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했다. 물론 아직 인수위원회를 꾸리는 수준이지만, 이제 대한민국은 2013년부터 최초의 여성대통령이자 최초의 부녀대통령을 가지게 되었다.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적 이데올로기는 잠시 바닥에 내려놓자. 지금으로서는 모두가 화합해서 51:48로 나누어진 국민대분열의 시대를 화합적으로 융합시킬 발전적인 미래를 그려야 할 때다.
물론 그 화합의 선결조건에는 심각한 양극화 및 정치적-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치열한 고뇌와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철탑위에 둥지를 튼 노동자의 눈물을 닦아주어야 하고 과거의 망령으로부터 상처입은 사람들에 대한 실질적인 포옹이 필요할 것이다. 또 권위주의의 시대와 연결된 장물을 털어내야 하고 기회주의적 부역자들을 잘라내는 자기훼손의 고통을 넘어서는 한편, 공정방송을 위해 스스로를 던진 언론인들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어야 할 것이다. 정의가 실현되어야 모두가 납득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최근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다음 정부의 ‘입’에 대한 심각한 결격사유는 차치하고서라도 그 함의의 포커스를 미디어, 그 중에서도 가장 산업적인 측면으로 한정해보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아마 현 정부의 문제일 것이다. 특히 유료 방송 중에서도 케이블이 얽힌 상황은 극적이다 못해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대선이 종료되고 새로운 시대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보수 정권의 연장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직후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 김장실 의원실은 ‘유료방송 디지털 전환 활성화 특별법’을 발의했다. 이제 발의가 된 이상 적법한 절차를 밟아 공포가 될 것이고, 동시에 대한민국은 최초의 여성-부녀 대통령을 넘어 최초의 유료 방송 지원법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이 유료 방송 지원법은 스케일이 더 크다. 대한민국 최초가 아니라 ‘세계 최초’이기 때문이다.
해당 법안은 크게 유료방송에 대한 디지털 전환용 투·융자 확대, 저소득층 유료방송 가입자에게 디지털 전환 지원, 방송통신발전기금의 유료방송 디지털 전환 사용 추진, 방통위가 유료 방송 사업자가 동시재송신하는 지상파 방송사에 대해 재송신 대가의 감면을 권고, 저소득층에 클리어쾀 방식 디지털 서비스 제공 등을 담고 있다. 동시에 아찔한 기분을 숨길 수 없다. 지상파의 의무재송신 확대를 통해 지상파의 정당한 지적 콘텐츠를 아무런 댓가없이 활용하겠다고 주장하는 유료 방송과 방통위의 전략이 간신히 수면 아래로 내려간 가운데 해당 법안이 원안과 달리 방통위가 유료 방송 사업자가 동시재송신하는 지상파 방송사에 대해 재송신 대가의 감면을 권고사항으로 바꾼 것은 일견 다행이지만, 나머지 법안의 내용은 섬뜩한 세계 최초의 공포를 담아내기에 충분하다. 더불어 현 정부의 인청공항 및 KTX로 대표되는 민영화의 악몽도 강하게 일렁이는 것 같다.
우선 클리어쾀 TV 부분이다. 가장 심각하고 위험하다. 디지털 하향 평준화를 일으킨 가능성이 높은 이 플랫폼을 저소득층에게 적용한다? 여기에 대해 김 의원실과 케이블 측은 50만이라는 한정된 숫자에만 해당 기술을 접목할 것이며 기본적인 블랙아웃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로 클리어쾀 기술을 추진한다고 밝히고 있다. 좋다. 저소득층은 돈이 없으니 클리어쾀 TV로 저사양의 디지털 전환 혜택을 누린다는 찜찜한 부분은 블랙아웃이라도 막아보자는 훌륭한 취지로 어떻게든 이해한다고 치자. 그렇다면 과연 50만 가구라는 숫자는 어떻게 한정할 것인가? 이미 방통위는 업계 자율화로 클리어쾀 TV를 승인했다. 자율화는 곧 산업적 논리에 모든 것을 맡긴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렇다면 어떻게 숫자를 확정할 수 있는가?
게다가 아직 채널의 숫자와 킬러 콘텐츠의 포함 여부도 확실하지 않다. 이에 방통위는 내년 초에 세부사항을 정리한다고 밝혔지만 그때 상황이 급변할 가능성이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는가. 이 대목에서 우리는 디지털 전송방식 등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의 높은 분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미국의 사례를 떠올려야 한다. 왜 이럴 때만 고려하지 않는지.
