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 장관과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명의로 방송 사업자에게 전송된 ‘브라질 월드컵 재송신 분쟁 관련 정부의 입장’이라는 공문이 뜨거운 파장을 낳고 있습니다. 특히 배재정 의원실과 대부분의 미디어 전문지는 브라질 월드컵 중계 정국에서 지상파와 유료방송의 재송신(CPS) 계약이 진통을 보이는 가운데 해당 공문이 정부가 각 사업자의 자유로운 CPS 계약에 ‘난입’한 증거라고 진단하는 한편, 온 국민의 브라질 월드컵 시청을 강요해 ‘스포츠 우민화 정책’을 추진하려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해당 공문을 입수했을 때 처음 들었던 생각은 ‘공문의 글귀가 상황과 맞지 않는다’ 였으니까요. 실제로 공문에는 ‘세계적 축제’나 ‘월드컵 중계를 진행하여 국민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할 것’ 등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를 기점으로 ‘반드시 잊지 말아달라’는 유족의 절규가 아직도 생생한 마당에 정부가 공식공문을 통해 ‘(세월호 참사로 인해) 그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라는 전제까지 들어 지상파-유료방송 CPS 협상에 모종의 압력을 가하는 분위기는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으니까요.
이에 배재정 의원실과 시민사회단체를 비롯한 언론개혁시민연대와 다수의 미디어 전문지는 ‘정부가 스포츠 우민화 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국민의 브라질 월드컵 시청을 무조건 가능하게 만들고, 이를 위해 자유로운 계약이 추진되어야 하는 CPS 논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는 결론을 도출했습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스포츠 우민화 정책’과 ‘정부의 자유로운 CPS 계약 난입’입니다. 전자는 결론이고 후자는 방식의 부적절을 지적하는 셈입니다. 과연 맞는 해석일까요?
‘스포츠 우민화 정책’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을 때 머리를 스친 생각은, 전두환 정권 시절의 3S 정책과 최근 쿠데타로 몸살을 앓고 있는 태국 군부의 전 국민 무료 브라질 월드컵 시청 추진이었습니다. 모두 정치적이고 실제적인 국민의 불만을 ‘거대 스포츠 이벤트’로 몰아넣기 위한 교묘한 술수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정부의 해명과는 다르게, 이번 공문 발송에도 비슷한 저의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증거로 세월호 참사를 지나며 지방선거가 완전히 종료되자 청와대 및 여권을 중심으로 ‘새로운 도약’을 운운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세월호 참사 애도 기간은 청와대 및 여권에 유리할 것이 없습니다. 가뜩이나 문창극 총리 후보 지명 및 ‘차떼기 의혹’의 당사자인 이병기 국정원장 지명과 같은, 사실상의 인사참사가 되풀이 된다는 의혹이 지속되는 가운데 2기 내각을 출범시킨 박근혜 정부의 입장에서 국정 운영의 원동력을 끌어 올리기 위해서는 지나간 패착에서 벗어나 ‘리프레쉬’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브라질 월드컵은 아주 좋은 ‘계기’일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스포츠 우민화 정책’이 해당 공문의 핵심일까요? ‘우민화 정책’이 실제로 진행되고 있든 아니든, 사실 해당 공문에 있어서는 이러한 근거는 ‘곁가지’는 될 수 있어도 ‘핵심’은 아닙니다. 간단합니다. 누구도 확인해주지 않기 때문이지요.
사실 추상적인, 사상적 정책의 무서움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만, ‘우민화 정책’같은 위험한 단어는 누군가의 목숨을 건 내부 고발이 아니라면 명확하게 드러나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더 중요한 ‘핵심’이 있다면 약간 의심을 해야 할 부분이지요.
그렇다면 더 중요한 핵심은 무엇인가. 그 중요한 핵심이 바로 공문에서 엿보이는 정부의 편협한 미디어 플랫폼 시각입니다. 실제로 공문에는 지상파가 유료방송에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는 것은 방송의 공공성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물론 국내 미디어 환경에서 당연히 용인될 수 있는 표현이지만, 문제는 헌법적 가치로 보장받는 지상파 콘텐츠의 무조건적인 유료방송 제공에 ‘방송의 공공성’이 있다는 뉘앙스가 풍긴다는 점이죠.
지상파 직접수신율이 20%인 상황에서 유료방송을 통한 지상파 콘텐츠 시청이 중요하다는 점은 공익성을 담보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계약조건과 금액적 불합리함을 모두 무시하고 유료방송의 이익을 위해 지상파 콘텐츠를 ‘당연하게’ 제공해야 한다는 논리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이는 CPS 계약논란을 지상파와 유료방송이 아닌, 지상파와 유료방송 가입자(시청자-국민)의 대결로 끌고 가려는 대다수 언론의 여론전과 결을 함께하는데, 만약 지상파가 직접수신 가구에 월드컵 시청을 이유로 추가적인 금액을 부과한다면 이는 방송 공공성의 침해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이번 공문은 지상파 직접수신의 가능성을 완전히 무시해버렸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지상파 미디어 플랫폼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라 더 무섭습니다. 방송산업발전 종합계획에 입각한 방송의 산업화 정책이 아주 노골적으로 묻어난다는 뜻입니다.
정리하자면, 정부는 ‘브라질 월드컵 재송신 분쟁 관련 정부의 입장’을 통해 지상파와 유료방송의 CPS논란에 대하여 ‘점잖은 훈수’를 두었지만, 의도치 않게 지상파 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심각한 몰이해를 노출시킨 셈입니다. 특히 지상파 직접수신의 가능성을 배재한 행태와 법적인 보호를 받는 지상파 콘텐츠를 유료방송이 당연하게 활용해도 된다고 생각한 것은 아찔한 발상이죠.
그렇다면 ‘정부의 자유로운 CPS 계약 난입’의 문제제기는 어떨까요. 이런 문제제기도 함정이 있는 것이, 지금까지 소위 언론시민단체 및 야권에서는 CPS 계약에 있어 정부의 확고한 가이드라인을 촉구해왔습니다. 물론 막무가내로 개입하라는 뜻은 아니겠지만, 이들은 CPS 계약에 있어 지상파와 유료방송의 이전투구가 심해져 시청권 박탈이 벌어지고 있으니 정부가 조속히 ‘정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죠.
그런데 해당 공문에 있어서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합니다. 물론 ‘스포츠 우민화’를 걱정해서지만, 평소의 주장과 180도 달라진 주장을 펼치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공신력을 갉아먹는 것입니다. 비판을 위한 비판을 위해 자신의 논리적 근거를 부정해서는 곤란하니까요. 여기서 전제하자면, 시청권 보장을 위해 CPS 계약은 사업자간 자율성의 원칙에 입각해 추진되어야 한다는 점이며, 시민사회단체 및 야권에서는 이러한 지점에서 명확한 입장정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여하튼 공문 하나로 참 시끄럽습니다. 세월이 하수상해서인지, 별별 이야기가 나돕니다. 다만 핵심은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공문의 불합리성은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저도 처음에 제보를 받고 우왕좌왕하면서,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라고 난감했습니다.
하지만 격언 아닌 격언에 해답이 있더군요. 바로 ‘악마는 디테일에 있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