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폰 사라질까

[강희종칼럼] 공짜폰 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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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종/디지털타임스 정보미디어부 기자

 

지난 3일 서울 시내 한 휴대폰 대리점. ‘공짜폰 사라진다’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 스크랩을 크게 복사해 매장 창문에 붙여놨다. 스크랩 밑에는 ‘공짜폰을 구입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글자도 큼지막하게 써 붙여놨다. 내용인즉슨 방송통신위원회가 27만원 이상 단말기 보조금에 대해 위법하다고 판단하고 단속에 나서니 이제 공짜폰은 없어질 것이라는 것이다. 단속에 나오기 전에 빨리 싼값에 휴대폰을 사라는 안내 문구였다. 공짜폰을 단속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오히려 공짜폰을 팔려는 상인들의 마케팅에 이용되는 한 장면이었다.

방통위는 지난 9월 24일 이용자들에게 차별적인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한 통신 3사에 대해 총 20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또, 방통위는 단말기당 27만원 이상 보조금을 지급할 경우 위법하다고 판단, 10월부터 단속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지난 2008년 폐지됐던 단말기 보조금 규제 제도가 사실상 부활한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단말기 보조금은 이동전화 가입자를 유치하기 위해 휴대폰을 실제 가격보다 할인된 가격으로 제공하는 행위를 말한다. 통신 사업자 입장에서 보면 단말기를 할인하더라도 장기적으로 가입자로부터 얻는 이익이 할인 금액보다 크다면 보조금을 지급할 이유는 충분하다. 단말기 보조금은 회계상 마케팅 비용, 가입자 유치 비용 등에 포함된다.

이동전화 시장에 단말기 보조금이 나타난 것은 1996년 신세기통신이 등장하면서부터다. 이후 1997년 PCS 3사(KTF, 한솔엠닷컴, LG텔레콤)가 등장하면서 경쟁이 격화됐고 단말기 보조금 경쟁이 심해졌다. 단말기 보조금은 국내 이동전화 가입자 급증의 일등 공신이었다.

하지만 단말기 보조금 경쟁이 격화되면서 그 폐해도 함께 나타났다. 이동통신사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경영 부실이 나타났다. 특정 사업자의 경우 보조금 지급 규모가 연간 매출을 상회하는 일도 벌어졌다. 마케팅에 열을 올리다보니 설비투자는 소홀해졌다. 잦은 단말기 교체는 국내 휴대폰 제조사의 급속한 성장을 이끌었지만 중고 단말기 양산이라는 새로운 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다. 당시에는 IMF 직후여서 잦은 단말기 교체로 인한 무역 수지 악화도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이동전화 단말기 보조금을 금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점점 힘을 얻었다. 급기야 정보통신부는 2000년 6월 단말기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이동통신사의 이용약관에 반영했다. 그러나 단말기 보조금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에 정보통신부는 2001년 6월 보조금 금지를 법제화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으며 2002년 국회 논의를 거쳐 단말기 보조금 금지 조항을 담은 개정 전기통신사업법이 2003년 4월 발효됐다. 이 조항은 3년 후 자동 폐지되는 ‘일몰 조항’이었다.

하지만 2005년 들어 단말기 보조금 금지를 폐지할 것인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정부는 기존처럼 단말기 보조금 지급을 전면 허용할 경우 과도한 보조금 경쟁이 재발될 것을 우려했다. 단말기 보조금 과열 경쟁은 설비 투자 위축, 요금 인하 여력 축소, 이용자 차별로 이어질 것이란 게 당시 정통부의 판단이었다.

논란 끝에 정통부는 2006년 3월 전기통신사업법을 개정해 단말기 보조금 금지 제도를 2년 더 연장했다. 개정 전기통신사업법은 단말기 보조금 지급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특정 조건에 따라 제한적으로 지급을 허용하도록 했다. 18개월 이상 가입자에 대해서는 2년 동안 1회에 한해 보조금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신규 서비스에 대해서는 서비스 개시 후 6년 동안 보조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단말기 보조금 금지 제도는 2008년 3월 예정대로 역사속으로 사라졌다. 대신 정통부는 시장 과열을 막기 위해 의무약정제도를 부활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했다.

단말기 보조금 금지 제도는 2000년 도입당시부터 2008년 폐지될 때까지 한시도 실효성 논란이 끝이지 않았다. 천문학적인 과징금 부과에 심지어는 영업정지까지 초강수 제재 조치가 총동원됐지만 단말기 보조금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끝까지 규제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8년을 넘게 지속되다 겨우 폐지했던 단말기 보조금 규제를 2년만에 사실상 부활시켰다. 이번 조치 역시 실효성에 의문이 가고 있다. 과거 보조금 지급을 원천 금지하던 시절에도 사업자들은 수백만원의 과징금과 영업정지를 불사하고도 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조금 규제 부활의 명분으로 제시된 이용자 차별이라는 잣대도 항상 논란의 대상이 돼 왔다. 정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간섭한다는 것이다. 민간 사업자가 시장에서 자율 경쟁에 의해 가입자별로 차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행위는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모든 가입자에게 항상 동일한 혜택을 제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히려 이번 방통위의 조치는, 이통사들이 27만원 이상 보조금을 쓰지 못하도록 함으로써 사업자의 이익만 보장해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방통위는 사업자들로 하여금 마케팅비용을 지출하는 대신 요금인하나 설비투자로 유도하겠다는 건데, 과연 이통사들이 방통위 뜻대로 움직일지 미지수다. 방통위 발표 직후 증권사들이 한결같이 이통사들의 실적 개선을 전망한 것이 오히려 정확한 분석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