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경(한국영상미디어센터협의회 사무국장)
지난 15일부터 예산국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4대강 사업 예산이나 소위, ‘부자감세’ 등 굵직한 쟁점들이 산적해 있고, 청목회 관련 검찰 수사, 한미FTA추가협상 등 예산 국회 진행의 난관들도 적지 않다.
예산국회와 관련한 빅이슈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민감한 정치적 사안도 아니며 많은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도 않지만, 시민들의 방송참여와 직결되어 있으면서도 예산안의 부당함이 너무나 분명한 사안이 있으니, 바로 방송통신위원회가 제출한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제작지원사업 예산 삭감안’이 그것이다.
시청자 참여프로그램 제작지원사업의 예산을 2010년 대비 40% 삭감하겠다는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2011년 예산안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일반시민의 인식은 이미 전국적으로 크게 확산되어있다.
시청자의 방송 참여 및 방송 접근권을 직접적으로 실현, 보장하기 위해 방송법 제38조(기금의 용도) 제1항 제4호, 제69조(방송프로그램의 편성 등) 제7항, 제70조(채널의 구성과 운용) 제7항에 근거하여 2000년도부터 추진되어 온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제작지원 사업은 방송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방송에 참여한 시청자에게 방송채택료를 지급하는 사업이다. 이는 방송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들어간 시청자들의 노동과 제작비용을 최소한도로 보전함으로써 경제적 이유 등으로 방송 제작에 참여할 수 없는 수많은 시민들의 방송참여를 가능하게 했다. 뿐만 아니라 지역 방송사들에게 시청자참여프로그램을 운영하게 하는 중요한 동기를 부여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듯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제작지원 사업은 시민들의 방송 참여 및 접근권에 대한 문화와 인식이 척박한 한국적 상황에서 현실성 있는 지원사업으로 높이 평가되어 왔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방통위가 이 사업예산을 삭감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사업의 취지인 시청자의 방송참여 및 방송접근권 실현은 갈수록 그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게다가 여론․문화의 다양성을 확대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컨텐츠 생산과 유통을 가능하게 하는 ‘개방’, ‘참여’, ‘공유’는 변화된 미디어(산업)환경, 즉 방통융합 또는 미디어융합 국면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이자 키워드로 통용되고 있다.
심지어, 방통위의 본 사업은 매년 목표를 초과달성해왔다. 2008년에 124.4%, 2009년에는 126.7%를 달성했으며 2010년의 경우도 8월 31일 현재 벌써 연간 목표치의 94% 달성하는 등 예산 투여대비 효과에서 탁월한 사업인 것이다. 말그대로 ‘효과만점’인 사업을 확대해도 부족할 판국에 방통위는 목표치와 예산을 모두 줄이려고 하고 있다. 도대체 방통위가 가지고 있는 근거는 무엇이란 말인가?
현재 방통위가 얘기하는 거의 유일한 근거는 ‘직접지원 축소, 간접지원 확대’이다. 직접지원의 효과를 스스로 확인하고 있고 간접지원을 어떻게 확대할 것인지에 대한중장기 정책대안(또는 그를 위한 사회적 논의)도 없이 방통위가 내놓는 것은 근거가 아닌 핑계 또는 수사로 해석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간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방송에 직접 참여하고 작지만 절실한 목소리를 내면서 소통을 경험해왔던 전국의 수많은 시민제작자들, 방송소외계층이 느껴왔던 감동은 이제 방통위에 대한 실망과 분노로 변화되고 말 것이다.
디지털기술 발전에 따른 채널(플랫폼)의 확대는 보다 다양한 콘텐츠의 유통을 가능하게하고 또 필요로 하고 있다. 그래서 시민들의 직접 제작한 콘텐츠를 양성하기 위한 방통위의 지원․진흥 정책은 단순히 ‘시청자권익증진’의 차원이 아니 미디어융합정책 전반을 아우르며 보다 종합적이고 중장기적으로 마련되어야 하는 과제까지 가지고 있다. 그간 시민의 방송접근권 확대뿐만 아니라 콘텐츠 제작의 인프라 확보에도 기여해온 시청자참여프로그램 제작지원사업의 성과를 결정적 시기에 유실하는 우를 방통위가 범하지 않기를 다시한번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