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백선하) ‘홉슨의 선택(Hobson’s choice)’이라는 표현이 있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다른 대안 없이 주어진 것을 갖느냐 마느냐의 선택이다. 밥이냐 빵이냐를 고르는 것이 아니라 밥을 먹든지 아니면 굶든지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표현은 17세기 영국 케임브리지에서 마구간을 운영하던 토머스 홉슨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홉슨은 케임브리지 대학생들에게 돈을 받고 말을 빌려주던 말 대여업자였다. 그는 사람들이 좋은 말만 찾아다니자 한 가지 꾀를 냈다. 마구간 안쪽에 좋은 말을 숨기고 볼품없는 말들을 바깥쪽에 내놓아 가장 허약한 말부터 빌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말을 찾는 사람들에게 “바깥쪽의 말이 아니면 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싫으면 관두라는 배짱이었다. 사람들은 부실한 말을 빌리느냐 아니면 마느냐의 선택밖에 할 수 없었다. 타협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현재 대한민국에서도 이 같은 홉슨의 선택이 목격되고 있다. 최근 통신 업계와 일부 언론에서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올해 안에 전 세계 700MHz 주파수에 대한 이동통신용 활용(안)을 확정할 계획이라며 세계적 흐름에 맞춰 우리나라도 700MHz 주파수 잔여 대역을 통신에 할당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오는 1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개최되는 ‘2015년 세계전파통신회의(WRC-15)’에서 제1지역(유럽, 중동, 아프리카)의 700MHz 주파수 통신 활용 계획과 제3지역(아시아, 오세아니아)의 APT-700 주파수 활용 계획 등 전 세계 주파수 조화를 추구한 700MHz 주파수 합의안이 도출될 전망이라며 700MHz 주파수 대역이 대다수 국가에서 통신 대역으로 활용되는 데 우리나라만 방송용으로 쓰게 되면 정보통신기술(ICT) 주도권을 상실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우리나라도 현재 논의 중인 700MHz 주파수 잔여 대역을 통신용으로 할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통신용 할당 말고는 안 된다는 홉슨 심보다.
하지만 유럽이나 중동, 아프리카와 같은 제1지역에서 700MHz 주파수를 통신용으로 활용하는 것은 2022년~2025년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아직 방송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국가들도 있기 때문에 주파수 재배치 등의 기간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700MHz 주파수 잔여 대역인 88MHz 폭을 방송용으로 먼저 배분하고 지상파 초고화질(UHD) 전국 방송이 완료된 이후 통신용으로 활용하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1월 주파수 공청회에 참석한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2021년에는 현재 디지털TV(DTV)로 활용 중인 470~698MHz 대역으로 주파수 재배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우선 700MHz에서 UHD 방송을 시작하고 이후 주파수 재배치로 통신이 활용하면 되지 않느냐”며 새로운 방안을 제시한 바 있다. 700MHz 주파수 대역을 ‘선 방송 후 통신’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통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홉슨 식의 생각으로는 평행선만 달릴 뿐 주파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