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수 잘못 찾은 미디어미래연구소

[칼럼] 번지수 잘못 찾은 미디어미래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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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미디어미래연구소가 주관한 <유료방송산업의 미래는 있는가?>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정인숙 가천대학교 교수는 현행 의무재송신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며 더 나아가 지상파와 유료매체가 첨예하게 대립중인 CPS에 대해 “지상파 콘텐츠에 대한 대가 산정이 ‘지상파가 유료화 되는’ 상황을 가져 온다”고 비판했다. 한 마디로 정 교수의 발언은 현행 지상파 의무재송신 범주는 확대되어야 하며 오로지 시청자를 위해 지상파 방송사는 CPS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물론 이 외에도 여러 가지 근거와 주장도 많이 있다. 또한 미디어의 공공성을 주장하는 정 교수의 진심도 느껴졌다. 어쩌면 정 교수는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특정 현안에 대해 나름의 정의로 합리적인 판단을 내린 것일 수 있겠다.

우선 정 교수의 주장을 자세히 들여다보자. 우선 정 교수는 현행 KBS1, EBS을 대상으로 하는 의무재송신 범위를 더욱 확대하여 비록 논의가 필요하다는 전제이지만, 지상파 전체가 그 범위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디지털 전환과 아날로그 종료에 따라 지상파 방송의 보편적 서비스 범주에는 아날로그 채널 수신이 연장된 개념으로 지상파 디지털 전채널 서비스가 포함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는 직접 수신으로 커버되는 지상파 채널에 대해 유료매체에 대가를 받는 것 자체가 정부의 디지털 전환 촉진 정책에 역행한다는 뜻이다. 일견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리고 지상파가 국가적 보상, 즉 공영방송은 수신료, 민영방송은 주파수를 무료로 사용하는 것을 짚어내며 이에 대한 환원 차원에서라도 의무재송신 확대를 주장하고 나섰다. 물론 마지막 주장은 억지스러운 부분이 많다. 그러나 의무재송신의 확대가 시청자의 권리를 더욱 강화시키며 이는 곧 지상파의 책무를 더욱 강하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은 진실되어 보인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숭고한 뜻’이 이 비정한 세상에서 제대로 통할 가능성이 있을까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유령처럼 일렁인다는 것이다.

작년 말에 있었던 최악의 지상파 재송신 중단 사태로 시간을 돌려보자.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가. CPS를 둘러싸고 대립에 대립을 거듭하던 지상파와 케이블의 협상은 결국 좌초되었고 엄청나게 많은 시청자들이 시청권을 박탈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방송 송출 중단의 원흉이냐는 것에 있다. 협상 결과가 틀어졌다는 이유로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주체. 그리고 그 원죄의 책임을 다른 쪽으로 교묘하게 돌려버린 곳. 바로 케이블이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영업하며 난시청 해소보다는 가입자 유치에 열을 올리던 거대 MSO들이 시청자들로부터 시청권을 빼앗는 ‘엄청난 사고’를 친 것이다. 일반적인 파업도 이렇게는 하지 않는다. 특히 국가기간의 공적인 영역에서는 더욱. 그런 이유로 지상파 방송사를 비롯한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대한민국의 케이블 사업자에게 크게 실망하기도 했다. 동시에 의문도 생겼다. ‘이런 이들에게 과연 공적 미디어의 특정 부분을 맡길 수 있을까’

그렇다. 정인숙 교수는 바로 이 부분을 간과했다. 정 교수는 그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오로지 국민의 편에서 의무재송신 확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그 숭고한 뜻은 결국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유료매체의 부당한 이득만 채워주는 꼴이다. 게다가 현대 방송은 발전하는 기술만큼이나 제작비 및 기타 소요비용도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는 판국이다. 그런데 이러한 제작비용을 모조리 감수하고 지상파 방송사가 몸부림치며 만들어낸 콘텐츠를 유료매체가 그냥 가져가게 한다? 말도 안된다. 지극히 상식적인 부분에서 생각해볼때 공산주의가 아니고서야 이런 콘텐츠 유통 시스템은 현실불가능이다. 그렇다고 지상파 방송사가 공적 책무를 무시했는가? 아니다. 잘 알다싶히 직접수신가구는 CPS를 납부하지 않는다.

