급효과를 내세우고 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사실 애당초 성립되지 않는 문제제기다.
역사에서 배워보자. 지금까지 정부가 대기업 중심의 지원 정책을 펼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대기업이 성장하니 그 파급효과를 이어 받아 소시민들도 풍족해 졌는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차라리 이 문제를 공익적인 부분에서 풀어놓아야 하는 당위성을 가진다. 수치와 숫자로 만들어진 환상에 또 속을 생각인가.
마지막으로 주파수 할당 당위성의 노력여부다. 막무가내로 주파수를 달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그 주파수를 할당받을 자격이 있는지 검증해 보자는 뜻이다. 먼저 통신사. 최근 통신사들은 무제한 음성 통화가 보편화되기 시작하면서 모바일 IPTV에 승부를 걸기 시작했다. 그리고 모바일 IPTV의 동영상 서비스를 강화해 데이터 요금으로 수익을 창출하려고 한다. 아주 노골적이다. 통신사는 ‘수익’을 거두기 위해 모바일 IPTV 동영상 서비스로 가입자를 유인하고 데이터를 ‘펑펑’ 쓰게 해 돈을 벌겠다는 복안을 숨기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통신사들이 모바일 IPTV 발전에 나선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할 때, 필자는 필자의 귀를 의심했었다. 무제한 데이터 요금제가 왜 문제가 되는지 아직도 모르니 말이다.
여기 두 명의 상인이 있다. 그런데 나라에서 “국민의 재산인 금광산이 있다. 이걸 적극적으로 활용해 풍족한 나라 만들기에 일조하려고 너희 두 상인에게 맡길텐테, 국민의 재산이니까 최대한 많은 국민에게 도움이 가는 방향으로 쓰도록 해라”고 채굴권을 줬다. 그런데 한 명은 금광산의 금을 마구 채굴해 그 금을 국민에게 팔아 장사를 해 큰 돈을 벌었고(일설에는 무제한 ‘금요금제’를 출시해 마그마까지 파고 들어가 금을 파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한 명은 채굴한 금으로 수도와 가스 등 사회 인프라 구축을 했다.
자, 여기서 누가 통신이고 누가 방송일까? 설마 금을 마구 채굴해 장사를 한 상인을 치하하며 ‘금을 시장에 풀었으니 경제가 좋아졌을 것이다’라고 박수를 치는 노예근성의 사람은 없을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 주파수 정책도 마찬가지다. 가장 기본에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쉽고 확실하지 않은가. UHDTV 및 난시청 해소와 통신 기술의 발전은 그 자체로 이미 공익과 사익의 싸움이다. 허상을 걷어버리고 냉정하게 판단하자면, 당연히 모두의 이익을 위해 주파수가 활용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아주 쉬운 문제다. 주파수 정책 이원화부터 협의회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가치. 바로 공익성으로 700MHz 대역 주파수의 용도를 정하자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변수는 있다. 지난 2011년, 제주도 세미나에 참석한 필자는 한 고위 공무원의 발언에 기겁을 했었다. 당시 그 공무원이 말했다. “이제 공익적 가치는 방송에게 없어요. 통신이 공익입니다. 우리가 뉴스를 보거나 재난 상황을 확인할 때 다들 스마트폰 보잖아요? 통신이 공익적 가치를 구현하는 시대입니다”라고…사실 이렇게 나오면 할 말 없다. 동시에 그 공무원이 민영화 제일주의를 꿈꾸는 일부 관료들의 단상과 겹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단순한 비약이길 진심으로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