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결국 여당추천 위원들의 동의만 거쳐 종합편성채널 선정일정을 의결했다. 모법이 되는 방송법조차도 여당이 날치기 통과시켰던 바, 추진일정 의결의 절차적 정당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을 것이다. 이로써 종편채널 선정일정은 접수와 심사 과정만 남았는데, 불법으로 점철된 시작과 지금까지의 과정을 고려한다면 마무리인 선정결과는 물론이고 선정 이후에도 다양한 특혜들이 제공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애초에 종편카드를 꺼내들었던 이들의 시각은 단순했다. 조중동에 하나씩 채널을 넘기면 되는 문제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조중동이 모두 종편에 참여했다가는 공멸할 것이 분명해졌다. 채널이 늘어난다고 광고가 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영 미디어렙 설치, 케이블TV 광고제한 철폐 등 종편에 광고시장을 몰아주기 위한 여러 작업들이 이미 진행됐거나 진행되고 있다. 이제 방통위는 지상파 채널에 대한 경쟁력을 강화한다며 ‘지상파 채널 사이의 번호에 종편을 배치해야 한다’고 케이블SO를 노골적으로 압박하기까지 한다.
방송법 입법당시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당시 가장 큰 이슈는 소유제한 철폐 문제였다. 신문과 달리 방송은, 특히 보도기능을 가진 종합편성채널은 공공적인 용도임을 감안해서 사기업이 소유하게 될 가능성을 철저하게 배제했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의결된 종편 세부심사기준은 기본적으로 초기자본 3천억 원 이상의 컨소시엄을 구성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크게 침체된 신문사들의 경영실태를 감안하면, 초기자본 3천억 원·향후 5년간 운영자금까지 1조 원 가량으로 추산되는 자금규모를 감당하기 위해서 유력 대기업들의 지분참여는 불 보듯 뻔하다. ‘여론의 다양성’을 내세우며 추진되는 종편 사업이 실상은 ‘여론의 친기업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방송에 대기업의 자본이 직접 흘러들어감으로써 방송이 급격히 상업화되고,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선정성이 강화되는 등 콘텐츠도 질적으로 크게 하락할 것이다. 더구나 신문사 태생의 종편 사업자들은 영상 콘텐츠 제작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에 콘텐츠의 자립도 또한 크게 떨어질 것으로 예상돼 ‘콘텐츠 경쟁력 강화’라는 종편의 정책목표도 요란한 빈 수레에 그치고 말리라고 판단된다.
위에서 우려하는 내용들은 결코 기우가 아니다. 지난 3일 있었던 세부심사기준(안) 전문가 토론회에 참가한 패널들도 하나같이 ‘기준들이 지나치게 재정능력에 치중하며 콘텐츠 제작 능력 부분은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통위가 그토록 강조하던 정책목표가 헛구호에 머무를 것이라는 예측을 강하게 뒷받침한다. 더욱 우려스러운 상황은 정책목표는 고사하고 기존 신문들의 초 미디어 기업화만 가속시켜서 언론권력 강화, 여론장악 등의 악영향만 고착시킬 수 있다는 사실이다. 권력·재벌·언론간의 유착이 제도화되면서 비판기능을 상실한 미디어가 국가적인 폐해를 발생시키는 사례는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와 태국의 ‘탁신’의 경우를 떠올리면 더욱 분명해진다. 신문사가 보도채널을 다수 소유하고 있는 일본 또한 공영방송인 NHK가 정치사회적 의제를 공론화하기가 쉽지 않다. 일본 자민당의 장기집권에도 이런 공영방송 해체 시스템이 한 축을 담당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처럼 신문사와 대기업들이 종편을 소유하게 되면 여론 다양성이 위축되고,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를 담을 그릇은 눈에 띄게 줄어들 것이 자명하다.
이런 시민사회의 온갖 우려를 무시하고, 방송법에 대한 헌재의 부작위 권한쟁의 판결도 기다리지 않은 채 종합편성채널 선정 일정을 강행하는 방송통신위원회의 모양은 꼭 폭주(暴走)하는 기관차를 닮았다. 폭주하는 기관차는 브레이크가 소용없다. 낭떠러지 같은 거대한 장애물에 부닥치고서야 겨우 멈춘다. 아니, 처절하게 부서지고 망가진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그 폭주 기관차에 방통위와 종편만 타고 있지는 않다는 데 있다. 방송 생태계 전체가 방통위의 폭주에 생존의 위험을 느끼고 있다. 방통위의 폭주 뒤에 맞이하게 될 국가적인 파국이 염려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