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 패션이 유난히 비난받았던 이유

[사회/문화] 모자 패션이 유난히 비난받았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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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런던올림픽이 끝났다. 동시에 밤을 하얗게 지새우며 TV 앞에서 ~한민국!’을 외칠 수 있는 날도 끝나버렸다. 평상시에는 층간소음 때문에 살인도 벌어지는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 아닌가. 하지만 올림픽 기간에는 밤에 소리좀 지른다고 누가 뭐라하는 사람은 없다. 모두들 히피적 평화주의와 애국주의에 흠뻑 취해 머릿속에서 엔돌핀이 마구 솟아났기 때문이리라. 지금 오진혁이 10점을 뚫고 박주영이 헤딩하고 양학선이 날아다니는데 한 밤의 소음공해가 대수일까. 우리는 그렇게 올림픽을 보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한다. 선수들의 선전과 투혼, 그리고 감동이 살아있는 런던올림픽을 마냥 기분좋게 즐기지 못하는 이유. 바로 현장의 생생한 느낌을 안방까지 무사히 전달하는 방송사들의 실수다.

하지만 여기서 각 방송사의 중계사고 실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물론 방송사는 작은 실수마저도 용납되서는 안되지만 이번 2012 런던올림픽 기간동안 일었던 방송중계 논란은 지나친 면이 없잖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작정하고 속이려는것은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하지만 의도하지 않은 일로 가루가 되도록 까이는 것은 무언가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봐야한다. 방송사의 중계사고만 두 눈 시퍼렇게 뜨며 감시하고, 가끔 몇몇 네티즌들이 모이는 커뮤니티를 기웃거리며 논란거리만 찾으려 다니던 일부 언론은 분명 반성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다. 의도한 실수라고 보기에도 어렵고, 그렇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사고라고 보기에도 애매한 논란의 중심에 선 인물. 그렇다. 다들 눈치 챘으리라. 바로 양승은 아나운서다.

 

   
 

우선 이 시점에서 밝혀둘점은, 양승은 아나운서는 훌륭한 방송인이며 동시에 책임있는 사회인이라는 점이다.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 노력하고 있으며 거기서 빚어진 여러 가지 예측불가한 상황에 대해서는 그녀 스스로도 채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 이까지 이해가 되었으면 이제 본격적으로 그녀를 둘러싼 논란을 되짚어보자.

사실 양승은 아나운서는 런던올림픽 중계 내내 이슈의 중앙에 서있었다. 난해한 모자패션에 난데없는 의상. 그리고 온갖 비난이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독특한 패션감각을 끝까지 밀고나간 굳건한 의지 때문이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이번 런던올림픽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가장 확실하게 받았던 그녀야말로 올림픽의 최대 수혜자라는 자조섞인 농담이 회자될 정도다. 그녀는 올림픽 기간 내내 자신의 패션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에 비례해서 그녀는 정말 많은 욕을 먹었다.

하지만 한 발 물러나 생각해보면 그녀에게 쏟아진 의상 논란은 조금 과한면이 없잖아 있다. 그녀는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다. 다만 난해한 패션을 통해 뉴스를 전달해야 하는 전달자의 입장에서 벗어나 스스로 뉴스의 중심이 되고싶었던 죄밖에 없다. 물론 이것도 죄는 죄다. 그러나 이 죄는 시청자의 반응을 통해 회사 내부에서 결정할 문제이지 결코 절대적인 가치판단의 기준은 될 수 없다. 또 달리 생각해보자. 김주하 앵커를 떠올려보라. 2004 아테네 올림픽 당시 그녀는 그리스 풍의 옷을 입고 등장해 많은 사람들의 호평을 받았다. 덕분에 그녀는 그리스 여신이라는 애정어린 별명도 얻지 않았는가. 이처럼 지금까지의 관례를 살펴보고 국제대회에서 아나운서의 의상 콘셉트를 확실히 잡기 원하는 MBC의 의도를 분석해보면 이번 런던올림픽 기간동안 양승은 아나운서에게 쏟아진 비난의 강도가 너무 지나치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이제 확실해졌다. 양승은 아나운서에게 쏟아진 비난은 단순히 의상이나 모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다. 사실 이는 더 복잡한 문제였다. 그리고 이런 결론이 가능하다. 양승은 아나운서의 지난 행동이 그녀의 행동 자체를 부정적으로 규정해버린 것이 아닐까. 미운놈은 끝까지 미운 법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공정방송을 위한 MBC 노동조합의 열정에 힘을 보태기는커녕 절망적인 신드립으로 노조의 투쟁에, 동료의 처절한 몸부림에 찬 물을 부어버린 것을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맞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녀는 욕을 먹을 수 밖에 없었던것이다. 대중은 피상적인 가치에서 너무나 쉽게 자기들 스스로 구체화된 결론을 얻는법이다.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는 상관없다. 제물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양승은 아나운서는 왕따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걸그룹 티아라처럼 어쩌면 배신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것일수도 있다. 물론 그녀 스스로의 정의를 부정해서는 안되지만. 별로 긍정적인 여론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여기까지라면 누구든 결론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예전에는 그랬으니까 지금 이렇지 뭐…’그러나 과연 그럴까? 아니다. 우리는 사건의 본질로 한꺼풀 더 들어가 내밀한 이유를 찾아야한다. 바로 이번 2012 런던올림픽을 잘 못 해석한 그녀, 혹은 그녀의 상사, 혹은 시용인력을 주된 전력으로 삼아 올림픽이라는 대형 이벤트에 차출한 MBC 사측이다.

