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강국에서 이 무슨 일인가

[이종화 칼럼] IT강국에서 이 무슨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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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화 칼럼>

‘IT 강국’에서 이 무슨 일인가

– 국회 미디어법 전자 투표 실황을 보고 –


 이해하기 어려운 정치적 현실에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대화와 타협이 다른 어느 부문보다도 통하지 않음을 씁쓸히 목도하고 있다. ‘대화(對話)’를 ‘대놓고 화부터 낸다’고 빗대어 말해도 전혀 틀리지 않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급기야 머리로 안되면 몸으로 해결한다는 ‘몸개그’까지 보여주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게다가 IT 강국이라는 나라에서 어처구니없는 일도 벌어졌다.
 


정확한 자료도 없고 그것을 구할 처지도 아니기 때문에 그날 국회에서 일어난 일을 소상히 틀리지 않게 제대로 말할 수 없지만, 그러나 TV를 통해 지켜본 실황과 여야 간에 벌어진 대리투표 논쟁, 그리고 국회법에 있는 몇몇 조문들을 살펴보면서 대한민국 국회의 전자투표 시스템을 이해하려고 하니 참 혼란스럽고 착잡하다.


국회법 112조에 따르면, 2000년부터 본회의장에서 전자투표가 원칙으로 정해진 것으로 이해된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본인인증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는 매우 간편한 전자투표방식임을 온 국민이 알게 되었고, 결국 그런 간편함이 오히려 대리투표에 대한 논란까지 불러일으킨 셈이다.


많은 논의 결과 그런 방식이 정해졌을 것이고 또한 그간 별문제 없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무인증 시스템이 쓰이고 있는 것일 게다. 추측컨대 국회의원의 양심을 믿기 때문에 그런 인증이 당연히 필요 없었을 것이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인증이라는 불편한 절차를 국회의원에게 감히 짐을 지우는 불손함을 염려했을 수도 있다.


국회에서의 전자투표는 먼저 ‘재석’을 누르고 찬성이나 반대 또는 기권에 ‘기표’를 하게 되므로, 그런 믿음에 바탕한다면 재석버튼을 누르는 것이 본인 인증에 해당한다고 둘러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서 보듯, 믿음이 무너진 혼란 속에서 재석버튼은 본인 여부와 관계없이 먼저 누르는 사람이 전자투표 시스템을 쉽게 통과할 수 있는 엉터리 인증 절차로 작용해 버렸다.


어떻게 보면 인간이 서로 믿지 못할수록 더욱 까다로운 ‘인증’이라는 절차가 필요하게 되고 그에 따른 비용부담도 비례하여 커지게 된다. 따라서 좋은 의미로 말해, 민의의 전당에서 ‘選良’이 보통시민들에게는 바랄 수 없는 ‘良心’을 실천한다는 상징적 차원에서 무인증 시스템의 당위성을 보여준 것으로 믿고 싶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회의 실상은 그런 믿음을 국민에게 보여주기에 너무도 부족했다. 국민에게 희망을 보여주어야 할 정치가 무관심과 불신론을 넘어 무용론까지 대두될 정도이니 논리적으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런데 나라 안이야 이리저리 감싼다치고, 나라 밖에서 ‘IT 강국, 한국’을 어떻게 떠올릴지 참 안쓰러운 일이 되었다. 부실 공사의 대표격인 성수대교나 삼풍백화점 사건을 떠올리듯 한국의 IT 강국 허상과 디지털민주주의의 부실을 말하며 정치 후진국으로 낙인찍지 않을지 염려된다면 기우일까. 기술과 서비스만 우수하다고 강국이 아니고 믿음을 바탕에 둔 기술과 서비스가 진정한 강국을 만들어줄 것임을 보여준 것이다. 이를테면 시행된 ‘인터넷 삼진아웃제도’도 역으로 말해 진정한 강국이 되기에 참 안쓰러운 제도인 셈이다.


돌이켜보면, 지난 2002년 대선은 디지털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세계 정치사에 남겨진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리스의 조개껍질 민주주의로부터 출발하여 오랜 동안의 아날로그 민주주의를 지나, 바야흐로 21세기 들어 IT 기술에 힘입은 디지털 민주주의가 꽃피기 시작하면서 온라인상에서 엄청난 정치적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비단 정치 이슈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공기관과 자치단체의 행정이 IT화 되고 주민의 참여가 온라인화 되면서 한국은 자연스럽게 디지털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몇 안되는 IT 강국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으로 인해 명성에 오점을 남길 수밖에 없게 되었다.


그런 오점을 지우고 한국 정치의 발전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며 과연 누가 그런 노력을 해야하는 것인지 의문이 드는 가운데, 2007년 7월부터 시행된 주민소환제도에 대해 생각해본다.


하남시장을 상대로 주민소환투표가 있었고 최근에는 제주도지사를 상대로 벌어지면서 논란도 많기 때문에 그 제도가 반드시 이상적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현실 정치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같은 선출직인 국회의원에 대해서는 그 권위를 인정하기 때문인지 주민소환제도가 적용되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IPTV사업자들이 T-poll 서비스를 내놓은 것에 주목한다. T-poll이란 TV화면에서 어떤 이슈나 질문에 대해 직접 시청자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로서 상품에 대한 반응, 이슈에 대한 찬반, 나아가 대규모 퀴즈행사에 까지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몇가지 문제를 보완하고 발전된 인증기술을 적용한다면 이 T-poll을 이용해 정치이슈에 대해 강력한 주민 모니터링을 실시할 수도 있다. 그리고 IPTV 및 디지털케이블TV가 널리 보급되고 닷TV에서와 같이 TV포털 서비스가 전면적으로 가능해지는 수 년 내에 디지털 주민소환제도도 도입 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투표에 따른 행정 절차 및 시간과 비용 낭비를 최소화하면서 효율적인 주민소환투표를 필요한 때에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당뿌리 민주주의’로부터 ‘풀뿌리 민주주의’를 다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에 해외언론은 디지털민주주의를 제대로 실현한 대한민국을 ‘진정한 IT 강국’이라 다시 말하게 될 것이다.


(이종화, KBS 방송기술연구소,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