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VSB와 지상파 콘텐츠 활용

[분석] 8VSB와 지상파 콘텐츠 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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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 SO8VSB 허용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본지에서도 해당 부분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지만(관련기사 : 8VSB, 예정된 논란) 8VSB 허용 문제는 대한민국 미디어 시장을 뿌리까지 뒤흔들 뇌관이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인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본지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의 관련 업계와 언론에서는 케이블 SO8VSB 허용 문제를 두고 한시적인 접근방법, 즉 케이블 SO8VSB 허용에 따른 종합편성채널 특혜와 군소 PP의 퇴출 등으로 대표되는 직접적인 사안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경향이 있다. 물론 해당 문제에 대해서 책임있는 자세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이 문제를 미디어 시장 전반으로 끌어오면 더 무서운 변수가 자리하고 있음을 인지할 수 있다. 정치적인 관점에서 케이블 SO8VSB 허용 문제를 짚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케이블 SO8VSB 허용을 두고 대립전선은 명확한 편이다. 일차적인 기준은 디지털 전환을 위한 투자를 얼마나 진행했냐다. MSO를 비롯해 MPP, 여기에 군소 SOPP 모두 고화질 서비스를 위한 투자를 얼마나 충실하게 지원했느냐로 8VSB 허용에 접근하는 방식이 다르다. 그리고 이차적 기준은 군소 PP 생존의 문제, 삼차적 기준은 종편 및 보도전문채널의 영향력 확대 여부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케이블 SO8VSB 허용 문제가 콘텐츠와 관련된, 즉 이차적으로 지상파 콘텐츠를 가공하는 유료방송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사안을 약간 비틀어서 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는 케이블의 8VSB 허용을 반대하면서도 내심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위성방송 및 IPTV의 태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위성방송 및 IPTV는 케이블 SO8VSB 허용에 대해 분명히 반대입장을 보이고 있다. 해당 사안과 여러모로 비슷한 클리어쾀 TV 출시를 두고 위성방송과 IPTV가 우려의 뜻을 내보인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런 기조는 8VSB 허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케이블 SO 특혜(종편 특혜)라는 관점에서 위성방송과 IPTV는 일정 정도 반대의 입장을 보이는 것으로 이해해도 된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반대의 기조가 만약 자신들에게도 해당되는 혜택이라면 언제든지 180도 달라진 것이라는 점이다. 실제로 위성방송 및 IPTV 업계에서는 수평규제의 큰 틀 안에서 자신들도 8VSB 허용의 혜택을 받아야 한다는 기류가 포착되고 있다.

이 대목에서 8VSB 허용 문제는 더욱 본질적인 질문으로 파고든다. 정리하자면, 케이블 SO8VSB 허용을 두고 다른 유료방송들이 같은 혜택을 받으려는 움직임이 시작되면서 동시에 지상파 방송사의 콘텐츠를 두고 각자의 정의들이 맹렬하게 충돌한다는 뜻이다. 상황은 이렇다. 유료방송은 지상파 방송 콘텐츠 서비스가 아주 중요한 핵심이다. 그리고 유료방송 전체에 대한 8VSB 허용 문제는 결국 지상파 방송 콘텐츠의 재송신을 기존의 저화질에서 고화질로 끌어올리는 문제로 격상된다. 8VSB 허용 문제에 지상파 방송 콘텐츠를 활용하는 유료방송의 입장이 고스란히 반영된다는 뜻이다. 결론적으로 케이블 SO8VSB 허용 문제가 전체 유료방송의 목적으로 굳어질 공산이 크며, 만약 이러한 점이 받아들여 지더라도 최소한 유료방송은 자신들의 서비스 운신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것이 역무침해를 일으키든, 일으키지 않든 말이다.

현재 케이블 SO8VSB 허용은 케이블 SO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유료방송의 8VSB 허용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다. 물론 케이블 SO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료방송 플랫폼은 케이블의 8VSB 허용을 반대하지만 만약 이러한 특혜가 자신들에게 주어지면 마다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유료방송의 핵심 서비스인 지상파 콘텐츠 미디어 서비스도 격랑을 일으킬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현재 지상파 방송사와 케이블 SO 사이에 체결된 CPS 과금 대상은 디지털 케이블 가입자에 한정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케이블 SO8VSB 방식이 허용되면 아날로그 가입자도 고화질 미디어 서비스를 누릴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아날로그 가입자는 CPS 과금 대상에서 빠지면서도 디지털 케이블 가입자에 준하는 미디어 서비스를 받는 것이다. 아날로그 케이블 입장에서는 고화질 미디어 서비스를 누릴 수 있으니 긍정적이지만, 지상파 콘텐츠는 그 만큼의 동력을 잃어버리는 격이다. 엄연히 케이블 SO가 디지털 인프라 구축을 통한 투자로 행해져야 하는 서비스가 지상파 방송 콘텐츠의 희생으로 이뤄진다는 뜻이다. 이는 장기적으로 고품질 지상파 콘텐츠 사업의 붕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상상해보자. 위성방송과 IPTV도 이러한 전철을 따르지 말라는 법이 없다. 손 안대고 코를 풀려는 생각은 누구나 하는 법이다.

단언컨대, 케이블의 8VSB 허용은 명백한 케이블 특혜다. 자신들의 정당한 투자로 행해져야 하는 고품질 미디어 서비스를 포기하고 전 세계 유려없는 케이블 8VSB 허용을 주장하는 것은 후안무치한 행동이다. 차라리 정부에 디지털 전환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3조 원 규모의 지원을 요구할때가 뻔뻔하지만 더 현실적이다. 여기에 종편 및 보도전문채널의 고화질 서비스를 위한 24개 군소 PP의 퇴출 가능성과 케이블의 근원적 가치인 다양성의 부정은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지경이다.

여기서 8VSB 허용 문제가 전체 유료방송으로 번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유료방송은 시청자의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열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겠지만 그 과정에서 유료방송 스스로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은 사라지고 지상파 콘텐츠의 희생 가능성만 농후해진다. CPS 과금 대상의 재설정을 포함한 재송신 계약에 대한 선제적인 대응은 물론, 지상파를 중심으로 하는 콘텐츠의 지적 재산권을 확립하는 계기가 바로 케이블의 8VSB 허용 논란의 시작에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