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창조과학부의 LTE 주파수 할당 방식에 반대하는 KT 노동조합의 행보가 노골적이다. 9일부터 과천정부청사 앞에서 노조원 5,000명이 참석한 대규모 규탄 집회를 가진 후 대국민 선전전과 정부 압박 카드를 연달아 뽑아들며 집단행동에 나서고 있다. 동시에 이들이 KT 민영화 이후 근 15년 만에 극렬투쟁을 선포한 배경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KT 노조는 3일 기자회견, 9일 정부종합청사 집회 등을 열고 정부를 압박하는 한편 10일부터는 국회 및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선전전을 추진하고 있다. 일정도 살인적이다. 노조 수뇌부는 노조원들에게 반차를 쓰고 이번 집회에 참석하라고 종용하는 한편, 대부분의 일정을 1시간 단위로 쪼개 각 담당자의 관리를 전제로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조직을 풀가동하고 있다. 심지어 노조 수뇌부는 노조원들에게 배낭과 침낭 등 ‘투쟁물품’을 체계적으로 지급하고 있으며 노동가요와 율동까지 새롭게 가르치고 있다. 게다가 하루 일정이 종료되면 그날을 평가하고 술회하는 자아비판의 시간도 가진다고 한다. 민영화 전, 사장의 퇴진을 유발하고 서울 명동성당과 여의도 공원을 질주하던 강성 KT 노조의 영혼이 15년 만에 불타오르는 느낌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분석하고 있듯이, 이번 KT 노조의 주파수 투쟁은 관제 데모의 성격이 농후하다. 미래창조과학부도 이런 부분을 감지한 듯 9일 오후 이례적으로 반박 브리핑을 열고 주파수 할당안 변경은 없을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심지어 KT 부사장 출신의 윤종록 미래부 2차관은 “(KT 노조의 집회는 정부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라며 불편한 심경을 감추지 않았다. 이러한 발언의 배경에는 KT 노조의 집회가 곧 KT 수뇌부의 뜻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는 셈이다.
그러나 이번 KT 노조의 대대적인 투쟁을 단순히 주파수 할당전에만 국한해서는 곤란하다. 물론 노조는 미래부의 주파수 할당 정책을 규탄하며 거리에 나서고 있고 그 뒤에는 사측의 공고한 지원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은 지울 수 없지만, 여기에는 더 큰 의혹이 숨어있다. 바로 이석채 회장의 노림수다. 비록 노조원들 사이에서 LTE 주파수를 뺏기면 임금이 체불될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나돌기는 하지만, 그리고 이 소문이 노조의 강력한 집회를 유발했다는 설이 있지만, 이는 사실 부차적인 문제라는 뜻이다.
최근 업계에서는 검찰이 막바지에 이른 CJ그룹 수사를 종료하고 다음 순서로 KT의 이석채 회장을 노린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실제로 한국일보의 주간지인 ‘주간한국’ 2484호는 KT에 대한 검찰의 수사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고 보도하며 조만간 의미 있는 리액션이 나올 것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본지 확인 결과 의혹은 충분하지만 실질적인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만약 검찰이 KT를 수사한다면 특수3부가 움직인다는 것은 확실해 보이지만 사정기관의 KT 수사에 대해서는 아직 밝혀진 바가 없다.
하지만 역으로 이런 사정기관의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바로 KT의 대응이다. 최근 KT는 친박계 좌장이었던 홍사덕 전 의원을 비롯해 김병호 전 의원, 뉴라이트 대변인 출신 변철환 씨 등을 잇달아 영입하는 한편 검사 출신의 정성복 사장과 남상봉 전무에 이어 서울중앙지검 영장전담판사 출신 박병삼 상무를 ‘폭풍 영입’했다. 동시에 업계에서는 이러한 KT의 대대적인 영입이 검찰 수사 무마용이 아니냐는 분석을 내리고 있다. 충분히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게다가 서유열 KT 커스터머 부문장(사장)이 한동안 출근을 하지 않다가 돌연 미국행에 오르고 뒤를 이어 남규택 부사장이 재빠르게 대행을 맡은 부분은 이러한 의혹을 더욱 짙게 만든다. 서유열 사장은 이명박 정부 당시 소위 대포폰 제공에 휘말린 바 있으며 상무에서 시작해 전무, 부사장, 사장으로 승승장구한 인사다. 그랬던 그가 갑작스러운 미국행을 택한 것이다. 당연히 석연치 않다. 동시에 전문가들은 KT 이석채 회장이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 전 정권의 인사를 스스로 잘라내는 액션을 취함으로써 자신의 KT 지배를 보장받으려 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시 KT 노조 집회로 돌아오면 사안은 더욱 명확해진다. 물론 KT와 KT 노조에 있어 LTE 주파수 할당은 그 자체로 자신들의 명운이 걸린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러한 노조의 대대적인 압박은 주파수 할당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KT와 노조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더 큰 그림이다. 바로 ‘공고한 노-사의 단결’이다.
이석채 KT 회장은 지금까지 자신의 친정체제를 공고히 하는 것에 공을 들여왔으며, 주주들은 막대한 배당금을 챙겨주는 이 회장의 경영을 지지하고 있다. 그가 ‘회장’이라는 직함을 만든 것도 문제 삼지 않으며 통신분야의 적자와 지역 전화국의 건물과 구리선을 팔아도, 20여 개에 이르는 계열사를 마구잡이로 사들이고 있어도(이쯤이면 일반적인 재벌이나 다를 바 없다) 전혀 개의치 않는다.
하지만 외부의 충격은 아무리 이 회장이라도 어찌할 수 없다. 특히 민영화 이후 KT가 ‘정권의 전리품’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요즘 개인비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사정기관의 칼날은 심각한 위협이다. 그리고 이 회장은 자연스럽게 외부 인사를 영입해 그 칼날을 막는 한편, 이번 대대적인 주파수 투쟁 집회를 통해 자신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노-사의 관계를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래서일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KT 노조의 관제 데모 의혹에 사측은 물론 노조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물론 기계적으로 ‘아니다’는 제스쳐를 취하고 있지만 사실상 맞불 작전을 놓은 미래부를 두고 KT 노조는 아무렇지도 않게 압박의 수위를 올리고 있다.
동시에 궁금해진다. KT 부사장 출신이지만 결코 이석채 회장과 원만한 관계라고 보기 어려운 윤종록 미래부 2차관이 KT 노조의 강력한 태클에 어떻게 대응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