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N 대전교통방송 기술과장 이엽

[기술인이 사는 법] TBN 대전교통방송 기술과장 이엽

1998

사색의 계절 가을, 나를 돌아보며

TBN 대전교통방송 기술과장 이엽

 

11월은 가을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최고의 달인 것 같다. 방송국 주차장 단풍나무와 주변 은행나무는 빨갛게 노랗게 물들었고 그 여름철 푸르름을 과시했던 정자나무도 갈색 옷으로 갈아입었다. 회사 밖 풍경을 바라보니 오색으로 수놓은 한복의 수채화 같다.

 

세월이 빠르긴 빠른 것 같다. 내가 방송국에 입사한지도 13년이 지났고 우리방송도 1997년 광주 부산 개국을 시작으로 1999년은 대전 대구, 2001년은 인천 원주, 2002년은 전주, 2005년은 서울DMB 방송이 개국하여 전국 네트워크방송망을 갖춘 교통전문 라디오방송으로 발전했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라 했나? 낙엽이 지는 가을에 나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입사초기에는 오디오콘솔 페더부에 양손을 올려놓고 조작하는 것조차 어려워 기술국 선배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페더는 돌처럼 무겁게, 조작은 여자 다루듯 부드럽게’ 라는 말에 밥상 위에 담배 한 개비를 올려놓고 상하로 부드럽게 움직이며 연습했던 기억도, 낙뢰가 심했던 어느 여름날 송신소에 써지가 유입되어 가까스로 비상조치 후 수리 및 대책까지 업무처리하다 보니 며칠 밤 집에 못 들어가고 회사계단에 멍하니 앉아 담배를 피웠던 기억도 이젠 시간과 함께 값진 추억이 되어버렸다. 요즘은 디지털시대에 발전하는 방송환경에 적응하기가 어렵다. 디지털기술은 새로운 서비스의 창출, 제작 및 송출환경의 변환, 라디오환경의 변화 등 발전을 이끌면서 방송장비는 물론 방송시스템도 디지털로 변화시켰다. 그러나 한때는 턴 테이블(Turn Table)과 릴 데크(Reel Deck) 장비를 사용해 방송제작을 했던 적도 있다. 화장지에 물을 젖혀 턴테이블 바늘이 지나가는 LP판에 물을 떨어트리며 제작했던 모습도, 녹음된 릴 테이프를 잘라 붙이며 편집했던 모습도 이제는 디지털에 밀려 옛 향수가 된지 오래다.

 

작년 우리방송은 방송시스템 노후장비 교체 및 방송실 리모델링 공사를 실시했다. 10년이 지난 노후장비의 디지털장비 전환과 공간협소 등 열악한 방송환경을 개선하는 환경공사였다. 그 중 환경공사는 기존 3층 방송실을 2층으로 내리고, 기존 2층 공개홀을 3층으로 올리는 층별 공간을 맞바꾸는 어려운 공사였다. 기존벽체 및 천장 건축물을 철거하니 맨 바닥만 남았다. 그리고 실제바닥에 레이아웃을 그리는 먹매김 작업을 시작했다. 수십 차례 그려왔던 도면(CAD)상의 레이아웃과는 차원이 달랐고 이상한 감동까지 느꼈다. 먹매김 된 선을 따라 조적이 올라가고 방음시창 및 방음문도 위치를 잡는 중요한 작업이다. 벽돌이 한장 한장 올라갈 때 마다 조정실과 스튜디오 공간은 적당한지, 방음시창의 센터와 오디오콘솔의 센터가 맞는지 여러 가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공사완료까지 투입된 인력도 많고 공사기간도 오래 걸렸고 지금은 우리 방송실도 제법 그림이 잘나왔다. 요즘 방송장비 운용 및 유지보수하다 보니 언제 공사를 했는가 싶지만 함께 고생한 기술국 모든 직원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나는 회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가족과 보내는 시간이 부족하다. 아는 선배가 “일과 사람이 싸우면 누가 이기겠냐고?” 묻기에 “당연히 일이죠” 하고 대답한 적이 있다. 요즘 난 열심히 일하는 것 같은데 업무처리 속도도 늦고 옛날처럼 참신한 아이디어도 없다. 어느새 부쩍 자란 아이들을 보니 어떤 아빠로 비춰질지,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건지,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를 지탱하는 힘은 나의 가족이고 제자리를 지켜준 나의 가족에게 감사할 뿐이다.

 

이 세상에 소중한 세 가지 금이 있다고 한다. “황금” “소금” “지금” 이다.

 

부를 상징하는 “황금”이 중요하고 음식에 간을 맞추는 “소금”도 중요하다. 그러나 가장 소중한 것은 이 순간을 살아가는 “지금”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