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방송기술, 그리고 사람

[칼럼] 위기의 방송기술, 그리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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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그대로 눈부시게 발전하는 방송기술의 시대다. UHDTV 및 3DTV를 넘어 모바일과 SNS 등 새로운 플랫폼을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 방송기술은 이제 먼 미래의 일이 아닌, 가까운 현재와 과거의 흔적으로 추억될 정도다. 하지만 이러한 대격변의 시대에 방송기술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좋을 ‘방송기술인’은 자신의 위상에 걸맞는 스탠스를 가지고 있을까.

최근 방송업계에서는 변화하는 시대상에 맞춰 방송기술인의 역할과 위상을 새로 정립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방송기술의 무궁한 발전으로 인해 그 발전의 최전선에서 싸우던 방송기술인의 위상이 뿌리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동시에 방송기술인들은 간단해지고 빨라진 방송기기를 통해 자신의 전문성이 크게 위협받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이는 고스란히 실질적인 위협으로 다가왔다. 한 때 방송기술과 같은 이공계열로 분류된 ‘카메라 직군’이 영상 미학쪽으로 가닥을 잡아 측정 불가능한 인문학적 분야로 방향을 새로 설정한 것도 방송기술인의 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분위기다. ‘방송기술의 발전으로 방송기술인의 설 자리는 사라지고 단순한 오퍼레이터의 역할만 남을 것이다’는 근본적인 불안이 방송업계 전반을 뒤흔들고 있다. 특히 경영을 업으로 삼은 방송국 사측은 더욱 노골적으로.

그러나 현재 방송기술인이 직면한 문제는 이보다 더 구체적이다. 특히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며 유료 방송을 전담하는 미래창조과학부가 등장하면서 방송기술인, 특히 지상파 방송기술인들은 더욱 커다란 난관에 봉착하고 말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상파 방송 정책은 방송통신위원회가, 유료 방송 정책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전담하게 되면서 방송 정책은 크게 두 개의 경계로 쪼개졌다. 하지만 여기서 정부는 무료 방송과 유료 방송을 ‘올드 미디어’와 ‘뉴미디어’로 정의하는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으며, 이에 따라 정부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올드 미디어에 대한 산업적인 투자는 소극적으로 진행하고, 뉴미디어에 대한 산업적인 투자는 과감하게 진행하다고 천명했기 때문이다. 이는 결론적으로 최악의 선택이다. 지나친 유료 방송(정부가 생각하는 뉴미디어)의 산업적인 투자는 결국 창조경제를 달성할 원동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쳐도 자본의 미디어 환경 잠식을 불러올 수 밖에 없으며, 상대적으로 무료 방송(정부가 생각하는 올드 미디어)에 대한 지나친 산업 영향력 약화는 공적 미디어의 근간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지상파 방송기술, 그리고 방송기술인들만 커다란 위기에 봉착했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미과부의 UHDTV 및 3DTV 로드맵 발표다. 미과부는 4월 14일 방송기술 정책 로드맵을 전격 발표하며 케이블 및 위성방송을 중심으로 하는 UHDTV 활성화 정책을 선보였다. 하지만 그 로드맵에서 지상파 ‘방송기술’의 역할은 미비했다. 물론 여기에는 정부가 지금까지 꾸준하게 보여준 ‘UHDTV는 지상파에 어울리지 않다’라는 논리가 짙게 배어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부분은 차치한다고 해도 정부의 UHDTV 정책 로드맵에 지상파의 존재감이 미비한것은 공공의 미디어, 그리고 공공의 뉴미디어 정책 발전을 고려해도 악재일 뿐이다. 게다가 미과부는 유료 방송을 전담하는 정부조직이다. 여기서 또 한번 지상파 방송기술인은 무너질 수 밖에 없다.

바로 이 부분이다. 이것이 실질적인 위협이다. 방송기술은 유료와 무료 방송을 따지지 않기 때문에, 작정하고 유료 방송에 투자되는 방송기술 역량의 편향성은 심각한 미디어 분균형 현상을 야기시킬 것이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정부는 방송을 올드와 뉴미디어로 나눠버리고 기술쪽 투자를 뉴미디어 쪽으로만 집중시키려 한다. 그렇다면 방송기술은? 방송기술도 정부가 생각하는 뉴미디어에만 집중한다는 뜻인가? 그러나 이는 결국 보편적 미디어의 말살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재앙이다.

   
 

방송기술의 발전은 방송기술인의 입지를 좁게 만드는 원인일 수 있다. 하지만 오퍼레이터의 역할만으로 변화하는 방송기술의 위치가 흔들릴수는 없다. 방송기술은 미디어의 가장 기본적인 골격이며 그릇이며 발전하는 방송기술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역량이 필수적이다. 바로 이 것이 방송기술인의 역할이 흔들리다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찾아갈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다. 그리고 발전하는 방송기술에 있어 방송기술인들이 살아가는 방법이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방송기술 대격변의 시대가 와도 ‘사람’이 해야만 가능한 일은 항상 중요하게 남아있는 법이다. 그리고 발전도 ‘사람’이 하는 것이며, ‘방송기술’의 운명도 바로 이 부분에 있다. 방송기술인의 위기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셈이다.

하지만 최근 방송기술인, 그것도 지상파 방송기술인의 위기를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정부의 방송기술 정책은 불길한 먹구름을 드리우기 충분하다. 애초 뉴미디어와 올드 미디어의 분류 단계부터 유료와 무료 방송의 경계를 오가는 방송기술인들이 정책적인 결정에 참여했으면 어땠을까. 방송 기술은 유료와 무료 방송을 오가는 가교이자 ‘모든 방송의 만국 공통어’이기 때문이다. 아쉬운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