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우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 세명대 교수)
태광그룹의 방통위 로비의혹은 석연치 않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국내 최대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티브로드가 큐릭스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청와대와 방통위를 상대로 조직적 로비를 벌인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해 3월 태광 직원이 청와대 행정관과 방통위 과장에게 성접대를 한 사실이 들통나기도 했다. 검찰이 태광그룹에 대한 수사에 들어가면서 큐릭스 인수에 물꼬를 튼 방송법 시행령 개정과 방통위 인수 승인 과정에 태광 쪽 로비가 개입됐는지가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방통위는 티브로드의 큐릭스 인수 승인 과정은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며 오히려 2006년 우회 지분 확보 당시 방송위 로비 의혹에 눈길을 보낸다. 자신들이 아니라 참여정부 때의 방송위쪽에 책임이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어떠한 로비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케이블 사업자를 위한 규제완화는 서로 책임을 떠넘길 일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방송위 시절부터 지금까지 일관되게 이어진 정책이기 때문이다. 케이블 방송권역확대문제는 산업 경쟁력 강화와 새로 도입되는 IPTV와의 규제 형평의 차원에서 2006년 이전부터 추진되어왔고 2008년 방통위에서 시행령을 개정한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바로 케이블 시장이 1995년 처음 도입 당시의 취지에서 벗어나 왜 대자본을 위한 잔치로 바뀌었나 하는 것이다. 그리고 방통위가 어떻게 사업자들의 요구와 이해를 충실하게 들어주었나 하는 것이다. 태광만이 아니라 케이블방송업계는 규제완화와 권역확대를 지속적으로 요구를 해왔고 방통위는 그 요구를 정책에 반영해 왔다.
1999년부터 전체 사업구역의 5분의 1을 넘지 않는 선에서 케이블TV의 복수 사업자를 허용했다. MSO화를 통한 수평·수직 결합은 대외 경쟁력 및 서비스 제공 역량을 강화하여, 프로그램의 질, 네트워크의 안정성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였다. 이어 2004년 3월에는 방송법 개정으로 대기업의 SO에 대한 33% 지분소유 상한 제한이 폐지됐다. 현대백화점, CJ그룹의 방송 진출이 합법적으로 허용된 것이다. SO 시장은 대기업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됐고 MSO의 몸집 불리기는 가속화됐다. 2008년 개정된 방송법 시행령은 아예 ‘케이블 특혜법’이라고도 불렸다. 방송구역 소유제한은 3분의 1까지 완화돼 추가적인 SO간 합병이 가능하게 됐다. 케이블업계는 수차례 규제완화를 통해 매출액을 증대시키고 사업을 확장시켜 왔다. MSO들은 음성적 로비와 규제 완화, 편법적 영업으로 몸집을 부풀리며 유료방송업계의 절대강자로 군림했다. 티브로드는 335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고, CJ헬로비전은 곧 346만 명으로 가입자를 늘릴 전망이다. 이들은 이제 조그마한 지역방송사가 아니라 거대한 전국적 방송사로 성장했다. 이러한 힘을 앞세워 온갖 편법과 횡보로 일삼아 이용자들과 PP사업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방통위는 이들을 위해 규제완화의 움직임을 여전히 늦추지 않고 있다. 사업자의 대변자처럼 보인다. 이러는 과정에서 케이블TV가 가진 특성을 통해 공익성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완전히 사라졌다. 오로지 경쟁과 수익의 논리만이 정책의 화두가 되었다.
다른 플랫폼과 비교할 때 케이블TV가 가지는 가장 큰 특성은 바로 지역밀착성이다. 지역성은 케이블 방송의 존립기반이다. ‘지역밀착형 콘텐츠’를 제공하기에 가장 적합하다는 것이다. 케이블TV업계는 전국을 서비스 구역으로 하는 다채널 매체가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통신방송융합시대에 규제완화는 당연한 추세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케이블TV는 지상파나 IPTV, 위성방송과는 다른 차별적 서비스를 통해 그 역할을 찾아야 마땅하다. 같은 권역으로 경쟁을 해야 하거나 전국적 서비스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굳이 차별성이 없다면 여러가지 플랫폼사업을 허용하는 것 자체가 자원의 낭비이고 중복투자라고 할 수밖에 없다. 지상파와 다른 케이블 고유의 콘텐츠를 개발하는 게 케이블의 발전방향이어야 한다. 그것이 지역 매체로서의 역할이다. 더구나 지금 지역신문을 비롯하여 지역적 미디어는 고사상태에 있다. 현재 지역의 중요한 현안을 논의하고 지역적 의제를 다룰 수 있는 매체가 거의 없다. 우리지역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지역주민들이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 지역정보에서 그만큼 소외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역의 건강한 여론이 형성되는 기반 자체가 취약하기 그지 없는 것이다. 그나마 기술적 특성상 케이블 방송이 그 역할을 온전히 할 수 있다. 지역주민들의 눈과 귀가 되고, 공론의 마당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지역 주민들의 참여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것도 케이블 방송이 할 수 있는 역할이다. 케이블 방송은 지역 저널리즘의 구심적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이를 나몰라라하고 오로지 수익사업에만 몰두하는 것은 애시 당초의 케이블TV 출범 목적에서도 크게 벗어난다. 사업자들이야 어떻게든 방송을 통해 이익을 내려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들에게는 방송도 한낱 돈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 방송 플랫폼의 역할과 운영방식을 고민하고 공공성을 살려야 할 방통위가 아무런 철학도 사명감도 없이 사업자들의 논리에 휘말려 오로지 규제완화만 외치고 있는 현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제발 케이블 사업자도 생존해야 할 것 아니냐고 하지 말기 바란다. 지역에서 공공적 역할을 하지 못하는 케이블 방송은 더 이상 존재 이유가 없다. 공공적 역할을 하게 하고 그것을 위해 어떻게 생존 가능하도록 만들 것인가를 찾는 것이 순서다. 방통위는 지금이라도 케이블 방송의 역할과 위상을 다시 정립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