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주요 이통사들이 700MHz 협의회를 발족한 진짜 이유는?

[미디어 비평] 일본 주요 이통사들이 700MHz 협의회를 발족한 진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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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디지털 전환을 앞두고 직접수신율 제고 및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 현실화, 방송용 필수 주파수 활용 방안이 미디어 정국의 화두로 떠오른 가운데 해당 주파수를 둘러싼 이웃나라 일본의 움직임을 [전자신문]이 보도해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이에 [전자신문]은 ‘일본의 이통사들이 700MHz 대역 주파수에 대한 긴밀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며 ‘NTT도코모, KDDI, 이엑세스, 오키나와셀룰러 등 일본 주요 이동통신업체는 700MHz대 활용 추진협의회를 발족했으며, 이들은 할당받은 700MHz를 빠르게 이동통신 광대역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힘을 모으겠다는 의지를 보였다’고 전했습니다. 동시에 [전자신문]은 ‘해당 주파수의 활용을 위해 일본 주요 이통사들은 예산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와 긴밀한 협조에 들어갔다’고 마무리합니다.

물론 [전자신문]의 기사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일본 니혼게이자이 신문에서는 이 같은 일본 주요 이통사들의 협의회 발족을 소개하며 700MHz 대역 주파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장고에 돌입했다고 보도했지요.

하지만 이러한 일본의 소식을 전한 [전자신문]의 기사에는 미묘한 부분이 보입니다. 바로 ‘700MHz 대역 주파수를 할당받은 일본 이통사들이 협의회를 발족했다’는 부분입니다. 이 자체는 맞는 말이지만 기사의 뉘앙스는 마치 일본의 이통사들이 700MHz 대역 주파수 전부를 할당받아 그 활용을 논의하기 위해 협의회를 발족한 것처럼 보입니다. 아닙니다. 일본 총무성은 2011년 ‘Wireless Broadband 실현을 위한 주파수검토 워킹그룹’을 열고 총 4가지의 700MHz 대역 주파수 재편안을 두고 심의한 결과 AWG(아태 무선 그룹)의 안을 유력하게 검토한 다음 이를 일본의 상황에 접목했을 때 470~710MHz 디지털 방송에 보호대역이 710~718MHz, 휴대전화의 상향 주파수가 718~748MHz에 배치되고 이에 대한 보호대역이 748~755MHz, ITS가 755~765MHz로 재편이 가능하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결과 통신에는 상하위 30MHz 씩만 할당된다는 결론이 내려졌고요. 그리고 총무성은 2012년 2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이동통신시스템의 기술기준 등의 총무성령 및 고시’를 개정해 발표했습니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또 하나의 의문이 고개를 듭니다. 일본이 700MHz 주파수 전부를 이통사에 할당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상당한 ‘폭’을 이통사에 할당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지요. 현재 대한민국의 지상파 방송사 및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방송협회가 주장하는 700MHz 대역 주파수 방송 할당에 비추어볼때 상당한 온도차이가 느껴집니다. 그렇다면, 일부 친통신 언론사들이 주장하는것처럼 대한민국 방송통신위원회가 주장하는 ‘모바일 광개토 플랜’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지상파 방송사들이 국제적인 하모니를 무시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여기에는 일본의 특수한 상황이 숨어있지요.

일본의 디지털 방송 방식(ISDB-T)은 미국식 ATSC를 쓰는 대한민국과 달리 유럽과 같은 OFDM(Orthogonal Frequency Division Multiplex : 직교주파수분할다중)방식을 사용하여 단일주파수방송망(SFN : Single Frequency Network) 구성이 가능합니다. 당연히 네트워크 효율이 우수하고 적은 주파수로 상당한 효율을 기대할 수 있는 구조이지요. 물론 대한민국도 일본과 같이 주파수 효율이 좋은 디지털 전송 방식을 택할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2004년 당시 미국을 대상으로 하는 가전제품 수출을 원활하게 하기위한 제조사의 입김에 정부가 승복함으로써 당시 정부는 디지털 전송방식을 유럽식이 아닌, 미국식을 택하는 실책을 범하게 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디지털 방송 시대를 맞이해 주파수 혼선 및 기타 난시청 해소의 기회가 또 한번 멀어졌고요.

