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국내출시 1년, 방송의 위(危) 그리고 기(幾)

[사설] 아이폰 국내출시 1년, 방송의 위(危) 그리고 기(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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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8일로 아이폰이 국내에 상륙한지 1년이 지났다. 해외출시보다 몇 년이나 늦었지만 아이폰은 국내에 출시된 지난 1년 동안 놀라운 파급력을 발휘했다. 음성통화 기능을 뛰어넘어 다기능 휴대용 단말기로써 ‘스마트폰’ 시대를 활짝 열었고, ‘앱스토어’라는 개념을 보급하면서 ‘콘텐츠는 공짜가 아니라 대가를 지불해야하는 상품’이라는 생각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혹자는 “아이폰이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바꿨다”고 일컬으며, 아이폰은 그야말로 통신시장 혁신의 상징으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아이폰의 이와 같은 활약이 비단 통신시장에만 머무는 이야기일까? 방송사들에게, 방송사에 몸담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

 

지난 10월 한국광고주협회(KAA)가 발표한 미디어리서치 결과에 따르면 스마트폰 보급률은 20~30대를 중심으로 급증하고 있고, 뉴스·방송(25.9%)뿐만 아니라 날씨(32.4%), 인터넷포털(31.6%), 음악·동영상(24.4%), 교통(16.7%) 등 정보를 습득하는 수단이 방송에서 인터넷으로, 다시 인터넷에서 스마트폰으로 이동하고 있는 추세임을 확인할 수 있다. 더구나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이용자들까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속보성이라는 방송보도의 가장 큰 장점도 일부 잠식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비율을 따지면 휴대전화 전체 가입자 중에 10% 내외인 수준이지만, 스마트폰 가입자의 급격한 증가속도를 감안하면 콘텐츠 소비매체로서 활용도는 더욱 확대될 것이고, 사람들이 TV수상기와 라디오 앞을 떠나는 시간의 비중이 높아질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아이폰이 촉발하였지만, 비단 아이폰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마트폰 서비스가 만들어내는 이 ‘시간적 점유율’의 변화는 방송사에게 분명 위험요소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기회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영국 BBC가 2007년 개국한 iPlayer는 이 ‘기회요소’를 극대화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iPlayer는 BBC에서 방송된 콘텐츠를 방송 후 7일간 모아두고 다운로드나 스트리밍 방식으로 시청할 수 있도록 만든 서비스이다. iPlayer는 출범 당시 인터넷뿐만 아니라 Wii와 PS3같은 게임콘솔로도 접근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졌고 이후에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으로도 접근이 가능하도록 개발됐다. 또, 영국 내에서는 케이블망을 통해서도 접근이 가능하도록 셋톱박스에 기능을 내장시키기도 하고, DRM을 제거해서 스트리밍 속도를 높이고 HD 고화질 영상을 제공하기까지 한다. 이와 같은 iPlayer의 서비스는 국내 방송사들의 부진한 ‘콘텐츠 판매’ 전략에 비하면 매우 진취적이라고 할 만하다. 더구나 iPlayer는 실제 이용률도 매우 높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에는 iPlayer가 영국 내 인터넷 트래픽의 20%까지 치솟았고 이에 “브로드밴드 기업들이 iPlayer 트래픽을 제한하려 한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였다,

 

우리나라에도 iPlayer와 유사한 서비스는 있다. 지상파 방송사들이 함께 서비스하는 콘팅(Conting)이 그것이다. 그러나 Conting과 iPlayer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가장 큰 차이는 iPlayer는 무료이고 Conting은 유료라는 점이다. 물론 BBC는 안정적인 수신료 재원에 기반을 둔 공영방송이기에 다양한 콘텐츠를 무료 제공하는 것이 다소 수월했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시청자가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서비스가 마련된다면 이후 여러 가지 수익모델을 개발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차이점은 또 있다. Conting은 오로지 wmv 포맷만 지원하는 반면, iPlayer는 인터넷은 물론이고 게임용 셋톱박스 및 스마트폰에서도 재생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포맷을 지원한다는 점이다. iPlayer는 최근 몇 년간 개방형 표준 플랫폼으로 진화하기 위한 Canvas 프로젝트 및 소셜네트워킹 기능을 더하는 시도도 하고 있다고 하니 개방성에서는 이제 비교조차 되지 않는 수준이다.

 

위와 같은 iPlayer의 사례에서 우리나라의 방송사들이 얻었으면 하는 아이디어는 바로 ‘과감하게 송출망을 다변화하는 시도’이다. DMB라는 모바일방송 수단이 있지만 해상도가 제한돼있고, 스마트폰이 보편화되는 시점임에도 스마트폰을 통해 방송 프로그램을 보는 방법은 라디오를 제외하곤 극히 제한적이다. 어떠한 단말기로도 방송을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송출망을 다변화하고 접근성을 강화하는 것이 최선이다. iPlayer가 스마트폰은 물론이고 게임콘솔 및 케이블 셋톱박스에 이르기까지 멀티플랫폼 전략을 쓰는 이유는 BBC 콘텐츠에 대한 접근성을 극대화하려는 노력이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아이폰 1년이 가져온 스마트폰 열풍은 사람들을 TV 수상기에 등을 돌리게 하는 위기이기도 하지만, 스마트폰을 통해 TV Everywhere가 가능해지는 또 하나의 기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