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기술인협회장 최영학

[기술인이 사는 법] CBS 기술인협회장 최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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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금 ‘슬로우 스타터(Slow-Starter)’다. 그래서 뭐든 남들보다 발동이 좀 늦게 걸리는 스타일이다. 일하는 스타일도 다르지 않아서 다른 분들처럼 속도감 있게 쭉쭉 나가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내게 답답함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내 삶 자체가 느리지는 않다. 운전할 때는 공격적이지는 않아도 충분히 남들만큼은 하고, 사는 것도 남들만큼 정신없이 산다. 그저 ‘신중하게 삶을 살자’는 생각으로 사는 것이다.

 

천천히 발동이 걸리는 것과는 다르게 나는 일이든 뭐든 하나에 몰두하면 거기 계속 몰입이 되는 스타일이다. 주변에 사람이 가든 오든 신경 쓰지 않고 혼자 내 일만 하기도 한다. 이런 스타일이 사실 회사 생활에는 그다지 좋지는 않은 것 같다. 알다시피 회사에는 본업 이외에도 주변에 많은 일이 생긴다. 그러다보니 결국은 옆에 있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옅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젊었을 때야 열심히 일하고 일에 대한 열정이 있는 것을 오로지 장점으로 치부했겠지만 이제 나이를 먹고 중간관리자의 입장이 되니, 일보다 사람이 중요할 때가 더 많다. 주변에 있는 사람을 생각해 줘야지 조직이 잘 돌아가는 게 세상사이고 인지상정이다. 결국은 일 때문에 사람이 상처받고 힘들어할 수 있으니 그걸 얼마나 돌봐주고, 일하면서 서로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느냐가 문제가 된다.

 

또, 옛날 같은 경우야 사회분위기가 다분히 목표 지향적이었기 때문에 어떤 목표를 달성하면 ‘우리 조직은 참 튼튼한 조직이야’라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는 분위기가 바뀌었다. 열심히 달려가서 쟁취해야 하는 목표도 중요하지만, 그걸 달성하는 과정에서 여러 구성원들이 성취의 기쁨을 함께 맛봐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로 옮겨가는 것이 쉽지는 않다. 자발적으로 즐겁게 일을 하면 서로 좋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어서 서로 불편해지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 하면 회사에서 즐겁게 일을 할까’ 고민한다. ‘사람을 신경 쓰자’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 그러지 않으면 같이 즐겁게 일하는 분위기가 어려워지니까. 하지만 이 시점에서도 가끔 연차를 느끼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예전에는 스스럼없이 나를 대했던 후배들이 조금은 더 어렵게 나를 대하게 되는 상황이 생기는 걸 느낄 때, 내 머리카락이 하얘지고 조금씩 빠지기 시작하듯 나이가 조금씩 드는구나 하고 느낀다.

 

입사해서 3~4년이 지난 후부터 후배들과 함께 스터디를 시작했었다. 혼자 열심히 공부해서 혼자 잘하는 것도 좋지만 기술이란 건 혼자 잘 한다고 잘 되는 게 아니다. 팀워크다. 같이 업그레이드 돼야 전체 조직의 실력이 되는 것이다. 혼자 잘하더라도 그걸 전파하지 않으면 그건 자기 기술밖에 안 된다. 그래서 스터디를 시작했다. 일과 사람을 함께 고민한 결과다. 지금도 기술이라는 것은 계속 변하고 발전한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고, 공부를 안 하면 정체될 수밖에 없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최근 협회장을 맡게 되면서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엔지니어들이 좀 더 많이 배우고 기술적인 소양이 넓어졌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교육적인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한다. 자발적인 마음이 우러나오게, 즐겁고 유익한 배움의 기회를 마련할 수 있도록 고민해야겠다는 생각이다. CBS 기술국이 정말 즐겁게 일하고 공부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