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T 대연합과 방송의 경계

[심층분석] ICT 대연합과 방송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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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11일, 대한민국의 ICT 발전을 책임지겠다는 거창한 대의명분을 내걸고 ICT 대연합이 출범했다. 동시에 많은 언론은 이명박 정부의 ICT 홀대 정책을 정면으로 문제 삼으며 ICT 대연합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물론 이해는 된다. 종합 일간지의 경우 ICT 대연합이 내건 ‘ICT 경제 발전’에 매력을 느꼈을 것이고, IT 관련 전문지의 경우 그 태생적 한계로 말미암아 어설픈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ICT 대연합이 출범했을 때 박수는커녕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던 본지만 이상한 언론이 되었다. 물론, 이제는 그런 언론도 많이 늘었다. 내심 뿌듯하다. 그리고 이들의 행보를 다시 살펴보자.

최근, 18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부 조직 개편안이 발표되고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설, ICT 전담 부처의 무산 및 미래창조과학부의 복수차관제를 골자로 하는 굵직굵직한 관련 이슈들이 정신없이 쏟아지는 가운데 ICT 대연합이 1월 24일 발표한 보도자료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관심이라기보다는 언론의 기계적인 반응이라고 볼 수 있다. 짧은 시간 동안 상당히 수상쩍은(대연합의 면면과 참가단체, 그리고 그들의 주장에 숨은 오묘한 함의 등) ICT 대연합의 의미를 캐기보다는 단순히 ‘보도자료 배포’에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이다.

ICT 대연합은 보도자료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ICT 전담부처 신설이라는 요구가 수용되지 않아 안타까운 것은 사실"이지만 "인수위가 콘텐츠(C), 플랫폼(P), 네트워크(N), 기기(D)를 총괄하는 통합조직의 필요성을 일관되게 주장해 온 ICT 대연합의 의견을 많이 수용했다고 판단한다”고. 그런데 민감한 부분은 다음에 나온다. 보도자료를 읽다 보면 후미에 이런 말이 나온다. "방송 규제시 방송의 공공성과 다원성을 보장하는 법적 장치가 명확하게 마련돼야 한다". 그리고 "옛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 간 소모적인 갈등이 재발되지 않도록 방송과 통신의 융합 특성을 고려해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 간 연결고리도 보장해 줘야 한다"고.

여기서 간략하게 정리하겠다. ICT 대연합은 노골적으로 미래창조과학부의 ICT 전담 차관이 방송정책을 더 많이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비록 ‘연결고리’라는 완곡한 표현을 사용했지만 이는 명백히 상하 조직의 구조를 ICT-방송 순으로 잡아가자는 뜻이다. 그래서 생각한다. 많은 언론들이 기계적으로 ICT 대연합의 ‘이벤트’를 보도하고 있지만, 사실 이건 쉽게 넘어갈 문제가 아니라고.

처음 ICT 대연합이 출범했을 때 본지는 ICT 대연합의 면면을 분석하며 이들이 산업발전의 논리에 휘말려 통신 기술의 발전을 최우선에 두고 인문학적인 공공성의 속성을 가진 방송을 ‘연료’로 활용하려 한다는 주장을 펼친 바 있다. 여기에서 이 ‘대연합’이 정권 초기에 ICT 발전의 최전선에서 싸우는 일반 종사자들의 처우관계에는 관심도 없다가 정권 말, 소위 높으신 분들이 모여 화려한 독임부처제의 정보통신부 부활을 꿈꿨다는 점은 일단 배제하자. 이건 상당히 감정적인 판단으로 흐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더 중요한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자면 이야기는 이렇게 된다. "ICT 대연합은 ICT 전담부처의 무산을 발판으로 ‘과학’에 ICT가 속하는 상황을 인정하고, 전담부처 신설 시 활용하려 했던 ‘방송의 연료화’를 포기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너무 비약인가?

