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은 ‘위대한 <국감스타> 탄생’ 오디션이 아니다
2011 방통위 국감이 일단락되었다. 아마 다른 국감에 비해 시간으로 보면 제일 길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정을 넘겨 끝난 국감장에서 취재수첩을 덮고 밖으로 나오는 기자의 마음은 씁쓸하기 그지없다. 아마 피감기관의 수장인 최시중 방통위원장도 마찬가지일 것이고 날 선 공방을 펼쳤던 국회의원들도 그럴 것이라 짐작된다. 방송통신 정책에 관심을 가지고 이번 국감을 유심히 지켜본 국민의 마음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리라.
이번 방통위 국감도 다른 국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의원들은 같은 내용으로 줄기차게 최시중 방통위원장을 압박했고 최 위원장은 판에 박힌 내용을 마치 앵무새처럼 반복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신경이 거슬리면 호통도 쳤고, 다시 의원들의 고함이 이어지는 순서가 반복되었다. 미디어렙 법안을 둘러싼 질의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당장 종편 개국을 앞두고 미디어 생태계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법적 규제를 만들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정부안을 이미 제출했으며 종편은 미디어렙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주장만 했다.
그러나 상황이 이런데도 의원들은 ‘법안 처리 지연’ 책임 공방전을 벌였다. 시급히 법안을 처리하고 방통위의 ‘논리적 허점’을 지적해야 할 의원들이 ‘법안 처리가 지연되는 것은 우리탓이 아니다’를 내세우며 교묘하게 본질 자체를 비켜나간 셈이다. 아주 참신한 대처법이다.
방송정책에 대한 발전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물론 이번 국감에서도 의원들의 날카로운 지적과 함께 방통위의 정책적 오류 등을 잡아내는 모습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당장 심각한 파열음을 일으키고 있는 주파수 가열 경매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문제제기를 하는 의원이 별로 없었다. 지금 통신진영과 일부 언론사에서 ‘주파수 경매 자체는 긍정적이다’ 혹은 ‘공익의 이유로 지상파가 700MHz를 할당 받아야 한다는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식의 철저한 기업이윤추구적인 발언이 나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대표인 의원들은 조용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미디어렙 법안 처리와 종편특혜에 대해서도 방통위의 의견에 반박할만한 심도 있는 정책적 논의는 미비했다. 발전적인 논의가 있기 보다는 당장 문제가 많다고 의심되는 최시중 방통위원장을 다그치거나 고성을 주고받을 뿐이었다.
‘실세’가 벌벌떠는 국감이 필요했다
국무위원 보좌관들 사이에서 국회 앞 서강대교는 일명 ‘고통의 다리’라고 불린다. 국감을 받으러 다리를 건너는 국무위원들의 신경은 곤두서기 일쑤고, 보좌관들도 입술이 바싹바싹 타들어가기 때문이란다. 아마 최시중 방통위원장도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이번 방통위 국감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국감 현장에서 의원들의 날 선 공방에 기존의 입장을 반복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기만 급급했다. 정책적으로 발전한 모습은 전혀 없이 그저 최대현안인 주파수 문제와 미디어렙 법안, 디지털 전환 등에 대해 ‘판에 박힌 말’만 한 것이다. 이 대목은 무척 아쉬운 부분이다. 현 정권들어 최장수 국무위원이자 임기 동안 무려 4개의 종편을 출범시켰고 방송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실세’인 그가 조금 더 발전적인 모습을 보일 여지는 의원들에게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다양한 정책적 오류를 발견하고 지적한 의원들의 노력은 결코 폄훼되거나 무시될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국감을 통해 방통위가 가지고 있는 ‘불공정한 정책 로드맵’에 어느 정도 수정의 여지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기대는 접어야 할 듯하다.
이제 공은 지상파 방송사에게 넘어왔다.
몇몇 정치권 인사들이 공정한 정책결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이제 지상파 방송사들도 본격적으로 나설 때인 것이다.
지상파 방송사는 종편개국을 앞둔 현재, 디지털 전환을 1년 앞두고 주파수의 공공성을 지켜내야 하는 바로 지금이 향후 ‘대한민국 뉴미디어의 성공 척도’가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