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최문기 미래부 장관

[칼럼] 위기의 최문기 미래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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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기자들 사이에서 묘한 농담이 유행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통암, 미래창조과학부는 행사부’라는 말이다. 박근혜 정부 초기 방송정책의 이분화를 두고 여야가 치열한 힘겨루기를 하는 등 태생부터 요란했던 방통위와 미래부가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의외로 조용한 상태’라는 점을 비꼰 농담이다. 물론 최근 장관과 위원장의 전격 회동을 통해 700MHz 대역 주파수 및 UHDTV 연구반을 가동하기로 하는 등 나름의 성과를 거두긴 있지만 창조경제라는 거대한 틀 안에서 양 조직은 규제완화 및 대책없는 수평규제만 남발할 뿐 그 이름값을 못한다는 의견이 중론이다. 심지어 규제완화와 수평규제에도 특혜논란이 불거지며 논란이 가중되는 분위기다.

 

   
 

이 중에서 정치인 출신 친박 실세로 꼽히는 이경재 방통위 위원장이 긍정적인 산업효과에 대한 역할론을 배제한다는 전제로 나름의 정치감각을 뽐내는 사이에, 상대적으로 최문기 미래부 장관을 둘러싼 상황은 묘하게 꼬이고 있다. 거대 공룡부처의 수장으로서 한창 막강한 파워를 자랑해야 하는 최 장관이 우호적이지 않은 주변 분위기에 휩쓸린다는 지적이 연이어 나오기 때문이다.

우선 업계의 분위기다. 당장 미래부와 밀접한 연관을 맺은 통신사들은 LTE 주파수 경매 과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부부처인 미래부의 눈치를 크게 보지 않는다. 물론 그들이 반드시 눈치를 봐야 한다는 것은 아니며 미래부를 완전히 무시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부분을 차치한다고 해도 통신사들은 현재 미래부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모양새를 취하지 않고 있다. 의식하지 않거나, 혹은 커다란 기대를 거는 모습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주파수 경매 과정에서 KT가 노동조합을 동원해 집단행동에 돌입했을 때 미래부가 보여준 반응을 복기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동시에 일각에서는 불법 보조금과 관련해 통신사에 막대한 징계를 내린 방통위가 소위 ‘더 먹힌다’는 표현을 쓸 정도다.

이런 분위기는 8월 26일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안산 분원에서 열린 중소기업지원통합센터 개소식에서도 재현됐다. 당시 최 장관은 정부 출연 연구소 중소기업 지원을 최대한 실시하며 인건비도 100% 지원하겠다는 장밋빛 약속을 꺼내 들었지만 행사에 참여한 관계자들은 ‘부족하다’는 말과 더불어 호된 질책만 남발했기 때문이다. 미래부가 실시하는 정책을 업계 관계자들이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여기에 조직 장악력 문제가 있다.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8월 초 전격 경질된 최순홍 청와대 미래전략수석을 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관련 조직 장악력의 부재를 이유로 꼽은 바 있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일정 정도 예견된 부분이다. 시간을 돌려 미래부 장관 임명이 이뤄지던 때로 가보자.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초 미래부 장관에 김종훈 알카텔 루슨트 벨 연구소 사장을 임명한 바 있다. 그리고 최 전 수석과 김 내정자는 소위 코드가 맞는 해외파 인사로 분류되어 시너지 효과를 일으킬 것이라는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하지만 김 내정자는 여러 가지 구설수에 오르며 낙마해 버렸으며 이러한 김 내정자의 장관 낙마가 최 전 수석의 창조경제 개념 정립에 심각한 타격을 주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러한 타격은 조직 장악력의 부재로 이어졌으며 결국 최 전 수석은 그 외 몇 가지 사유를 더해 미래전략수석 자리에서 물러나고 말았다.

하지만 이어 등장한 윤창번 미래전략수석이 김 내정자의 뒤를 이어 미래부 수장 자리에 오른 최문기 장관의 조직 장악력에 도움이 될 가능성은 적다. 물론 두 사람은 박근혜 대통령 선거 캠프에 참여한데다 소위 코드가 맞는 인사이긴 하다. 하지만 여기에는 최 장관이 등장하는 모양새가 걸림돌로 남아 있다. 최 장관은 앞에서 언급했지만 박 대통령이 극찬을 아끼지 않던 김종훈 내정자의 후임으로 미래부 수장의 자리에 올랐다. 당장 ‘김종훈 대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자리에 오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스로 청와대의 미래전략수석이 자신의 코드에 맞는 인사로 채워졌다고 해도 ‘면이 서지 않는다’는 평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고스란히 조직 장악력 부재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최 장관의 태생적 한계가 현재의 조직 장악력 부재를 일으키는 유일한 원인은 아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더 있다는 분석이다. 하나는 공룡 부처가 보여주는 치명적인 단점, 즉 광범위한 영역을 담당해야 하는 미래부의 특성이다. 실제로 미래부는 1, 2차관 산하에 창조경제의 명목으로 방대한 영역을 품고 있다. 가끔 미래부에서 도착하는 보도자료를 보면 황당할 때가 있을 정도다. 어느 날은 원자력과 관련된 자료가 도착하더니 다음날은 케이블 정책, 그 다음 날은 중소기업 지원과 위성 정책까지. 이는 미래부가 출범할 당시부터 제기되었던 문제로서, 모호한 창조경제의 이념을 중심으로 잡다한 정책을 하나로 모아 콘트롤 타워를 만들 수 있다는 헛된 장밋빛 전망이 만들어낸 비극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최 장관 본인의 문제다. 최 장관은 잘 알려졌지만 ETRI 원장 출신이다. 정부 산하 출연 연구기관의 단체장이 하루아침에 중앙부처 장관이 된 셈이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공무원 사회는 의외로 경직되어 있으며 동시에 권위적이다. 공무원들 입장에서 최 장관의 등장은 초반부터 탐탁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는 고스란히 조직 장악력 부재로 이어진다. 물론 을, 병의 위치에서 순식간에 장관의 자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카리스마를 발휘해 조직을 장악하는 경우도 있다. 참여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을 역임한 진대제 전 삼성전자 사장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최 장관은 진 전 사장만큼의 장악력과 리더십을 보여주지는 못한다는 평이다.

지금 미래부는 총체적 난국이다. 대통령이 강조하는 창조경제의 개념을 정립해야 하는 최전선에 섰음에도 불구하고 ‘행사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미래부의 과장급 중에서는 업무 특성상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방송 직능단체 및 유관기관의 파악도 제대로 못 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 최 장관은 홀로 고군분투하며 싸우고 있지만 손과 발이 되어 주어야 하는 ‘조직’은 이미 영혼 없는 리액션만 남발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방송정책만 보더라도 단순히 수평규제 및 동일규제의 틀 안에서 특혜성 정책만 남발되고 있고 실효성 있는 무료 보편의 미디어 서비스는 방통위와의 교집합 영역에서 표류하고 있다. 최 장관의 결단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