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못하는 ‘두둔’

[미디어 비평] 이해 못하는 ‘두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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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계철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취임 백일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몇몇 언론에서 이 같은 사실을 짤막하게 보도했을뿐, 의외로 조용히 지나가는 모양새입니다. 전임 최시중 씨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며 온갖 이슈의 중심에 섰기 때문일까요. 후임인 이계철 위원장은 취임 백일을 맞이해도 왠지 소위 말하는 ‘감’이 안옵니다. 혹자는 이를 두고 존재감이 없다고도 하지요.

그런데 이런 와중에 ‘노컷뉴스’의 기사 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제목은 꽤 결연합니다. [이계철 방통위원장 “취임 백일 ‘백’자도 꺼내지 마라”]입니다. 마치 조선시대 전장터에 나간 장수가 병사들에게 ‘우리는 더 승리해야한다’고 말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네요. 그 만큼 성공을 많이 거두었다는 뜻일까요. 아니면 그럴 자격이 없으니 몸을 낮추자는 뜻일까요.

이 노컷뉴스의 기사는 전자도 후자도 아닙니다. 간략하게 정리해 보겠습니다. 해당 기사에서 기자는 “최근 방통위의 분위기가 취임 백일을 축하할 처지가 아니”라며 여러 가지 총체적 난국에 빠져있음을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동시에 이계철 위원장을 위한 변명도 합니다. 이 위원장의 입을 빌려 “내가 나서는 게 옳지 않다”며 현재 이 위원장이 비판받고 있는 ‘무기력한 방통위원장’의 태도를 희한하게 미화시키고 있지요.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다음 대목입니다. 기자는 이같은 방통위의 분위기와 이 위원장의 소극적인 현안 접근 태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이계철 위원장의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하는 것은 ‘당신은 왜 최시중 처럼 못하느냐?’는 주문은 아닐지 모르겠다”는 따끔한 조언을 남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대과 없이 위원장직을 마쳤다’는 무능의 대명사가 되지는 않을 지 지극히 우려스럽다”는 애정어린 충고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 기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현재 이 위원장은 방송사 파업에 대한 어떠한 해결의지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지상파-케이블 의무 재송신 문제와 종합편성채널 백서 파문, 700MHz 대역 주파수 할당 문제 등 주요 문제에는 아예 손을 놓고 있거나 이해할 수 없는 정책결정을 내리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업계 관계자들이 “존재감이 없다”라고 비판하고 있을까요.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노컷뉴스의 기자는 이 위원장을 비판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최시중의 망령’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냐고 따지고 있습니다. 아니, 이런 말도 안되는 추측과 본질을 왜곡하는 시각은 어디서 튀어나온 것일까요? 방통위원장이라는 자리는 분명 ‘일을 해야’하는 자리이지 절대로 ‘그냥 거쳤다 가는 자리’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올바른 정책적 판단으로 해당 사안들을 처리해 나가야 할 위원장이 제대로 정책 추진을 못하고 있는데 도리어 그런 건강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에게 “너희들은 권력을 마구 휘두르던 최시중이 그립다는 것이냐”“라고 묻는다면 정말 할 말 없게 만드는 격이지요.

망중립성 문제에 있어서도, 방송사 파업 문제에 있어서도, 그리고 700MHz 대역 주파수를 무조건적으로 통신사에 할당해버린 최시중 위원장 체제의 주파수 정책에도 아무런 생각도 없이 그저 ‘친통신’을 기조로 하는 정책만 펴는 위원장은 분명 비판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절대 권력을 마구 휘두르던 최시중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정책 결정이 이루어지는 정부부처의 리더십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권력의 독선과 건강한 리더십. 노컷뉴스의 기자는 이 두가지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전국 디지털 전환을 앞두고 방통위는 무료 보편의 서비스를 추구하는 지상파 다채널 서비스에 대해 승인보류 결정을 이어가는 한편 방송사 파업에 대해서 그 어떠한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지상파 재송신 중단 문제에 있어서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케이블 측의 눈치만 보고 있으며 700MHz 대역 주파수의 올바른 할당은 커녕 방송이동종주파수에 UWB의 통신사용을 시도하는 등 노골적으로 친통신 성향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계철 위원장을 두둔하며 “최시중과 다르다. 그와는 달리 독선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아무것도 안하는 것이다’”는 말은 의미가 없습니다. 미디어 패러다임이 하루 자고나면 휙휙 바뀌는 이 시점에, 우리는 권력을 마구 휘두르며 불법을 저지르는 위원장도, 존재감 없는 정책 결정으로 그냥 손 놓고 있는 위원장도 원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