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재난망 사업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기고] 국가 재난망 사업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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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를 시작으로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거치며 우리사회는 오랫동안 국가 재난망 구축을 기다려 왔다. 5월 27일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 대국민 담화 후속조치 중 하나로 공동 보도자료를 통해 국가 재난망 사업을 조기에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국가 재난망은 지지부진한 역사의 정체를 떨치고 새로운 동력의 발판을 잡았다.

이에 기획재정부의 경우 막대한 비용이 드는 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예비타당성 조사도 면제하기로 하는 등, 발 빠른 조치로 관심을 끌고 있다. 국가 재난망 사업이 테트라(TETRA)와 와이브로(WiBro) 방식에서 갈피를 잡지 못할 때, 감사원의 지적과 예비 타당성 조사의 부적합이 논란이 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정부의 행보는 상당히 빠르다. 하지만 LTE 방식의 통합 안전공공망 형태로 국가 재난망이 자리를 잡는다 해도 필수적인 전제는 필요하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국가 재난망의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탄력을 받았다고 하지만 졸속으로 추진되면 오히려 국가적 재난상황에서 약이 아닌 독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가 재난망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는 상당한 편이다.

사실상 기술독점과 고립 문제가 있는 테트라와 와이브로 대신 데이터와 영상 등 재난에 입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LTE 기술이 선정될 것으로 전망되는 부분은 고무적이나, 해당 방식의 기술적 노하우를 완전히 무시하고 LTE에 맹목적으로 집중한 국가 재난망은 피해야 한다. 물론 기술적 이질감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기는 하겠지만, 정치적인 문제로 볼 때 와이브로와 테트라 방식의 국가 재난망 인프라 속성을 무시해서는 성공적인 외연확대가 불가능하다. LTE 기술은 4세대 이동통신 상용화가 이뤄진 만큼 기술 검증이 수월하고 단말기 및 시스템 개발이 활발하다. 또 데이터 서비스 구현이 가능해 재난 현상의 생생한 정보를 입체적으로 전파, 관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와이브로와 테트라가 경합한 국가 재난망의 기본 인프라를 100% 바꾸면 기술적 완성도에 있어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국가 재난망만 바라보며 와이브로와 테트라의 기술적 향상을 추진한 업체들의 회생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주파수 배분에 대한 전제도 있다. 현재 700MHz 대역 주파수에 국가 재난망을 구축하자는 논의가 활발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여기에는 전적으로 찬성하지만 다른 대안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 현재 LTE 상용망을 활용해 재난망을 구축할 경우 테트라 방식은 10년 동안의 투자 운영비를 산출할 경우 1조7,000억 원이 소요되지만 LTE 방식은 8,000억 원에 불과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LTE 독자망으로 구축할 경우 비용은 올라가지만 안전성을 높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2.5GHz의 주파수로 LTE-TDD 방식을 통해 제4이동통신을 준비하고 있는 KMI(한국모바일인터넷)이 대안으로 부상할 수 있다. 제4 이동통신이 허가나면 LTE-TDD를 활용한 새로운 국가 재난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국가 재난망 사업에 자존심을 걸고 나서는 기존 통신 3사의 반발을 넘어야 한다는 숙제가 있지만, 700MHz 대역 주파수가 방송과 통신의 치열한 할당 전쟁터라는 점을 고려했을때 신규 사업자에게 국가 재난망을 맡긴다는 부담만 차치한다면 훌륭한 전제요, 대안일 수 있다. 지금 국가 재난망은 맹목적으로 700MHz 대역 주파수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대안과 전제가 무시되고 오로지 ‘직진’만 되풀이 한다면 10년 넘게 끌어온 국가 재난망 사업이 다시 무너질 공산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