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6월 11일 오전 9시 51분, 화이트노이즈만 깔리던 라디오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정승원 아나운서의 힘찬 목소리가 이어졌다. “여기는 호출부호 HLST FM 95.1MHz로 방송되는 교통방송입니다. 지금부터 교통방송의 정규방송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로부터 20년, tbs는 TV, DMB TV·라디오, 2개의 FM까지 다섯 개의 채널을 보유한 종합방송사로 성장하며 서울 시민과 함께 하는 공영방송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tbs와 20년을 함께한 기술인 세분을 만났다.
| tbs에서 방송기술인이 되다
이 : 신문 하단에 작은 공고가 났기에 우연히 봤는데 경찰청에서 ‘교통방송 준비단’을 모집하더라고요. 신선한 일이 될 것 같아서 지원했어요.
손 : 부평에 있는 경찰학교에서 필기시험을 봤는데 감독관이 다 경찰들이었어요. 실제로 97년까지 도렴동 서울시경(현재 외교부청사) 4, 5, 6층을 우리 교통방송이 사용했죠.
변 : 원래 경찰청에서 교통정보를 다루려고 관리하다가 후에 서울시로 관리 전환한 거예요.
손 : 처음에 왔을 때는 아무것도 없었어요. 스튜디오도 없고 텅 빈 공간만 있었죠.
이 : 5층까지 장비를 날라야 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었어요. 3m가 넘는 콘솔을 열댓 명이 들고 걸어서 올라가기도 했죠.
손 : 신입사원으로 들어왔으니까 시스템도 알고 공부도 해야 되는데 시설이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KBS나 EBS 가서 견학하고 서울산업대 가서 실습하고 그렇게 공부했죠.
| tbs, 첫 송출을 시작하다
이 : 초창기 때는 Full Call Sign을 아나운서가 매시 생방송으로 했어요. 그게 15~30초 되는데 엔지니어나 아나운서 모두 긴장감이 엄청났죠.
변 : 추석이나 설날에는 특별방송을 쭉 해왔는데, 그것 때문에 10년 넘게 명절에 고향을 못 갔어요. 서울타워 중계소가 가청지역이 넓지 않아서 명절이면 용문산, 청주 부모산에다가 임시중계소를 만들어서 송출하고 또 다른 팀은 만남의광장 휴게소, 중부휴게소에서 현장 스튜디오를 꾸미고 생방송을 했어요. 집에서는 내놓은 자식이 됐죠.
이 : tbs에서 가장 큰 사건이 있어요. 중계를 하러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내리막길에서 안테나 잠금스위치랑 다른 장비가 부딪혀서 안테나가 올라가버린 거예요. 지나가는 차량들도 이동하면서 생방송을 하는 줄 알고 아무도 크락숀을 안 울려주더라구요. 그래서 결국 굴다리에 걸려서 안테나가 부러져버렸죠. 다행히 안테나를 현장에서 안테나를 써야하는 상황은 아니어서 방송에는 큰 문제가 없었는데 복귀하는 그날까지 조마조마했고, 복귀해서는 국장님한테 엄청 혼났죠. 지금도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합니다.
| 시민들과 함께하는 tbs
변 : 이전에는 교통정보를 전문으로 방송해주는 곳이 국내에 없었어요. 교통방송은 개국하면서 통신원 몇백 명을 조직하고 택시 운전하시는 분들을 오디션으로 엄격하게 선발해서 리포터처럼 생방송으로 전화연결해서 현장 교통상황을 생생하게 전달했죠. 당시 통신원분들은 진짜 기자같다고 자랑들하고 다니셨죠.
이 : 거기다 분실물, 부고, 차량도난, 사고소식까지 알려주고… 획기적인 방송이었죠. 한번은 동해 사시는 분이 동대문에서 옷을 도매해가시다가 택시트렁크에 짐을 놓고 내린 거예요. 그래서 짐을 찾아드리니까 고맙다고 동해에서 오징어 한 축을 보내주신 적도 있죠.
변 : 해외출국을 해야 되는데 공항에 가면서 여권을 놓고 내렸다. 전세 계약하러 가야되는데 택시에 계약금을 놓고 내렸다. 신혼부부인데 택시에 짐 놔두고 몸만 공항에 내렸다고 하소연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이 : 택시기사나 시민들이 교통방송 많이 듣는다는 걸 아니까 길에서 뭐 잃어버리면 무조건 교통방송에다가 전화하는 거예요. 그래서 거의 70%이상 찾아준 것 같아요. 그러니까 타방송에서도 벤치마킹 해갔죠.
| 방송도 참 많이 변했다
손 : 자동화가 되니까 편하긴 한데, 안좋은 건 기억할 필요가 없어서 점점 기억을 안하게 된다는 거?
변 : 컴퓨터를 많이 쓰기 시작한건 2000년대 들어서 부터인데, 그전까지는 편성표가 나오면 편성표 대로 기기에 스티커 붙여놓고 시간마다 스위치 꾹꾹 눌러가며 세팅했었죠.
이 : 피부로 제일 많이 느끼는 건 LP가 사라지다가 이젠 CD까지 사라지고 모두 파일로 바뀌고 있다는 거죠.
변 : TR(테이프레코더)도 안 쓴지도 한참 됐죠. 옛날 같으면 녹음해서 가위로 잘라서 스카치 테이프로 붙여 쓰기도 했어요.
이 : 그러고도 한 달 정도 쓰다보면 늘어나고 이리저리 감다보니 끊기고 그랬죠.
| 다가올 20년을 생각하다
이 : PD든 기자든 기술이든 방송을 떠나게 되면 이 일을 계속하기는 쉽지는 않으니까. 자기계발에 소홀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손 : 교통방송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스마트폰이든 사옥이전이든 변화의 분위기에 잘 적응해서 방송이 좀 더 발전했으면 좋겠네요.
변 : 방송통신 융합이니 디지털 전환이니 갈 길이 멀잖아요. 잘 적응해서 다른 분야에 뒤처지지 않도록 하고 싶어요.
| 방송기술이 되고픈 후배들에게
변 : 방송과 통신이 융합되고 있는 시점이라 뉴미디어 분야의 신기술을 눈여겨 봐둬야 해요.
이 : 방송기술도 이제 전자공학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를 폭 넓게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야말로 멀티 기술인이 되어야겠죠.
손 : 방송뿐 아니라 통신 쪽도 공부하셔야 되고 PD, 기자만큼이나 사회이슈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져야 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