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진짜 위기가 시작됐다

[기고] MBC, 진짜 위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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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진짜 위기가 시작됐다

 

이영주(미디어 평론가, 내밀사회문화연구소장)

 

MBC 임원들, 사고치다

 

MBC 임원들이 제대로 된 사고를 쳤다. 지난 9월 27일 임원회의에서 시사프로그램인 <후 플러스>와 를 폐지하고 주말 <뉴스데스크>의 시간대를 오후 8시로 앞당기기로 한 것이다. ‘후 플러스’와 ‘김혜수의 W’의 자리에는 남자 연예인들이 1박2일 동안 여배우의 시중을 들어주는 ‘여배우의 집사’ 와 일반인 대상의 오디션 프로그램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을 편성했다. 선 시청률과 광고수입, 후 공영성이라는 명백한 지침도 김재철 사장이 직접 하달했다. 아무리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하더라도 손해 보는 장사라면 하지 말아야 한다는 기업과 상인 정신의 강조까지 곁들여서 말이다. 대표적인 시사프로그램들의 폐지를 둘러싼 정치적 배경 공방이야 그 어떤 것 하나 제대로 확인할 수 없으니 논외로 치자. 중요한 것은 지금 MBC가 ‘KBS 따라 하기’에 나섰고, 우리 사회의 지상파 텔레비전의 저널리즘이 차츰 자취를 감추게 될 것 같다는 불길하고도 섬뜩한 미래를 걱정하는 일이다. 온라인과 모바일 미디어를 통한 뉴스 소비가 지배적인 형태로 자리 잡으면서 불어 닥친 신문의 위기에 지상파 텔레비전 저널리즘의 위기가 겹쳐지고 있다. 2009년이 KBS에서 <생방송 시사투나잇>이나 <미디어 포커스> 등의 시사프로그램이 사라지고 저널리즘이 ‘명백히 보이는 손들’에 의해 길들여지는 해였다면, 2010년은 MBC의 진짜 위기가 본격화되는 해이다.

 

MBC가 직면해야 할 위기의 본질

 

그런데 왜 이것이 진짜 위기일까? 사람들이 잘 보지도 않는 보도나 시사교양 프로그램들을 자꾸 만들어봤자 별 소득이 없다는 말로부터 우리는 진정한 위기를 느끼지 못하다. 오히려 MBC의 사회적 위상과 정치적 영향력 그리고 중심적인 매체로서 오랫동안 쌓아올린 권위가 해체되거나 사라짐으로써 MBC는 이제 일개 상업 PP로 전락한다는 것이 진짜 위기다. 즉 돈의 문제가 아니라 권위와 문화적 자산가치의 손상이 문제인 것이다. 이제 MBC의 저널리즘에 있어서 무능력함이 가속화되고 사회의 여러 문제들을 심도 있게 다루고 비판하려는 의지가 상실됨과 동시에 사회적인 권위는 해체될 것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시청자의 이탈과 MBC에 대한 조롱이 확대될 것이며, MBC가 그렇게 추구하고 싶은 돈 되는 비즈니스를 실현할 수 없는 악순환의 구조를 만들어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사장과 임원진은 경영의 실패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에 대해 지금부터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저널리즘에 대한 기대의 하락이나 저널리즘의 부재는 결국 MBC에 대한 신뢰 하락을 야기할 것이다. 동시에 심층적이고 비판적인 텔레비전 저널리즘의 쇠락은 다니엘 벨이 지적한 것처럼 “일상생활에서 정치의 자리를 부정하는 것이 사회의 기초가 돼 버린 상황”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지난 2000년 영국의 문화부 장관이었던 크리스 스미스는 BBC의 저녁뉴스시간대 변경 계획에 대해 뉴스 시청자가 감소할 것이라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 뉴스를 통해 민주주의와 시민의식의 강화라는 긍정적인 사회적 결과들을 만들어내는데, 뉴스 시간대를 변경함으로써 시청자가 줄어들게 되면 이 같은 사회적 지지대가 흔들린다는 생각이 반영되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지금 MBC는 반대의 방향으로 배를 돌리고 있으면서도 이 방향이 맞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MBC, 진짜 제대로 경영하는 법을 배워야

 

방송사로서 MBC는 여러 가지 장르와 형식의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송출한다. 그런데 이러한 프로그램의 제작과 관련된 건강하지 못한 관계와 요소들이 산재하고 있다. 권력과 광고주가 가장 대표적이고 결정적인 위험요소일 것이다. 권력과 기업의 영향력 하에 놓인 MBC는 시민들의 공적인 광장을 만들지 못한다. 이것이 오래되면 방송이 그래야 한다는 것도 지각하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저널리즘이 필요한 자리에 수동적인 관음증의 대상으로 전락한 형식적이고 자극적인 소식 전달과 광고, 오락 프로그램들이 들어선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MBC의 저널리즘을 대체하거나 이에 도전하는 집단들이 많기 때문에 MBC의 최근 결정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개인 미디어의 발달로 MBC의 저널리즘을 능가하는 개인이나 집단 저널리스트들이 얼마나 많은가? 저널리즘이 일부 전문적인 엘리트들의 전유물이었던 시대는 이미 지나간 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의 저널리즘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더욱 크다. 왜냐하면 텔레비전 저널리즘은 뉴스와 의견, 토론과 논쟁의 결집점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매체를 활용한 다양한 형태의 저널리즘이 확대된다 해도 텔레비전은 궁극적으로 이것들을 모아내고 가장 중심적인 아젠다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공유하게 만드는 일종의 저널리즘 허브인 것이다. 그래서 텔레비전 저널리즘은 위축되거나 종속되거나 얄팍한 상술의 희생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텔레비전 저널리즘은 끊임없이 실험되고 자유로워야 하며, 다양한 형식과 주제들이 폭넓게 경쟁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텔레비전 저널리즘 더 나아가 텔레비전 방송사의 제대로 된 경영이며, 시청자들을 MBC의 편에 있게 만드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