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종편

[비평] 우울한 종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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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 화려하게 개국한 종합편성채널의 시작은 독보적이었다. 특히 서울 세종문화예술회관에서 성대히 열린 개국 축하쇼에 이어 정부 주요인사가 참석한 면면은 가히 ‘혁신적’이었다. 마치 새로운 미디어 패러다임의 미래를 보는듯 했다. 적어도 그들의 눈에는.

여기서 눈을 조금 돌려보자. 당시 종편 개국 직전까지 ‘반대’를 주장하며 결사 항전을 외치던 전국언론노동조합은 개국일 당일에도 세종문화예술회관 옆 계단에 진을 치고 기세를 올렸다. 비록 종편 개국행사를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현장의 열기로 볼때 전국언론노동조합의 기세가 더욱 등등했으리라. 하여튼 여러가지로 희한한 개국식이었다. 서로 어울릴 수 없는 여러가지 조합들이 기묘하게 어우러져 역설적인 냄새를 내뿜는.

그리도 지금이 왔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종편의 갖은 방송사고와 괴상한 프로그램 구성, 이어지는 사회적 물의를 일일히 나열하지는 않겠다. 또 모회사라고 부를 수 있는 신문의 힘으로 기업들을 압박해 무리한 광고를 요구하는 일도 논하지 않겠다. 언론 호도의 전형적인 추태와 고착화된 소위 ‘아전인수’격 해설도 이제는 입만 아프다. 실제로 시민단체에서도 종편 개국 초기 두눈을 부릅뜨고 프로그램의 면면을 해부하고 분석했지만 이제는 그런 소식이 뜸하다. 나처럼 지쳤으리라.

하지만 지금의 상황에서 이것만큼은 논해야겠다. 바로 종편이 처한 현재의 상황이다. 그리고 대부분 알고있다. 종편은 지금 최악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누군가는 그 위기를 애절한 눈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누군가는 통쾌함을 느낄것이다. 하지만 중요한것은 현실이기에, 바로 지금 2012년 7월 종편이 마주하게된 실질적인 위협을 서늘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사실 여기서 돈 문제는 논외다. 종편이 한 달에 500억 원에 가까운 돈을 허공에 날렸다해도 그것은 어차피 ‘구조의 문제’다. 그리고 그 구조의 문제는 완전히 동반소멸하기 전까지는 어느정도 회생 가능성도 있다. 사실 지금 종편의 위기는 돈 문제 등 구조적이고 눈에 보이는 위협이 아니라 눈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언제 등 뒤에서 튀어나온지 모르는 ‘의식적 문제’에 있다. 선정성 논란이다.

여기서 반문할 수 있다. 선정성 논란이 왜 종편의 실제적 위험이 되드냐고. 더 나아가 그러한 선정성은 종편의 위기를 극복하게 할 기회가 될 수 있지 않느냐고. 일견 맞는말이다. 이제 15여 년의 시간동안 자리잡은 케이블 방송을 보자면, 도대체 선정성 논란에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럭저럭 성장을 유지하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긴 하다. 하지만 종편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종편은 애초 개국 당시부터 지상파 수준의 방송 콘텐츠를 제공하겠다며 야심차게 스타트를 끊었다. 아예 MBN은 "지상파를 뛰어넘는다"고 전하기도 했다. 물론 개국 한 달만에 받아본 시청률은 참담했지만 어쨋든 출발 자체는 ‘지상파 수준’이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자승자박이 논리가 시작된다. 아예 케이블처럼 새로운 미디어로의 출발을 패러다임으로 잡은 것이 아니라 지상파를 다분히 의식하고 시작한 종편은, 그 시작이 신문사로서의 울분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결국 대실수로 판명되고 만다. 국민여론 자체가 좋지 않고, 편향적인 정치자세가 더해진 종편은 ‘스타트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잘못 잡은셈이다. 여기서 선정성 논란이 불거지니, 시청자들은 더욱 분노할 수 밖에. ‘케이블이라면 모를까. 종합편성채널이! 물론, 예상은 했지만…’ 여기에는 전혀 지상파스럽지 않은 방송 사고도 일조했다. 이제 종편들의 ‘지상파처럼’은 ‘심의를 지상파처럼’이라는 박만 방송통신임의위원회 위원장의 단어로만 남았다.

다시 한번 따져보자. <친애하는 당신에게> 외에도 <아내의 자격>, <해피엔딩>, <러브 어게인>, <굿바이 마눌>  등…종편 대부분의 드라마는 ‘불륜’에 뿌리를 두고있다. 이런 상황에서 종편은 의식적 문제로 도전받는다. 애초 지상파를 표명했던 종편은 단순한 ‘말’에 불과했던 자신들의 발언이 날카로운 칼날이 되어 가슴에 깊히 박히게 된 셈이다. 이러한 문제는 돈이 없어도 꾿꾿하게 버티는 종편에게 의외의 강력한 위기가 될 것이다. 자신들이 호기롭게 한 바로 그 말. ‘지상파처럼’ 바로 이 한 마디 때문에.

시청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종편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고, 또 기억하고 있다. 미디어 악법이 무엇이고 언론장악이 무엇인지도 알고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종편이 ‘지상파처럼’이라는 말을 하는 순간 종편 스스로 수렁에 빠지게 된 것이다. 시청자들은 생각한다. ‘언론장악의 부산물인 종편이 지상파처럼 하겠다고? 그래 어디 한번 보자’…하지만 현실은 불륜에 선정적인, 지상파 아침 드라마의 소재로도 못써먹을 수준이다. 동시에 시청자는 냉소한다. 그리고 더욱 철저한 종편 혐오론자가 된다. 정치적 편향성이나 방송사고 등은 차라리 낫다. 그러려니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으니..하지만 선정성 논란은 좌-우나 정치적 지형을 봐도 공통의 논란이다.

이건 돈 문제 이상의 것이다. 몸이 무너지면 고칠 수 있지만 마음이 무너지면 고치기 힘들듯이, 종편은 존재자체를 의심받는 괴상한 미디어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뭐든지 근본을 의심받으면 뿌리부터 흔들리가 마련이다. 종편의 위기는 여기에 있다. 바로 ‘여기’. 종편을 비웃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차가운 웃음에.

물론 지상파도 완전하지는 않다. MBC 파업 사태를 보라. 얼마나 리얼한 동물의 왕국이 펼쳐지는지. 어쩔때는 종편보다 못할때도 있다. 그래도 종편은 일관성이라도 있지, MBC의 현재 방송들은 아주 심각한 수준이다. 그리고 이를 바로잡기 위한 노력이 파업의 형태로 분출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에서 SO 권역규제 완화와 PP의 매출제한 조정을 실시하고 있다. 이는 곧 CJ의 힘을 강하게 해줄 것으로 보이며 동시에 CJ의 종편 매각설이 다시 힘을 받는 중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치의, 경제의 문제다. 그렇다면? 아마 종편이 무너진다면 그 결정타는 ‘의식의 문제’일 것이다. 지상파를 표방한 초기 종편의 어리석은 그 ‘한 마디’. 그 ‘한 마디’에 모든것이 시작되었고, 무너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