그러나 일본은 다릅니다. 주파수 효율이 좋은 유럽식을 택한 일본은 전국의 디지털 방송 전환기에 소요되는 UHF 대역도 470~770MHz만 소요되었을 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날로그 방송이 종료되는 시점에 710~770MHz의 60MHz만 반납되었습니다. 즉 종합하자면 일본의 경우 디지털 전송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효율성을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적은 주파수로 어느 정도의 디지털 방송을 보장할 수 있었기 때문에 700MHz 대역 주파수 60MHz폭이 통신사에 할당된 것입니다. 글쎄요. 이 부분에서 대한민국의 상황은 참담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가뜩이나 주파수 효율이 낮은 미국식 디지털 전송 방식 채택에, 방통위는 700MHz 대역 주파수 108MHz폭 전체를 통신사에 할당하겠다는 ‘모바일 광개토 플랜’을 주장하고 있으니. 군용 주파수 및 위성 DMB 종료로 확보가능한 주파수 모두 통신에 몰아주는 것도 모자라 공공의 영역인 방송 주파수마저 통신사에 몰아주려는 대한민국은 역시 통신 IT 강국이 맞긴 맞나봅니다.

 

   
 

자, 다시 [전자신문]으로 돌아와 봅시다. 사실 이 기사에서 중요한 부분은 ‘700MHz 대역 주파수 활용을 위해 일본 이통사들이 협의회를 구성했다’는 대목이 아닙니다. 바로 ‘해당 주파수 활용을 위해 일본 이통사들이 기지국을 세우고 정비하는데 약 6,500억 엔(한화 10조 원)이 소요된다고 총무성에 보고했으며, 디지털 방송과의 전파 간섭 가능성에 대해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협의회를 구성했다’는 부분입니다. 보세요. 대한민국보다 훨씬 디지털 방송 수신 인프라가 좋은 일본도 막상 해당 주파수의 일부를 통신에 할당하자 ‘심각하게 고려해야할 부분’이 생깁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어떤가요? 가뜩이나 상황이 안 좋은데 700MHz 대역 주파수를 모두 통신사에 넘긴다? 비록 지금은 상하위 할당이라고 하지만 글쎄요, 방통위가 아득아득 지키려고 하는 와이브로 주파수에도 눈독을 들이는 통신사의 태도로 볼 때, 그리고 유난히 통신사와 가깝다고 의심받는(?) 통신사 출신 방통위원장이 있는 상황을 볼 때, 2013년 주파수 재배치 상황은 왠지 불안하기만 합니다. 여기에 그 위원장이 전파주간행사에서 “주파수 재배치 속도를 내겠다”고 천명까지 했으니. 요즘 국가 재정이 어렵다는데 참 특이한 방법으로 국가 재무상황을 개선하려고 한다는 생각도 드네요.

게다가 일본을 벗어나 전 세계를 볼까요? 지난 ABU 서울 선언문 채택에서도 볼 수 있듯이 700MHz 대역 주파수 방송 할당은 방통위가 WRC-12 왜곡 보도자료를 뿌린다고 해도 절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습니다. 당장 유럽의 상황을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왜 WRC-12에서 일부 아프리카와 중동 국가들이 700MHz 대역 주파수를 통신에 활용하자고 임시안건을 냈지만, 결국 해당 논의가 2015년으로 넘어가고 말았을까요? 바로 해당 주파수를 방송에 활용하는 유럽 국가들의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도 방통위는 WRC-12 결과를 ‘700MHz 대역 주파수 통신에 활용하기로 전 세계 합의’로 포장해 보도자료를 뿌렸습니다. 이것 말고 전 세계 60개국 223개 ABU 회원사들이 ‘700MHz 대역 주파수 방송 할당’을 촉구하는 서울 선언문에 대한 보도자료나 한번 내주지. 살짝 삐질뻔 했습니다.

   
 

맛있기로 유명한 해장국집이지만 반찬으로 나오는 고추냉이는 유난히 맛이 없었다고 칩시다. 이런 상황에서 그 고추냉이를 먹어보고는 ‘이 집은 음식이 맛이없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물론 고추냉이는 진짜 맛이 없을 수 있어요. 하지만 해장국이 정말 맛있다면 그 집은 ‘맛집’이 될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왜냐고요? 그 집은 고추냉이집이 아니라 해장국집이니까요. [전자신문]의 일본의 700MHz 대역 주파수 활용 보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소한 팩트의 온도 차이를 확대해석해 괜한 트집을 잡은 필자도 문제지만, 최소한 ‘오해의 소지가 있을법한 일’은 안하시는 것이 건강에도 좋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