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전을 준비하는 종편, ‘애정’을 가지고 감시하자

[칼럼] 장기전을 준비하는 종편, ‘애정’을 가지고 감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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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146년. 자마 전투의 영웅인 스키피오가 이끄는 로마군은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치열하게 다투어온 숙명의 라이벌, 카르타고의 성벽을 뚫었다. 카르타고인들은 이를 막기위해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이미 승패는 기울어져 있었다. 끈질기게 저항하던 900명의 카르타고인들은 신전에 갇혀 불에 타 죽음을 맞이했고 5만명에 이르는 생존자들은 전원 포로가 되었다. 이는 ‘로마는 병참으로 이긴다’는 오래된 제국의 정의를 들먹이지 않아도 완벽한 로마식 전투의 승리였다. 긴 호흡을 가지고 장기전을 준비한 로마군은 대제국으로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최근 종합편성채널을 둘러싼 위기상황이 심상치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있었던 위기 상황이 말 그대로 ‘위기 상황’이라면. 지금 사람들이 말하는 위기 상황은 약간 느낌이 다르다. 끊임없이 수세에 몰려있지만 뭔가 회심의 반전 카드를 꼭꼭 숨겨놓은 불안감 이라고 할까. 근래에 이르러 종편은 상시적으로 자신들을 몰아치던 위기설에서 뭔가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수십년을 이어오며 변화무쌍한 시대적응력을 자랑하던 신문사의 저력이 꿈틀대는 느낌이다.

 

   
 

물론 표면적으로 보면 상황은 그대로다. 잦은 방송사고에 정치 편향성 논란, 선정성 논란에 질 낮은 프로그램 논쟁 등등. 여기에 킬러 콘텐츠의 부재와 천문학적인 적자폭은 늘 그래왔듯 종편의 현실을 위태위태하게 만드는것 같다. 프로그램 조기 종영에 들쑥날쑥한 편성도 악재로 꼽힌다. 낮은 시청률은 이제 말해도 입만 아픈 지경이고.

그런데 이런 건곤일척의 위기속에 종편은 예전과는 달리 크게 당황하지 않는것 같다. 물론 성급하게 재단하는 것은 무리이지만 최소한 예전과 같은 조급증은 보이지 않는것 같다. 종편 관계자들의 매체 인터뷰에서도 이는 잘 드러난다. 지금까지 종편이 자신들의 치부에 대해 변명하고 이를 합리화하기 위한 억지 수습으로 비웃음을 샀다면, 개국 8개월이 흐른 현재 이들은 담담하게 자신들의 현 상황을 이해하고 인정하고 있다. 종편 관계자가 [미디어 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개국 초기 시청자 타깃을 10~20대에 맞추었지만 이제 30~40대를 겨냥한 작품으로 승부수를 보겠다”고 전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보인다. 그렇다. 이제 이들은 치열한 전쟁과 공습의 현장에서 잠시 숨을 고르며 뒤로 한 발 물러났다. 그리고 스스로를 분석하고 치유하며 앞으로 치고 나갈 준비를 하고있다. 장기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최근 종편의 드라마 추이를 먼저 살펴보자. 아직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상황이지만 조금 더 세세하게 분석하면 이들 종편이 전략적 숨고르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금세 알 수 있다. 특히 JTBC의 경우 ‘인수대비’를 통해 시청률 3%를 찍었고 다른 종편과는 달리 지상파처럼 후속 드라마를 원활하게 로테이션하고 있다. 예능은 또 어떤가 MBN의 ‘황금알’은 2%를 찍었고 JTBC의 신화방송은 이슈까지 만들어내고 있다.