미국의 연방통신위원회(FCC)는 1994년 현재 대한민국의 방통위처럼 클리어쾀 TV를 업계 자율화로 개방했다가 2011년 케이블 업체들의 반대로 결국 기본채널의 암호화를 허용하는 방향으로 선회한 바 있다. 이는 200여 개의 방대한 채널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사용자들이 자연스럽게 20~30개 채널을 가진 저가의 클리어쾀 TV로 유입되어 콘텐츠의 가격 하락이 심각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양방향 서비스가 불가능한 클리어쾀 TV의 특성상 디지털 전환의 혜택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상황을 차치한다고 해도, VOD 서비스를 통한 투자의 선순환 구조도 막혀버리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즉 종합하자면 클리어쾀 TV 자체가 가지고 있는 기술적 낙후에서 기인하는 ‘선순환 투자 감소’와 더불어, 클리어쾀 TV가 아무리 저소득층을 겨냥했다 해도 해당 기술 자체가 다른 계층의 사람들도 충분히 끌어들일 여지가 있다는 뜻이다. 클리어쾀 TV에 대한 내용은 이정도로 하자. 앞으로도 지면을 통해 많이 다룰테니.
그러나 한 가지 찜찜한 부분은 있다. 디지털 전환 정국 막바지에서 필자가 처음 기사를 통해 클리어쾀 TV의 ‘위협’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을 때 지상파는 물론 다른 방송 진영에서는 그 위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미를 보인 적이 있다. 심지어 어떤 이는 “지상파와 관계가 없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과론적이지만 바로 그 시기가 김 의원실의 유료 방송 지원 특별법 제정 초기단계였다. 지상파와 관계가 없어도 미디어 공공성의 원칙에 입각해 적절한 순간에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지 못한 부분은 두고두고 아쉽다. 심지어 지상파와 관계도 많다!
이 법안의 위험성은 또 있다. 바로 방송통신발전기금의 유료 방송 디지털 전환 사용 추진 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이 클리어쾀 TV와 재송신료 면제에 매몰되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인데, 방송통신발전기금은 방송통신에 관한 연구개발 사업, 방송통신 관련 표준의 개발·제정 및 보급 사업, 방송통신과 관련한 인력양성 사업, 방성통신 서비스의 활성화 및 기반 조성을 위한 사업, 공익과 공공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방송통신 지원 등 2010년 3월 제정된 방송통신발전기본법 제24조에 따라 방송통신의 진흥을 위해 설립된 분담기금이다. 그런데 이 기금을 유료 방송 디지털 전환 지원에 일정부분 활용하겠다는 것은 지나친 편향 정책이다. 무료 보편의 지상파 디지털 전환 지원에 대한 지원도 미비한 상황에서 관련 예산을 무리하게 확보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지난 여름 양휘부 케이블TV협회장이 말한 대로 정부는 정말 3조 원의 관련 예산을 편성할 것인가? 그것도 방송통신발전기금으로? 그러라고 만든 기금이 아니다.
지난 28일, 전국언론노동조합은 지상파 의무재송신 확대를 반대하며 방통위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언론노조는 “케이블 SO의 특혜를 위해 지상파 방송사의 재원을 악화시키려 하는가”라며 “블랙아웃을 막자는 취지로 공영방송 KBS의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아넣는 것은 심각한 언어도단이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리고 여기서 공영방송 KBS와 케이블 SO의 관계를 따지며 진한 민영화의 냄새를 느낀다면 너무 큰 비약일까. 물론 블랙아웃 막는 것은 중요하다.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러나 이는 클리어쾀 TV 보급과 의무재송신 확대로 미디어 경쟁력 하향 평준화와 유료 방송에 특혜를 안겨주는 방식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더 근본적인 지상파 방송사의 경쟁력 강화로 해결해야 한다. 괜히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 현실화와 방송용 필수 주파수 할당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유료 방송 지원법 및 기타 의무재송신, 재송신료 협상 등은 국가적 인프라 지원의 큰 틀에서 공영-민영의 경계선을 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민영화할 것이 있고 아닌 것이 있다. 수도 민영화까지 나오는 판국에 미디어 플랫폼의 민영화는 지나치지 않다는 것인가? 틀렸다. 더 근본적인 치유와 힐링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김장실 의원실의 법안은 산업 불균형 적 측면과 더불어 국민인 시청자에게도 걸맞지 않다.
전국 반나절 생활권을 위해 기존의 잘 구축된 유료 고속도로를 지원하는것 보다 힘이 들더라도 공용 고속도로를 지원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합당한 정의다. 하지만 이렇게 칼럼을 쓰고도 MBC 민영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현재의 정국에 가슴 한 켠이 여전히 쓰려온다. 역시 대한민국은 민영화의 왕국인가.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