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파수 패러다임 전쟁이 시작된다

[칼럼] 주파수 패러다임 전쟁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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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조직 개정안이 속도를 내며 미래창조과학부가 베일을 벗고, 새로운 방송통신위원회도 자리를 잡기 시작하면서 주파수 정책을 둘러싼 논의도 뜨거워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소위 ‘친통신 언론’이라 불리는 일부 전문 매체는 이원화된 주파수 정책을 성토하는 한편, 전 세계 700MHz 대역 방송용 필수 주파수의 통신용 활용을 언급하며 압박의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물론 이들은 예시를 들어가며 ‘주파수 정책의 갈라파고스’라는 단어를 빼놓지 않는다. 과연, 대한민국의 700MHz 대역 방송용 필수 주파수가 ‘갈라파고스’가 될까.

   
 

우선 첫째, 친통신 언론이 내세우는 700MHz 대역 주파수의 전 세계적 통신 할당의 근거제시가 근본적으로 타당한지 검토해야 한다. 우선 해당 주파수를 전 세계가 무조건 통신용으로 활용하는 것도 아닐뿐더러, 세계적 추세가 우리의 제반환경과 크게 다르다는 점도 확실히 인지해야 한다. 당장 방송용 주파수의 활용을 보자. 현재 많은 국가들은 주파수 하나로 모든 방송구역에 방송신호가 전달되는 SFN 방식을 쓴다. 이는 주파수 효율면에서도 뛰어난 효율성을 가지며, 적은 주파수로 충분히 방송을 운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하나의 주파수가 아닌, 많은 주파수를 활용해서 방송신호를 전달하는 MFN 방식을 쓰고 있다. 당장 주파수 효율성 부분에서 심각한 결함이 야기된다. 여기에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한민국은 산악지형이 70%에 육박한다. 이런 상황에서 전파가 잘 도달하는 평지로 이루어진 국토에 효율성이 높은 SFN을 사용하는 다른 나라들이 700MHz 대역 주파수를 통신용으로 활용해도 문제가 없다는 점을 우리나라에 강제로 대입시키면 곤란하다. 외국이 ‘효율이 높은 주파수 전송 방식과 평지가 많은 지형을 가진 나라’라는 것을 간과하고 무조건 그들의 방식을 따라가는 건 문제가 많다는 뜻이다.

그래서 역으로 이러한 불리한 조건을 가진 대한민국은 700MHz 대역 주파수 108MHz 폭이라도 방송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참고로 ‘대한민국도 SFN 방식을 쓰면 문제가 해결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답하고 싶다. ‘가전제품 회사의 입김에 휘둘린 2000년 중반의 정부는 SFN 방식 적용의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고.

두 번째는 현재 방송용 주파수와 통신용 주파수의 상대적인 불균형이다. 현재 통신사들은 320MHz 폭에 달하는 주파수를 쓰고 있지만, 방송은 디지털 전환 이후 228MHz 폭만 활용하게 된다. 심지어 228MHz 폭을 산출한 방통위의 근거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주파수 간섭 등에 따른 이유로 출력을 올릴 수 없는 송신소의 수치를 왜곡하면서까지 이들은 방송에 228MHz 폭만 할당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통신에는 ‘모바일 광개토 플랜’이라는 미명으로 막대한 가용 주파수를 모조리 몰아주려 하는 것이다. 3세대, 4세대 이동통신 시절 소위 ‘무제한 요금제’를 도입해 자사의 이익을 위해 현존하는 대부분의 주파수를 빨아들이는 통신사와는 달리, 엄연한 공공재로서 미디어의 근간을 이루는 방송의 인프라는 지금 이 시간에도 위험하게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는 방송용 주파수를 마구 훼손해 너덜거리게 한 정부 관료들의 무책임함과, 자사의 이익을 위해 무제한 요금제를 남발하며 가용 주파수를 모두 손에 넣어 종국에는 주파수 산업 자체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 통신사의 책임이 막대하다.

대한민국의 방송 주파수 인프라는 열악하다. 친통신 언론이 언급하는 외국처럼 주파수 효율이 높은 SFN 방식도 아니며, 국토의 대부분도 주파수가 도달하기 어려운 산악지형이다. 여기에 320MHz 폭에 달하는 주파수를 활용하는 통신사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비호아래 2020년까지 최대 650MHz 폭에 달하는 주파수를 더 확보한다는 방침이고, 방송은 228MHz 폭만 가지고 공공의 미디어 인프라를 구축해야 하는 기가 막힌 상황이다.

그래서 당연히 700MHz 방송용 필수 주파수의 필요성이 중요해진다. 난시청 해소와 UHDTV 발전을 위해 온전히 해당 주파수의 108MHz 폭을 활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UHDTV 역호완성을 운운하며 종국에는 700MHz 대역 방송용 필수 주파수 활용의 근거를 빼앗으려는 이들에게, 당장 사직하고 새로운 공상과학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로 참여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