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추적자’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만나면

[문화] 드라마 ‘추적자’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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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SBS 드라마 [추적자]의 감동이 아직도 먹먹하다. 비록 드라마는 끝나고 우리 사는 세상의 적나라한 치부를 속삭이던 무대는 막을 내렸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마치 다빈치 코드를 잡아내듯 드라마 [추적자]에 깃든 의미심장한 기호와 상징을 즐기고, 또 공유하며 간직하고 있다. 아마 당분간은 이런 상황이 쭉 이어지리라.

그런데 이 대목에서, 생각보다 많은 시청자들은 드라마 [추적자]의 무수한 인간군상들 너머로 단 하나의 가치에 집중하게 된다. 그리고 그 가치는 끝없는 대립속에 드라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두 주인공에 의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야심에 불타는 추진력 넘치는 정치인이자 자신의 목표에 무서운 집중력을 보이는 악인이지만 때로는 스톡홀름 증후군까지 부르는 야누스적 인물 강동윤, 그리고 모든 것을 던져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싸우는 ‘도망자’이자 동시에 ‘추적자’이기도 한 백홍석. 이 두사람의 대결에서 말이다.

   
 

더 자세히 들어가자. 강동윤은 자신의 성공과 야망을 위해서 아내마저도 비정하게 이용해버리는 인물이다. 장인과의 치열한 두뇌싸움을 통해 스스로의 목적을 달성하려하고 방해가 된다면 처제에게도 비정한 말을 서슴치않는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사실은, 강동윤의 주변 인물들도 그런 강동윤의 행동을 너무나 쉽게 이해하고 체화시켜 자신들만의 비정한 싸움전선을 확장시킨다는 것이다. 반면에 백홍석은 어떤가. 후배 조형사의 권총으로 법원에 난입하면서도 그녀가 받을 징계걱정을 하고, 돈 때문에 자신을 배신하게 된 황반장을 보며 안쓰러운 눈물을 흘린다. 가족에 대한 사랑은 더 말하면 입만 아플 지경이다. 자신의 딸인 수정이의 명예회복을 위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던지는 백홍석. 이는 역설적으로 강동윤의 처지를 더욱 부각시키고 있었다.

이렇게 강동윤과 백홍석. 이 두사람은 극명하게 다르다. 동시에 서로가 가진 최고의 가치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강동윤은 ‘모든 것을 희생시킬 수 있는 사람’이고 백홍석은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여기서 자연스럽게 푸른눈의 이방인. 하지만 이제는 너무나 쉽게 우리에게 다가온 마이클 샌델 교수의 익숙한 화두에 집중하게 된다.

 

   
 

마이클 샌델은 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했다. 자본주의의 극대화로 인해 모든 가치의 ‘사물화’가 진행되는 현재. 과연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살 수 없는 것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지을 수 있겠느냐고. 더 나아가 그는 그러한 정의 자체가 한 사회가 속한 다양한 가치판단의 기준에 따라 너무나 쉽게 변화하며 또 진화해 간다고 말했다. 동시에 또 물어온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일견 무책임한 질문일 수 있겠지만 마이클 샌델 교수는 토론식 강의에 있어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사실을 잊지말자. 그의 말을 일단 한 번 믿어보고 우리에게 익숙한 드라마 [추적자]의 두 주인공을 모셔보자. 상상해보자. 마이클 샌델 교수가 연단에 섰다. 그리고 그는 예의 그 친근한 미소를 머금고 고급 정장과 잘 빗어넘긴 머리로 꿈틀대는 야망을 숨기고 있는 강동윤에게 묻는다. ‘이 세상에 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할 수 있을까요?’ 그러면 아마 강동윤은 이렇게 대답하지 않을까. ‘도전받지 않았던 우정을 30억의 돈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30억 이면 우리 사회의 소중한 가치를 너무나 쉽게 살 수 있지요’

하지만 우리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당황하지 않는다. 그저 은은하게 웃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수염이 덥수룩한 백홍석에게 시선을 돌린다. 아, 그의 등 뒤로 언제나 그를 응원하는 조형사와 황반장이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다. 최정우 검사도 까칠하게 빗겨서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는 질문한다. ‘백홍석 씨,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요’ 그러자 평범하게 소시민으로 살아온것이 전부인 백홍석은 미리 받아놓은 세계적 석학의 사인을 수줍게 주머니에 넣으며 말할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내 딸 수정이는 돈으로 살 수 없지요. 제 뒤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고요’

사회는 어차피 인간이 창조한 ‘구조’일 뿐이다. 그리고 그 구조는 인류가 무수한 변곡점을 그리며 부침을 거듭할 때마다 변화하고 진화해왔다. 하지만 그러는 동안 사회는 너무 복잡해져 버렸다. 그리고 그 복잡함은 다시 내부의 체계를 요구하기 시작했으며 그에 부응한 것이 ‘가치의 탄생’이다. 가치. 여기에 인간의 탐욕이 들러붙어 ‘더러운 자본주의’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21세기 이른 현재 우리는, 인류는 다시 한번 그 구조의 고착화 속에서 ‘더러운 자본주의’를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더러운 자본주의’가 정말 더럽기만 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지금도 진행중이다. 무엇이든 돈으로 사고 팔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 것 같으면서도 아직 그렇지 못한 영역이 많다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공동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신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마이클 샌델이 등장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통해 안그래도 복잡해진 논의의 장을 더욱 달아오르게 하고있다. 시원한 결론은 없고 명쾌한 정의도 없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무언가 오롯이 떠오르는 상대적인 결론들이 잡혀나간다. 어쩌면 마이클 샌델 교수는 이렇게 말하는 것일 수도 있으리라. ‘당신이 판단하라. 단, 행복한 쪽으로’ 이 부분에서의 ‘행복’은 아마 철저한 개인의 행복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번 더 상상해본다. 강동윤이 한 말. “마차가 먼 길을 가다보면 깔려 죽는 벌레도 있기 마련이지”. 이 말을 마이클 샌델 교수가 듣는다면 어떤 대답을 할까. 아마 여기에 생긴 물음표는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이게 또 마이클 샌델의 묘미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무엇이 가치를 결정하는가)

마이클 샌델 저 / 안기순 역 / 와이즈베리 / 16,000원

 

저자 마이클 샌델-미국 하버드 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이자 세계적 석학, 그는 온라인 수강이 가능한 하버드 교육 강의 ‘Justice’로 익히 알려진 바 있으며, 존 롤스(John Rawls)의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을 비판한 ‘자유주의와 정의의 한계(Liberalism and the Limits of Justice)’(1982년)를 발표하면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오늘날 대표적인 공동체주의자, 공화주의자이며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가로 유명하다. 현재 그의 저서를 통해 공동체주의적 공화주의 라는 새로운 정치 이론을 표방하고 있다. 그는 현재 미국 예술 및 과학 아카데미(the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의 특별 연구원으로 선출되어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정의란 무엇인가] [왜 도덕인가] [공동체주의와 공동성]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