지금 정부 조직 개편의 주요 포인트는 미래창조과학부의 신설이다. 물론 경제부총리 및 해양수산부 부활 등도 중요한 이슈지만 일단 미디어 분야에서 보자면 단연 미래창조과학부라는 매머드급 아이템이 제일 ‘핫’하다. 그리고 현재 인수위는 미래창조과학부 내부에 복수차관제를 두어 ICT를 총괄하는 전담 부처를 만들고, 그 안에 방송 및 통신 정책과 관련 산업의 진흥 기능을 밀어 넣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 방송의 종속화로 인한 정부의 언론장악과 진흥과 규제의 분리에 따른 산업의 퇴보, 여기에 지나친 산업발전 논리의 강조에 따른 인문학적인 미디어 가치의 훼손까지.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ICT 대연합은 미래창조과학부가 아주 ‘조금’남은 방송의 영역까지 모두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1월 24일 보도자료를 보자면 말이다.

위험하다. 너무 위험한 발상이다. 방송은 산업의 가치로 판단할 수 있지만 다른 영역과는 달리 인문학적인 가치로 이해되는 편이다. 왜 2012년 MBC를 비롯한 3개 방송사들이 공정방송을 기치로 파업을 시작했겠는가. 그런데 이런 분야의 단면만 훑어보고 미디어 자체를 무작정 적자생존의 야생에 풀어놓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다. 당연히 여기에는 어떤 ‘의도’가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힌트를 주자면 ‘지나친 비밀주의에 인수위 취재를 힘들어하는 기자들의 구겨진 얼굴’이다. 그리고 ICT 대연합은 ‘정부여, 더 힘을 내!’라고 부추기는 꼴이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기술 분야만 생각하면 머리가 아찔하다. 생각해보자. 방송기술은 무역기술과는 다르다. 무역기술에는 공공의 가치보다는 산업적 가치가 더 풍부하다. 그러나 방송기술은 인문학적인 미디어 공공성의 원리가 짙게 배어있는 편이다. 많은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인데, 방송기술이 특정 자본이나 특정 세력에 점령당하면 미디어가 가지는 공공성은 정말 순식간에 사라져버린다. 방송사 사측이 특정 세력에 장악당하면 파업이라도 가능하지, 방송기술이 장악되면 국민은 순식간에 눈먼 장님이 된다.

가뜩이나 박근혜 당선인이 유료 방송법 일원화를 주장하며 산업적인 가치로 유료 방송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천명하고, 새누리당 김장실 의원실은 유료 방송 지원 특별법을 들고 나와 이를 부추기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ICT 대연합의 24일 보도자료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참담할 뿐이다.

현재 미래창조과학부의 초대 장관 하마평에 이석채 KT 회장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물론 하나의 ‘설’일 뿐이지만 통신사 KT의 회장이자 ICT 대연합의 중추로 활동하는 그가 막강한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되어 통신 정책과 함께 방송 정책을 전담하는 ICT 차관에게 영향력을 미치는 상상은 끔찍하다. 아, 영향력을 미치는 일은 없을 거라고? 만약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순수하거나 혹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다.

결론적으로, ICT 대연합이 주장하는 1월 24일 보도자료는 가뜩이나 방송의 통신 종속화에 따른 공공성 가치의 훼손에 ICT 대연합이 한 몫 보태겠다는 이야기로 가득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한 가지. 한 매체가 정통부 부활을 기치로 내건 ICT 대연합에 한국방송학회와 케이블TV협회가 참여하는 것을 보고 이해가 안 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글쎄. 케이블은 이미 답은 나오지 않았을까. 사안을 ‘방송기술’에 한정시키고 생각해보자. 방송기술 정책이 산업발전의 단순한 원리로 미래창조과학부의 ICT 차관 손에 들어간 지금, 공공의 기능을 수행하는 지상파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유료 방송은 미래창조과학부의 탄생이 나쁘지만은 아닐 것이다. 이것도 비약일까? 하지만 그럴 확률은 분명히 있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그냥 이름만 빌려준 것일지도. 하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건 아마 그쪽이 순수하거나 거짓말을 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아, 참고로 한국방송학회는 정말 모르겠다. 미스테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