 

   
 

물론 많이 부족하기는 하다. 지금도 방송계에는 종편의 드라마 재방송이 크게 늘어나고 있지만 출연진들에게 ‘재방송 출연료’를 주지 못하고 있는 곳이 태반이며 편성도 오락가락한다고 입을 모은다. 사진 고지 없이 재방송이 나가는것도 예사일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들을 차치한다고 해도 종편이 예전의 성급함에서 벗어나 올해 하반기 부터는 시청률 상승을 위한 준비작업에 착수했음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김수현 작가의 JTBC 드라마 집필 외에도 여러 가지 킬러 콘텐츠들이 드라마와 예능에 집중되어 그 어느때보다 막강한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시청률을 잡아두는 것에는 실패했지만 대표팀 축구 중계로 인한 반짝 시청률 상승 시도를 보라. 이제 종편은 8개월 간의 시행착오를 딛고 주 시청자 연령대를 파악하며 뛰어난 콘텐츠를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와의 우왕좌왕에서 많이 벗어난 것이다. 동시에 앞을 보고 장기전에 돌입했다.

사실 종편의 킬러 콘텐츠 배치는 예전부터 해오던 말이다. 그리고 실제로 앞으로도 종편의 부활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확연히 달라진 종편의 모습, 즉 지금까지의 실패를 통해 방송 라인업을 구축하고 선택과 집중에 더욱 힘을 모은다면(각각의 종편이 드라마와 보도, 예능에) 커다란 잠재력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도 다수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4개의 종편은 서로에게 맞는 ‘옷’을 입어가고 있다. 비록 출혈은 큰 편이지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종편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이들은 장기전에 돌입하고 긴 호흡을 끌어 올리기 시작했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옷을 큰 대가를 치르며 알기 시작했고(JTBC-드라마/채널A-교양/TV조선-시사) 이제 어느정도 면역력도 생겼다. 주 타깃 시청자 분석도 끝냈고 작금의 사태에 일희일비하는 모습도 버렸다. 8개월이라는 시간은 고난과 결실의 준비를 기다리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자, 일단 상황이 이렇다. 뭐 ‘이정도 가지고 에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지만 그래도 종편이 달라지고 있는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번 정리하자.

여기서 시민이 해야할 일은? 우선 명확히 해야할 부분은 종편에 대한 정의다. ‘과연 종편을 올바른 미디어로 인정할 수 있는가?’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겠지만 지금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대다수의 생각만 믿고 코웃음만 치다가는 말 그대로 큰코다칠지도 모른다. 종편의 잠재력은 지금 시점에 이르러 꿈틀거리고 있고 그 여파는 상상을 초월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최근 여러 가지 굵직굵직한 미디어 이슈, MBC 파업 등등의 이유로 상대적으로 종편에 대한 견제심리가 많이 약화된 것은 사실이다. 물론 이 견제심리는 굳이 종편에 대해서만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미디어에 동일하게 들이대야 하는 것이지만 명백한 정치적 혜택과 이데올로기의 편향성을 의심받는 ‘종편’은 특별히 관심을 두고 지켜봐야 하는 대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훗날 종편이 건전한 사회적 이슈를 제시하고 그 역할에 충실하다면 굳이 엄격하게 눈을 부라릴필요는 없다. 이는 명백한 역차별이자 바보같은 짓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직 그 감시의 눈을 거둘때가 아니다. 특히나 이들은 장기전까지 고려하고 있지 않는가! 지상파는 물론 케이블, 종편 모두 감시의 대상이며, 신문사의 생리로 움직이는 종편에는 특히나 ‘애정’을 가지고 눈을 번득이자. 이것이 감시자로서 시민의 의무다.

추신. 그리고 여담이지만, 만약 이 부담스러운 ‘애정’에 ‘왜 우리만 가지고 그러느냐’고 푸념하고 싶다면 다시 한번 글을 정독하고, 그 다음 그들의 모기업이라 불릴 수 있는 거대 신문사가 걸어온 족적과 함께 최시중 씨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던 작년 12월 6일 위원장과 기업 광고주들과의 ‘중국집 회동’을 기억하기 바란다. 개인적으로 자장면을 참 좋아하고 국민 대다수도 그렇지만, 당시 위원장과 함께 자장면을 먹은 광고주들은 참 힘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