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미디어렙 고시, 다 죽자고?

[분석] 방통위 미디어렙 고시, 다 죽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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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방송통신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방송광고 결합판매 지원고시’를 최종 의결했다. 해당 고시안은 OBS의 방송광고를 민영미디어렙이 전담하고 SBS에서 결합판매하던 불교방송, 원음방송, 경기방송을 공영미디어렙이 맡기는 방식 등이다. 단, 공영 미디어렙을 강하게 요구하던 OBS가 민영 미디어렙에 속함에 따라 광고 시장 추이를 살펴 1년 후 재논의 한다는 단서를 포함시키는 한편 OBS의 방송 결합판매 액수를 17.3% 인상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디어렙을 둘러싼 후폭풍은 여전히 거세다.

우선 OBS의 격한 반발이다. 당장 OBS는 내부에서는 이번 고시안을 ‘최악의 상황’이라고 진단하는 한편, 더 나아가 방송사의 존립을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 마디로 ‘패닉’상태인 것이다. 여기에는 SBS가 주도하는 민영 미디어렙에 포함되는 순간 OBS가 SBS의 종속 방송사가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도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 공영 미디어렙에 속한 타 중소 방송사도 볼멘소리를 내는 것은 마찬가지다. 특히 개인이 소유한 경기방송은 물론 라디오 방송사까지 공영 미디어렙에 속하게 됨으로서 상대적으로 규모가 있는 CBS 라디오에도 불이익이 오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즉 CBS, 원음방송, 경기방송, 라디오 등 너무 많은 매체가 공영 미디어렙에 지정됨으로서 정해져 있는 광고 시장의 ‘파이’를 나누어 먹을 곳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특히 개인 방송과 라디오 방송까지 공영 미디어렙에 포함시킨 것은 문제의 소지가 많다는 것에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바이다. 양문석 상임위원도 5일 전체회의에서 이 같은 발언을 한 적이 있다.

여기에 SBS 미디어 홀딩스가 40%대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민영 미디어렙도 불만이다. SBS는 5일 보도자료를 내고 방통위의 지상파방송광고 결합판매 고시는 과도한 행정조치의 전형이라고 반발했으며 특히 민영 미디어렙이 OBS 광고를 책임지게 된 데 대해 “OBS는 SBS와 방송권역이 사실상 중복되는 수도권 경쟁 민영방송사“라며 이는 ”자기회사 대리점에서 경쟁사 제품을 전량 판매하도록 강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OBS도 민영 미디어렙에 속하는 것을 바라지 않겠지만 이는 민영 미디어렙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이는 향후 1년 간 OBS의 광고 매출이 험난한 길을 걸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함과 동시에, 민영 미디어렙에 속한 방송사의 성격에 따라 각각의 반응을 고려해야 한다는 정책적 교훈을 남기고 있다. 물론 SBS의 이 같은 보도자료는 민영 미디어렙에 가해지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쉴드’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마지막으로 민영 미디어렙에 속한 지역 네트워크 방송사들도 ‘SBS 종속화‘를 걱정하며 꾸준히 반발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이번 방통위의 미디어렙 고시안을 두고 많은 전문가들은 “현 상황은 1공영 1민영이냐. 1공영 다민영이냐를 두고 많은 이들이 고민했던 부작용이 현실화 된 것”이라고 꼬집으며 “공영 미디어렙과 민영 미디어렙의 성격이 명확하게 다르기 때문에 각 방송사의 특성을 살리는 부분에서 정책적 난맥을 겪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아울러 이들은 “현재 이 같은 혼란상황을 가장 잘 해결하려면 민영 미디어렙의 특정 지분 비율을 절반 정도로(20% 수준) 줄이고 공영 미디어렙 대상 매체의 성격을 따져 적절하게 걸러내는 것이다”고 전했다. 즉 민영 미디어렙이 SBS와 같은 특정 매체의 종속에서 벗어나게 하고 공영 미디어렙의 ‘쏠림’현상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공-민영의 성격을 나누어 각각의 미디어렙에 종속 시키는 원칙을 세우자는 주장의 연장선상이라 볼 수 있다. 여기에는 최민희 민주통합당 의원이 준비하고 있는 미디어렙 법안 개정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동시에 이러한 논란을 두고 지금 행해지고 있는 모든 ‘소동의 근원’인 종합편성채널의 책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높다. 미디어렙 자체가 종편의 등장으로 인한 미디어 생태계 교란의 측면이 크기 때문에 비록 기존 방송사들이 원했던 일이 발생했다고 해도 어쨌든 그 명확한 책임은 종편이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각 방송사들은 지금까지 은근히 미디어렙 체제의 재편을 원해왔으나 이를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상황이었고, 이런 상황에서 종편이 등장해 직접 광고 영업을 하겠다고 주장함에 따라 각 방송사들이 못 이기는 척 ‘혼돈의 구덩이’로 뛰어들었다는 현실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다 해도 역시 문제의 원흉은 종편의 등장이며, 지금의 미디어 생태계 파괴는 온전히 종편의 존재로 인해 벌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또 그들은 종편이 10년 전만해도 신문 사업자의 입장에서 미디어렙 재편을 반대했다가 2011년 겨울 다시 미디어렙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카멜레온같은 행태를 보인 점, 그리고 2012년 하반기 자신들의 난입으로 헝클어져버린 미디어렙 시장을 두고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책임있는 미디어의 모습이 아니라는 비판도 가하고 있다. 물론 이 상황에서 종편이 나서는 것은 공정한 여론 형성에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타격도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에 ‘몸 사리는’ 종편이 이를 무릅쓸 확률은 낮은 편이다.

아울러 전국언론노동조합 및 언론개혁시민연대, 민주언론시민연합 등 많은 시민단체들이 2012년 초에 약속했던 미디어법 개정을 위한 노력도 빨리 동력을 얻어야 한다는 주장도 고조되고 있다. 반드시 미디어렙 법 개정을 해내겠다는 이 들 시민단체의 주장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라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 시민단체의 가시적인 노력은 전무한 상황이다. 당장 당시의 난국을 수습하기 위한 일회성 발언이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