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부재 정치 ‘이제 그만’

[세상읽기] 소통 부재 정치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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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실처리’ 논란을 불러일으킨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 체결이 서명 1시간을 앞두고 연기되는 소동이 벌어졌다.

지난달 26일 외교통상부는 국무회의에서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안을 즉석 안건으로 상정해 통과시켰다.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은 북한의 위협에 대응해 한일 양국이 북한 내부 동향, 미사일과 핵에 관한 정보 등을 공유하는 등 공동 대응하자는 취지 아래 진행된 협정이다.

그러나 이 안건이 국무회의에 앞서 진행되는 차관회의에서 논외도 되지 않은 채 즉석 안건으로 상정되고, 국무회의 이후에도 내용이 공개되지 않고 진행된 사실이 알려지자 그에 대한 반발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게다가 국무회의에서 즉석 안건으로 통과시키면서 내용은 그대로 둔 채 협정 이름에서 ‘군사’라는 두 글자만 빼서 비공개로 처리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을 속이려 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협정 체결에 대한 강도 높은 비난을 쏟아냈다. 야당인 민주통합당에서는 김황식 총리의 해임을 요구했으며, 여당인 새누리당 역시 절차상의 문제를 거론하며 유감을 표시했다. 심지어 여당 내부에서도 여당 원내대표조차 자세한 내용을 알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어처구니가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흐르자 정부에서는 결국 서명식 1시간을 앞두고 협정 체결을 중단했다. 국민적 반발이 심한 만큼 이 사안에 대해 정치권 및 국민의 동의를 얻고 난 뒤 재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협정 폐지까지 주장하고 있어 협정 체결을 둘러싼 진통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안의 가장 큰 문제는 밀실처리다. 국가안보는 가장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에 공론화 과정을 거치면서 협정 자체의 장단점을 철저히 따져 진행해야만 한다. 그러나 정부는 시종일관 감추기에만 급급한 나머지 협정 체결로 인한 이해득실을 제대로 따져보지도 못하고 있는 듯하다. 하물며 아직까지도 사안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듯 국회와 협의한 뒤 협정 서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국회보다도 국민의 공감대가 우선되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을 잊고 있는 것이다.

또한 협정 체결국인 일본을 여타 다른 국가들과 똑같이 생각했다는 것에서도 정부의 안일함을 엿볼 수 있다. 한일 양국 간에는 위안부 문제, 독도 영유권 문제 등 해결되지 않은 역사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에 일본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은 당연히 계산에 넣어야 하는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은 그냥 단순한 협정이 아니다. 동북아 정세가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만큼 이번 협정으로 인해 벌어질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분석해봐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세력 다툼, 북한을 둘러싼 중국·일본·러시아의 군비 경쟁 그리고 남북통일과 일본의 군사적 개입 등 심사숙고 해야 할 문제들은 셀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국회 보고 과정만 거친 뒤 졸속 체결에 들어간다면 아마 생각지도 못한 엄청난 반발에 직면할 것이다.

시작부터 소통부재를 지적받은 정부가 그 마무리를 어떻게 지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