시간을 돌려 2008 베이징올림픽을 떠올려보자. 뭐가 연상되는가? 올림픽 중계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는 개막식을 예로 들어보자. 당시 총감독인 장이머우 감독은 자신의 조상이 발명한 4대 발명품, 즉 종이와 인쇄술, 나침반, 화약을 내세워 위대한 중국을 연출했다. 중화주의에 입각한 장엄하고 유려한 무대연출. 작품 초기에는 집단속의 개인에 집중하며 <붉은 수수밭>, <진용> 등을 통해 군중속의 고독을 담담하게 표현했던 그는 후기에 이르러 <영웅>, <연인> 등 점차 집단의 가치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그의 이러한 성향이 고스란히 2008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녹아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연출가치는 한 소수민족 소녀가 부른 조국에 바치는 송가를 통해 극대화되었다.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올림픽을 치르기 위해 강제이주된 100만명의 주민은 잊혀졌다. 이것이 바로 2008 베이징올림픽을 통한 그들의 패러다임이었다.

그런데 이번 2012 런던올림픽은 달랐다. 혹자는 이번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통해 대영제국의 화려한 부활을 목도했다고 전하지만 이는 그 안에 내재된 메시지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기에 발생한 오류. 아니다. 이번 2012 런던올림픽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영광이나 귀족’, 혹은 웅장함이 아니었다. 이번에 영국은 올림픽을 통해 너무나 수수한 생얼의 영국을 보여주었다.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살펴보자. 비록 시작은 산업혁명의 발생지였던 영국의 위상으로 개막행사가 이어졌지만 그들은 중국처럼 단 하나의’, 혹은 위대한영국을 노래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은 이번 개막식을 통해 경이로운 영국을 노래했다. 기억해보라. 영국의 유명한 아동병원인 GOSH가 등장하고 무상의료제도가 전면에 등장했다. 또 평범한 영국 가정의 모습이라고 보여주는 장면에는 흑인 남성과 백인 여성이 등장하고 미스터빈이 재미있는 희극연출을 통해 수수한 웃음을 선사했다. 음악은 어떤가. ‘합동집단을 배제한체 현대 대중음악의 흐름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명곡들은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아름답게 장식했다. 그랬다. 영국은 이번 개막식을 통해 있는 그대로의 수수한 영국을 보여준 것이다. 산업혁명의 환경오염까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그들의 무대는 다른 사람들이 ‘영국스럽다고 생각하는’ 귀족적이고 고상한 문화와는 분명히 달랐다.

양승은 아나운서와, 혹은 그녀의 상사, 혹은 시용인력을 주된 전력으로 삼아 올림픽이라는 대형 이벤트에 차출한 MBC 사측의 진정한 패착은 바로 여기에 있다. 있는 그대로의 영국을 소개하는 런던올림픽에서 귀족적인 패션과 유니크한 모자를 쓰고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하려는 그 의도. 그 잘못된 판단이 묘한 이질감을 일으켜 결국에는 강한 거부감의 발로가 된 것이다. 영국 귀족 패션을 선보이며 사람들에게 귀족 문화를 떠올리게하는 복장은 결정적인 패착인 셈이었다. 완전히 잘못 짚었다.

아나운서는 말 그대로 방송의 꽃이다. 그들은 항상 전면에 서서 시청자와 만나고 교류하며 소통한다. 그러나 이번 올림픽 기간 동안 양승은 아나운서가 보여준 선택은 아나운서의 막중한 책임을 저버렸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소통의 부분에서는 어떻게 했든 욕을 했을 것이라며 스스로 허망하게 그 기회를 날려버렸다. 안타깝다. 만약 그녀가 이번 런던올림픽이 던지는 진정한 메시지를 읽고 현장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달하는 아나운서의 위치에 온전히 있었다면 어땠을까? 조금이라고 긍정적인 분위기가 생기지 않았을까? 훌륭한 방송인이기에, 그녀가 이제라도 뉴스의 중심에 서기 보다는 뉴스를 전달하는 본연의 임무에 더욱 충실해 더 멋진 방송인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