그렇다. 바로 이 부분이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정 교수의 주장대로라면 결국 ‘유료’매체들이 높은 제작비를 요구하는 지상파의 질 좋은 콘텐츠를 아무런 대가없이 가져가게 하는 상황만 생길뿐. 근본적인 문제해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료매체는 말 그대로 유료매체다. 그들은 난시청 해소에도 별 도움이 안 되고 국가기간의 성격을 가지는 미디어의 근간을 뒤흔들 여지가 충분히 있는, 말 그대로 ‘사기업’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올바른 미디어 스탠스는 ‘사기업인 유료매체는 올바른 CPS를 지상파에 제공하며 자신들의 유료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며, 그 외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와 올바른 방송용 주파수 확보를 통해 지상파 방송사는 직접수신률을 끌어올려 미디어의 공적인 책무를 완성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정 교수의 주장처럼 의무재송신 확대를 통한 방안은 결국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도 유료매체에 경제적 이득만 안겨줄 뿐 아무런 공적 이득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여담이지만 정 교수 주장의 허점은 또 있다. 유료매체가 지상파에 CPS를 지급하는것 자체가 정부의 디지털 전환 정책에 역행한다는 것. 물론 어느 정도 맞는 말이지만 여기에는 ‘다른 논리’가 있다. 왜 유료매체가 CPS를 지급하는 것이 직접수신률 제고에 안 좋다는 것에만 집중하는가? 그렇다. 그 문제는 덮어두고 우리는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에 주목해야 합당하다. 유료매체가 자신들의 이익을 침해당하지 않기 위해 결사반대하는 것이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가 아니던가. 이러한 단면을 보더라도 확실해진다. 정부의 디지털 전환 정책에 부응하는 것은 CPS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것이 아니라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를 육성하고 유료매체에 과하게 책정된 정부 지원의 합당한 조절에 있을 것이다.

또 사회적 환원 차원을 이야기 했는데, 공영방송의 수신료는 2,500원. 수십년째 오르지 않고 있다. 그런데 세상은 컬러TV에서 디지털TV로 변해가고 있다. 기본적인 경제학만 들여다봐도 이 수신료 책정이 얼마나 부조리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부조리를 대중의 눈치만 보며 차마 말을 못하고, 이를 혜택으로 둔갑시켜 ‘혜택을 받았으니 환원하라’는 말을 한다면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또 민영방송의 무료 주파수 이용은 제발 방송통신방전기금의 조성 근간을 살피길 바란다.

완전히 정리해보겠다. 정 교수의 주장은 뜻은 숭고하나 옳지 못하다. 의무재송신 확대가 이루어지면 자사 가입자들을 위한 유료매체의 영업 경쟁력만 제고시킬 뿐이고 공적인 부분의 미디어 존재이유는 더욱 축소될 뿐이다. 옳은 방법은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한다. 지상파 방송사는 질높은 콘텐츠 제작을 위한 최소한의 ‘수단’, 즉 ‘합당한 CPS 책정’을 보장받아야 하며 사기업인 유료매체는 이를 온전히 받아들여 자신들의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 여기에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와 700MHz 대역 주파수와 같은 실질적 수단으로 직접수신률 제고와 미디어 공공성을 구현해야 한다.

최근 N-스크린 분야에서 지상파 방송사와 중소 SO와의 협력이 더욱 강화되는 분위기다. 동시에 스마트 미디어 분야에서도 CPS 책정 논란이 일렁이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관련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미디어는 공공의 영역이며 아울러 지상파가 그 공적책무를 다하려면 최소한 ‘사기업’인 유료매체를 무상으로 지원해야 하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무료보편의 직접수신가구는 예외다. 또 N-스크린 같은 전혀 새로운 투자가 필요한 플랫폼도 다른 논리가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가 있다. 700MHz 방송용 필수 주파수도 있다. 제발 번지수를 잘못 찾아가 ‘대기업 배를 불려주는 일’만 해주고 정작 남는 것이 하나도 없는 일만 없었으면 한다. 방통위의 전향적인 결정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