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더 많은 사람에게, 더 좋은 방송을 보게 하고 싶다”
인디언의 한 부족은 말의 앞과 뒤에 오는 침묵을 소중히 여겼다고 한다. 그들의 대화는 즉시 시작되지도 않았고, 결코 서두르는 법도 없었다. 생각을 위한 기다림은 중요한 사안일수록 더 요구되었다.
최근 SBS 로비에서 벌어지고 있는 피켓시위를 보면서 ‘침묵의 효과’에 대해 생각해봤다. 아직 그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침묵은 충분히 그들의 입장을 드러내고 있다. 피켓시위의 마지막 날, 한웅 SBS 기술인협회장을 만나보았다.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징계에 대해 한 회장은 “거대자본이 방송법 개정을 통해 방송에 진출하게 되면 방송은 새로운 자본을 향해 움직일 것이다. 방송이 자본에 의해 좌지우지되면 결국 그 피해는 시청자와 기존 방송 관계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된다. 이런 피해를 막기 위해 언론노조를 중심으로 파업을 강행했는데 이 부분에 대해 징계를 내린 것은 합당치 않다고 본다”며 “점심시간을 이용한 피켓시위는 이런 의사표시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SBS 직능단체들의 침묵의 피켓시위는 금요일(2월 13일)에 끝났다. 이후 일정을 묻는 질문에 한 회장은 “SBS 구성원들의 민의를 사측에 전달하기 위한 직능단체들의 자발적 피켓시위는 재심청구기간인 금요일(2월13일)까지다. 그 뒤에 벌어질 법적인 대응 등은 노동조합이 주가 되어 진행될 것”이라며 “일주일간의 피켓시위로 직능단체의 입장을 사측에 충분히 전달했다”고 답했다.
SBS 노조원 징계의 원인이 된 언론노조의 총파업은 정부․여당이 추진 중인 언론관계법을 저지하기 위한 움직임이었다. 언론관계법을 추진하는 정부․여당은 시대변화에 발맞춰 방송시장도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언론관계법을 반대하는 야당과 시민사회단체들도 디지털시대에 따른 지상파방송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시대는 지상파방송의 변화를 요구한다.
이러한 요구에 따른 지상파방송의 대응에 대해 한 회장은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답했다. 한 회장은 이어 “가장 효과적인 것은 상대방이 가지지 못한 것과 내가 가진 것을 파악한 뒤 나만이 가진 무기로 대응하는 것이다. 지상파방송의 가장 큰 무기는 전파자원이다. 지금은 이 무기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 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시기다. 그 일환으로 10년째 준비해오고 있는 디지털 방송 체계를 원점에서 검토해야 한다. 만약 더 좋고 효과적인 기술이 있다면 이전 것 대신 새것을 과감히 채택해야 한다. 계속 발전하는 기술을 ‘어떤 시점에 선택하고 탑재할 것인가’는 매우 중요하다. 상거래체계 자체가 온라인 광고 시장으로 무게 이동을 하고 있는 현 시점에선 이에 따른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는다면 낙후된 지상파는 시청자들에게 외면 받을 것이다. 특히 송출파트에 종사하는 기술자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지속적인 연구와 공부로 지상파의 정체성을 가능케 하는 송출기능이 와해되지 않도록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회장은 방송기술인들에게 “너무 일반적인 얘기지만 ‘철학을 가지라’는 말을 하고 싶다. 자신의 일에 대한 철학을 가지고 있어야 변함없이 나아갈 수 있다. 자신만의 철학 없이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대응해 나아간다면 일에 대한 중심을 잡지 못한채 휘청거릴 수 있다. 방송기술인뿐 아니라 직업을 지닌 사람이라면 이 부분을 가장 두려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당부의 말을 전했다. 한 회장의 철학을 묻는 질문에 그는 “홍익인간”이라 답했다. ‘모든 사람을 널리 이롭게 하고 싶다’는 한 회장은 “돈의 논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더 좋은 혜택을 받아, 더 좋은 방송을 볼 수 있게 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SBS 기술인협회의 향후 활동계획도 이런 한 회장의 철학과 이어진다. SBS 기술인협회는 2009년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내 차세대 디지털 방송특별위원회 활동을 중점적으로 해나갈 것이라고 한다. 차세대 디지털 방송특별위원회는 각 사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어떤 기술이 현 시점에 더 적합한지’에 대한 연구를 하고, 여러 기업체와 협력해 제주도에 테스트배드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 회장의 바람대로 2009년은 널리 모든 사람들이 더 좋은 화질의 TV를 볼 수 있는 시대로 한 발짝 더 나아갔으면 좋겠다.
한 웅 협회장(왼쪽에서 두번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