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를 하기 위해 정부 과천청사를 찾았습니다. 여기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정부종합청사는 항상 을씨년스럽습니다. 오래된 건물과 오래된 공기가 365일 꽉 붙들려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요새 부쩍 까다로워진 보안도 경직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키는 것 같습니다.
이런 불편한 정부종합청사를 헤집고 다니다가 우연히 업계 관계자를 만났습니다. 이름을 밝히길 극도로 싫어하는 취재원이라 어디서 일하는 누구인지 밝힐 수는 없지만, 그는 미래부와 방송 산업 전반에 대해 상당히 폭넓은 식견을 가진 사람이지요. 당장 근처에 자리 잡고 앉아 한담을 가장한 정보 캐기에 돌입했습니다. 가동할 수 있는 인력이 한정되어 있는 [방송기술저널]의 입장에서 요소요소에 박아둔(?) 취재원은 아주 중요한 인재거든요.
그러다가 우연히 미래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아무래도 과천에서 이야기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제가 미래부로 쏠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취재원이 아주 묘한 말을 하더군요. 그가 한 말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청와대가 장관이고, 미래부는 실무 공무원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출범 1년을 맞은 미래부를 분석하는 특집 기사를 구상하던 저에게는 아주 흥미로운 발언으로 들렸습니다. 자연스럽게 2,800원 짜리 고가의 음료수를 내밀었고, 그의 말은 이어졌습니다.
“청와대가 세부적으로 모든 정보와 정책을 입안하고 있으며, 미래부는 이를 받아 단순하게 처리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있다. 창조경제가 국정운영의 핵심철학이니까 청와대가 전면에 나서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도 있지만, 지금은 미래부 내부에서도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게다가 최근 청와대가 창조경제타운을 디테일하게 챙기면서 미래부 내부에서도 출구전략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그렇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그의 단편적인 발언에 더해 추가적으로 말한 부분들을 합치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청와대가 창조경제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자임하며 미래부는 단순 실무자의 위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미래부에서도 이런 부분에 대한 우려가 있다’ 여기에 취재원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최문기 장관이 연구자 출신인 만큼 장관이 된 이후에도 강력한 내부 장악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 장관이 다른 부처의 장관이나 국회의원들을 만날 때 자연스럽게 ‘밀리는 분위기’가 연출됐으며, 조직 내부의 동력이 떨어진 것이 사실이다. 다만 최근에 이르러 최 장관이 행사에만 집중한다는 ‘미래부=행사부’라는 오명을 탈피하는데 성공했으며, 다른 부처와 국회의원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기색도 어느 정도 지워졌다는 평이 들린다. 이제는 강력한 리더쉽을 보여줄 때라는 것이 전반적인 분위기다”
이제 미래부는 출범 1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동안 참 많은 현안과 논란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미래부는 막강한 조직 잠재력을 가졌음에도 자신이 가진 영향력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참 많았습니다. 일각에서는 최 장관이 미래부 산하 연구조직에 몸담고 있었기 때문에 단순한 갑-을 관계로 보면, 장관이 된 이후에도 부처 공무원들에게 밀리는 분위기를 연출했다고 합니다. 또 청와대의 강력한 창조경제 추진 의지가 미래부의 자주적인 의사결정을 막고 있다는 지적도 있으며, 그러다 보니 성과를 내기 위한 단기적 프로젝트에 치중했다는 비판도 나오는 중입니다.
당장 방송정책만 봐도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과 케이블 MSO에 대한 8VSB 허용은, 당연히 특혜를 위한 사전 포석의 정책이지만 다른 각도에서 재단하면 ‘일단 시작했으니 끝을 보긴 봐야겠고…’라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쉽게 말해 8VSB만 보면, 미래부 정책의 기저에는 ‘성과를 올린다’는 느낌이 강하다는 뜻입니다. 8VSB에 있어 단기적 성과에만 치중하다 보니 디지털 전환율을 수치상으로 끌어 올리는 것에만 집중했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창조경제를 아우르는 영역에서 고차원적인 산업에 미래부가 정책을 입안하지 못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로 보입니다.
혹자는 미래부가 이제 출범 1주년을 맞이했을 뿐이며, 최 장관의 리더쉽도 점점 강해지고 있으니 숨을 고르고 지켜보라고 합니다. 하지만 청와대의 강력한 의지에 눈치를 보는 사례가 반복되는 점과, 그에 따른 부작용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은 분명히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취재원은 이런 농담을 했습니다. “윤창번 청와대 미래전략수석과 최문기 미래부 장관 자리를 바꿔야 합니다. 조직을 장악하고 움직이는 것에 탁월한 윤 수석과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실무가 스타일인 최 장관이 바통 터치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서로 윈-윈이에요”
(‘수첩’은 취재 과정에서 겪었던 인상적인 사건을 편안한 형식으로 서술해 사안에 대한 이해와 배경을 더욱 쉽게 알려드리는 코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