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 SK텔레콤이 CDMA1x EV-DO 서비스를 세계에서 처음 상용화했다. 여기에서 EV-DO란 ‘Evolution-Data Only’의 약자로 데이터 전송 속도를 종전에 비해 ‘획기적’으로 늘린 기술이다. 이에 따라 기존에 64Kbps에서 2.4Mbsp로 전송 속도가 크게 증가했다. 90년대말 처음 국내에 초고속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속도가 ‘메가’급이었고 이에 착안해 KT가 ‘메가패스’란 브랜드를 사용했을 정도니 이동통신에서 메가급 속도를 구현한 것은 정말 대단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 기술로 음성과 문자 위주의 이동통신 서비스는 동영상 서비스가 가능해졌다. 당시 이동통신사들은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이용하는 TV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얼마가지 않아 2.4Mbps의 속도 뒤에 숨겨진 엄청난 비밀이 곧 드러나고 만다.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봤다간 한달 뒤 수백만원의 ‘요금폭탄’을 맞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동통신사들의 광고만 보고 무심코 무선인터넷에 접속했다가 수십~수백만원의 요금 고지서를 받는 사례가 등장해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이동통신사들은 EV-DO 도입 후 준(June), 핌(fimm) 등 무선인터넷 전용 서비스를 내놓았지만 요금이 무서워 누구도 섣불리 접속하지 않았다.
그 뒤를 이어 3세대(G) 이동통신 기술인 WCDMA가 나와 속도의 향상이 이루어졌으나 요금 폭탄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았다. KT가 3G를 띄우기 위해 ‘쇼’라는 브랜드를 출시하고 엄청난 마케팅을 전개했지만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데이터 요금을 줄이기 위해 정액제 요금제도 내놓았으나 히트를 치지는 못했다. 정부도 해마다 무선인터넷 활성화 정책을 내놓았으나 허탕만 쳤다.
2007년 9월에는 한 고등학생이 무선인터넷에 접속했다 수백만원의 청구서를 받고 고민 끝에 자살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곧 사회 문제로 번졌고 이동통신사들은 더욱 비난을 받았다. 가입자들은 휴대폰의 무선 인터넷 접속 버튼을 더욱 멀리하게 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당시 녹색소비자연대 등 시민단체는 몇몇 피해자들과 함께 SK텔레콤 등 이동통신사를 상대로 요금 반환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시민단체는 데이터 요금 산출방식이 너무 복잡해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너무 어렵다는 점을 강조했고 법원은 데이터 요금 및 통신 정보 이용료의 50%를 돌려주라는 판결을 내렸다. 얼마 후 통신사들은 무선 데이터를 아무리 많이 써도 20만원을 넘어 청구하지 않는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통신 요금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스마트폰 보급과 함께다. 작년 11월말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 들어왔다. 아이폰은 무선랜으로 알려진 와이파이를 통해 무료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도록 했다. 사람들은 와이파이를 찾아 다녔고 KT는 아이폰을 더 많이 팔기 위해 와이파이를 더욱 많이 늘렸다. KT는 올해까지 4만개, 내년까지 10만개의 와이파이존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제 가입자들은 적어도 와이파이존에서 만큼은 요금걱정없이 네이버와 유튜브에 접속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와이파이는 움직이면서 이용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KT와 경쟁해야 하는 SK텔레콤은 고민 끝에 ‘데이터 무제한 서비스’를 발표했다. 이 요금제는 지난 7월 14일 처음 발표됐으나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인가를 받아 시행된 것은 한달이 더 지난 8월 26일이었다. 그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다. KT, LG유플러스 등 경쟁사들은 이 요금제가 나오지 못하도록 방통위를 상대로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국 이를 저지하지는 못했다.
SK텔레콤의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는 월 5만5000원 이상 요금제에 가입한 고객은 와이파이뿐 아니라 3G에서도 데이터를 무제한으로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월 5만5000원이면 부가세를 포함해 약 6만원 정도다. 평소 4만원 안팎에서 통신 요금을 해결하는 이들에게는 큰 메리트가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수십만원의 요금 폭탄을 맞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는 앞으로 통신 시장에 적지 않은 파급력을 몰고 올 전망이다. SK텔레콤이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를 내놓은 이상 경쟁사들도 이에 상응하는 요금정책을 내놓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보통 데이터 무제한 요금제는 후발 이동통신사들이 선발 사업자를 견제하기 위해 사용하는 비장의 카드다. 우리나라에서는 1위 사업자가 이 카드를 이미 썼으니 KT와 LG유플러스는 이보다 센 놈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요금 폭탄’은 아주 옛말이 될 것이다.
문제는 이같은 데이터 요금의 획기적인 변화가 단순히 통신 시장에만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콘텐츠 시장에 미치는 파장 효과를 더욱 더 주목해야 할 것이다. 통신 요금을 걱정하지 않게 된 가입자들은 이제 무선 인터넷 세상을 마음껏 돌아다니고 있다.
그런데 지금 볼만한 콘텐츠가 별로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아무리 무선 인터넷을 써도 200MB밖에 안나온다고 하니 말이다. 그동안 콘텐츠 사업자들이 데이터 요금 장벽에 막혀 무선 인터넷 콘텐츠 개발에 신경을 쓰지 않은 탓이다. 국내 아이폰이 처음 도입했을 때도 국내 방송사들은 스트리밍 기능을 뺀 체 애플리케이션을 출시했다. 어차피 내놓아도 비싼 요금 때문에 사용자들이 쓰지 않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이제 세상이 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