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인이 추천하는 책
[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
아직 떠나지 못한 이들에게 전하는 작은 위로와 격려
한번쯤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도시를 걸어본 경험이 있는가? 당장이라도 배낭하나를 싸메고 터덜터덜 시골마을 버스에 올라본 적이 있는가?
매일아침 지하철역을 벗어나 한숨 섞인 외마디를 외치거나, 길지 않은 중부고속도로를 지나 금강휴게소의 물줄기를 보고 있노라면 누구나 이런생각을
할것이다.
떠나고 싶다. 떠나고 싶다. 하지만‥
그런 듯 싶다. 내가 사는 도시,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 모든 이들이 가장 많이 느끼는 비애감이 바로 자기소외가 아닐까?
얼마 전 지인으로 부터 "넌 너무 갇혀있는 건 아니니? 점점 널 잊고사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 너무 자신한테 막 대하는건 너무해!"
그러더니 몇일 후 소포가 하나 왔다.
"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 이런 제목이었다.
여행생활가, 뭐 굳이 해석을 해보자면 이렇다. 딱히 소득이 있거나 조직에 몸담고 있거나 정규교육을 다 맞췄거나, 그런 것과는 상관없다. 다만 6개월, 2년, 3년씩 장기 세계여행을 하는 사람들의 인터뷰를 모은 책이다.
그 책을 만나는 날, 첫 대면에서 드는 생각은 2가지였다.
이거 사치지 사치!! 아니야, 정말 떠나고 싶다!!
두 개의 여권에 2백 개가 넘는 스탬프를 찍었다는 저자의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저자는 낯선 여행을 떠나게 된다.
‘키오산 로드’란 방콕에 있는 여행자들의 도시라고 한다. 인도, 시드니, 캄보디아, 뉴욕, 산마리노, 알프스처럼 대중들에게 많이 공개되어 있는 도시는
아니지만 여행생활가들에겐 메카 또는 아지트(?)라고 할까? 그렇다고 한다.
열정을 불끓게 하는 그 "무엇"이란게 비일상적인 풍경들이겠지만 순간적인 만남은 중독이 아닌 묘한 에너지처럼 작용한다고 해야하나. 진짜 그런 건게 있나보다.
게스트하우스라고 있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자들의 피난처인 것처럼 저렴하면서도 숙박과 식사, 술을 함께 할수 있는 그 곳에서 이 책은 많은 인터뷰를 나눈다.
"홍익인간"이라는 키오산로드의 유일한 한국인 게스트하우스에서 말이다.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 머리를 감는데, 내가 매일매일 머리를 감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구나! 출근을 위해 나는 매일매일 머리를 감아야만 하는구나!
‘매일매일’이라는건 너무 답답하고 그런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직장생활 15년,그리고 4년을 준비해서 떠났다는 첫번째 여행자의 말이다.
"원래 돈에 대해 집착이 없는 편인데 여행하면서 더 많이 없어진것 같아요, 여기서 바가지 쓰면 막 안타까워하는 건 있어도 큰 돈 벌어서 부귀영화를 누려야겠다는 생각은 점점 없어지는 것 같아요"
고 김광석씨의 "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듣고 짐을 쌌다는 분을 종종 봤다. 무작정 떠나는 거지만 순간순간을 살아가는 법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를 즐길 수
있다는 것. 그건 무언가에 대한 강박은 없지만 시간을 낭비하며 사는 건 아니지 않는가?
대부분 여행하는 동안 한손엔 누구나 카메라가 있기 마련이다. 때론 프라하의 광장을 멋지게 찍고,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멋진 포즈를 지어 보이고 싶겠지만
이 책의 대부분 사진은 일상잡기들이다. 소떼들의 뒷모습, 받침이 틀린 한국어 티셔츠, 비닐봉지에 담긴 콜라… 흔히 볼수 없는-아니 별로 보고 싶어하지 않았던-
사진들을 본다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쏠쏠한 재미가 아닐까 싶다.
왜냐면 방콕의 거대한 사원들 보다는 오히려 노천카페의 콜라 한 잔이 훨씬 많은 행복감을 만들어 줄 수도 있으니까. 그런 모습들을 많이 담아 두는게 바로 그리움이자 매력아닐까 싶다.
책 중간정도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우리는 자주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사는게 어렵다고 투덜거린다. 자기가 하고 싶은 건 까맣게 있고 나중에 후회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산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해 사소한 것 하나라도 해주는 것에 인색하다. 디미트리스-저자가 만난 그리스인-는 이렇게 살고 싶었던게 아닌데 하면서도 어쩔수 없이 회사나 가정에 묶여 살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다고 디미트리스처럼 생활에 묶이지 않는게 쉬운 일일까? 아마 많은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디미트리스만의 자신을 사랑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에게는 의지가 느껴진다"
내가 뭔가 찾는게 있다면 항상 깨어있기를 바라는것, 그게 의지이며 용기일 것이다.
"’That`s my way!(이건 내 길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주위의 다른 세상을 보는 건 삶을 좀더 풍요롭고 여유있게 만든다,
곧 내 앞의 이 길 위에서 난 언제나 살아 있음을 느낀다"
VISA라는 말과 사증이라는 말에 참 어려웠다던 프리랜서 여행가의 에필로그에서 처럼 길 모퉁이를 동경하는 하루하루를 꿈꾸는게 얼마나 어려운지 문득 생각해본다.
참을수 없는 유혹의 중독은 여행이며, 여행에서는 곧 겸손을 배운다고 한다.
도피라는 것을 알고 도피한다면 그것도 괜찮지 않얼까?
여행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과 시간이 없어서라고 한다. 사실은 여행하는 법을 잘 몰라 못하는 건데도 말이다.
이젠 더이상 대리만족을 벗어버렸으면 한다.
떠나는 건 일상을 버리는 게 아니라, 돌아와 더 잘살기 위해서기 때문에…
p.s) On The Road는 EBS의 ‘열린 다큐멘터리’에서도 몇년 전에 방영되어 좋은 반응 있었다고 한다. 한번 찾아보시면 좋을듯.
KBS기술기획팀, 정종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