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타리 쇼크와 클리어쾀 쇼크

[칼럼] 아타리 쇼크와 클리어쾀 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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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클리어쾀 기술을 두고 말들이 많다. 전국 디지털 전환 정국을 맞아 자사의 이윤 극대화를 노리는 케이블 업체와, 그 내용이야 어찌 되었든 가시적인 디지털 전환율을 끌어 올리는 것에 몰두한 정부부처가 클리어쾀 TV를 두고 의기투합한 가운데 해당 기술 플랫폼이 과연 ‘전적으로 옳은 것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클리어쾀 TV의 맹점

현재의 디지털 전환 정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클리어쾀 TV의 성격은 꽤 특징적인 부분이 있다.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고 디지털 방송이 시작되는 격변의 시대에 그 원활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 촉매제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클리어쾀 TV는 간단한 디지털 전환 플랫폼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도 반대의 의견은 있다. 비록 클리어쾀 TV가 별도의 컨버터나 안테나 없이 내장 칩셋 하나만으로 디지털 방송을 시청하게 만든다는 ‘간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나 해당 기술은 케이블 매체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자칫 클리어쾀 TV가 활성화될 경우 산업간 불균형이 심화된다는 점이다. 물론 이를 진화론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약육강식의 논리로 설명한다면 산업간 불균형도 고려사항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불균형을 정부가 나서 추진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국민을 위한 다양한 ‘해결 방법’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절차적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유료 매체 중에서도 케이블을 제외한 위성방송과 IPTV 등은 클리어쾀 도입에 반대의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다양한 디지털 전환 플랫폼 중 하나인 클리어쾀 도입을 추진하는 것은 다른 다양한 디지털 유료 방송 플랫폼의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말살해버릴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물론 정부 주무부처인 방송통신위원회도 이러한 분위기를 감지하고 있다. 그래서 클리어쾀 기술 도입 초반 케이블과 제조사의 만남을 주선하며 의욕적으로 움직이던 방통위는 최근 ‘해당 기술의 도입은 업계 자율화에 맡긴다’는 뜻을 천명하며 한발 물러나는 모양새다. 하지만 새누리당 김장실 의원의 유료 매체 지원 법안에 사실상 클리어쾀 TV 활성화가 포함되고 방통위 전체회의에서도 해당 기술의 조속한 현실화가 그 밑바탕에 깔림에 따라 상황이 급반전을 맞을 공산은 낮아 보인다. 여기에 방통위가 각계의 반발을 의식한 듯 “클리어쾀의 대상을 저소득층으로 한정하고 그 채널 숫자를 최소화하여 반발을 무마하겠다”고 나서기도 했으나 미국의 경우 저소득층이 아닌 대다수의 시청자들이 200~300개의 채널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20~30개의 채널을 운용하는 클리어쾀 TV에 몰렸던 상황을 복기해보면 국내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동시에 클리어쾀 TV를 반대하는 이들은 이 기술이 VOD를 이용한 다시보기 및 양방향 서비스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1990년대 클리어쾀을 도입한 미국과 같이 방송 콘텐츠의 저가화가 심화되어 종국에는 미디어 산업의 대대적인 붕괴를 염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는 클리어쾀 TV가 실질적인 디지털 전환이 아닌, 절름발이 디지털 전환에 불과하다는 불만이 내재되어 있다. 하지만 어찌 되었건 상황은 클리어쾀 TV 활성화로 몰아가는 분위기다.

즉, 종합하자면 클리어쾀 TV는 디지털 전환을 쉽고 간단하게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지만 그 외에도 디지털 전환의 하향 평준화를 일으킬 공산이 큰 심각한 결함을 가진 플랫폼이라는 결론이 가능해진다. 케이블 매체에만 유리한 ‘중대한 산업 불균형 가능성’에 양방향 및 기타 디지털 전환의 중요 기능들도 구현되지 못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클리어쾀 TV이기 때문이다. 조금 어렵더라도 체계적인 계획을 세워 무료 보편의 직접수신율 제고 상승을 통한 디지털 전환 활성화가 아쉬운 대목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게임 회사의 이야기가 현재의 디지털 전환 정국의 소용돌이에서 오버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1980년대 미국의 실리콘 밸리에서 탄생한 혁신적 게임회사인 ‘아타리’다.

   
 

 

아타리 쇼크

1980년 초반, 세계의 게임시장은 소위 대부흥의 시대였다. 특히 스티븐 부시넬이 세운 게임회사 아타리는 ‘퐁’과 ‘브레이크아웃’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그 여세를 몰아 카세트를 꽂아 게임을 하는 최초의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인 아타리 VCS(Video Computer System)를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오락실에서만 하던 게임을 집에서도 즐길 수 있는 대혁신의 시대를 연 것이다. 이에 아타리의 VCS는 누적판매수 2천6백만이라는 경이적인 판매고를 올리며 당시 미국 어린이들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은 1순위에 등극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아타리의 승승장구에도 먹구름이 잦아들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이룬 훌륭한 성공에 매몰되어 점차 게임의 본질인 ‘재미’를 망각하고 단순히 게임을 많이 팔기 위한 ‘장사꾼’의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동안 자신들의 내면에 체화된 창의적 DNA를 버리고 단순히 수익을 올리기 위한 마케터로서의 모습만 극대화시킨 셈이다. 그리고 이는 세계 게임 역사상 유례가 없는 졸작 ‘E.T’로 구현되고 만다. 단순히 판매고에만 열을 올리던 아타리는 당시 영화로 제작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E.T’의 로열티를 2천5백만 달러라는 거금에 사들이고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대목에 맞추어 출시할 계획을 세운 것이다. 하지만 막대한 로열티를 지급한 아타리는 정작 게임 개발에는 투자할 자금이 모자랐다. 게다가 시간도 없었다. 크리스마스라는 대목에 게임을 출시하기 위해 경영진은 자사의 개발자들에게 6주 안에 게임판 ‘E.T’를 제작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이것이 결정타였다.

단순히 높은 수익을 위해 무리하게 진행된 아타리의 게임판 ‘E.T’는 결국 시장에서 참패했다. 한 때 세계 게임계를 호령하며 참신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업계를 주도하던 아타리의 위상이 급격하게 추락한 것이다. 유저들은 ’E.T’의 질 낮은 그래픽과 잦은 버그, 그리고 느린 게임 진행에 분노했고 대대적인 환불요구를 해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아타리도 몰락하기 시작했다. 후속작으로 발매된 게임들도 팔리지 않고 재고처리 되거나 최소 판매액에도 미치지 못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후폭풍은 아타리만 그치지 않고 게임산업의 근간을 흔들어 버렸다. 1983년 아타리는 경영상의 이유로 무려 3천 명의 직원들을 정리해고했으며 그 외 하청업체의 폐업과 감원도 연이어 벌어진 것이다.

이렇듯 한때 게임산업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아타리는 빠르게 붕괴했다. 동시에 이 사태는 단순히 지배적 게임회사의 몰락뿐 아니라 그 업계 자체의 파탄을 몰고온 악몽의 쇼크로 기억되고 있다. 게임의 본질은 ‘재미’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그저 질 낮은 상품 판매를 통해 점유율과 수익률을 극대화하려던 아타리의 탐욕이 결국 모든 것을 망쳐버린 셈이다.

   
 

 

아타리의 ‘E.T’와 현재의 클리어쾀 TV

이 부분에서 현재의 디지털 전환 정국을 바라보자. 물론 당시의 게임업계와 지금의 대한민국 디지털 전환 정국을 단순히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그러나 단순히 이익과 수익률을 위해 해당 산업의 본질을 망각하는 순간에 찾아오는 파멸의 과정은 소름이 끼치도록 닮아있지 않는가. 디지털 전환의 핵심은 ‘전 국민이 더 나은 미디어 패러다임 속에서 질 높은 시청권을 보장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제1가치를 무시하고 클리어쾀 TV라는 플랫폼을 강제로 주입한다면 이는 게임회사 아타리의 몰락을 그대로 답습하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단순히 블랙아웃을 막겠다는 일념으로, 단순히 디지털 방송을 보게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저가의 케이블 상품에 국민들을 묶어 놓는다면 결론은 파국뿐이다.

디지털 전환의 본질을 망각하지 말자. 디지털 전환은 더 좋은 미디어 환경의 구축에 그 의미가 있는 것이지 특정 사업체의 플랫폼을 이용해 ‘절름발이 전환’을 통한 물리적인 시청권을 확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타리의 ‘E.T’와 현재의 ’클리어쾀 TV‘는 묘하게 닮아있다. 본질을 망각한 수단임과 동시에 자사는 물론 업계 전반을 파국으로 이글 수 있는 시한폭탄을 장착했다는 점 말이다. 동시에 결론도 명확하다. 힘들고, 그래서 가시적인 성과가 바로 도출되지 않는다고 해도 최소한 디지털 전환의 본질을 망각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무료 보편의 디지털 전환 정책에 대한 광범위한 공감대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것이다. 아타리 쇼크로 충분하다. 클리어쾀 쇼크를 피하자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