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S 정보기술연구소 민병갑 연구원

[기술인이 사는 법] EBS 정보기술연구소 민병갑 연구원

677

내가 이른 아침에 회사를 향해 집을 나서며 가장 처음 하는 행동은 귀에 이어폰을 꽂는 것이다. 물론 퇴근길에서도 마찬가지다. 원래 개인적으로 전화기, MP3, PMP 등 여러 모바일 단말기를 들고 다니는 것을 몹시 귀찮아하지만 (굳이 호주머니 속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스마트폰 세상이 오면서 단말기 하나로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이 상황이 너무나 반갑다.

 

방송사 입사 전 짧은 음악들을 작편곡하고 녹음하는 일을 했었다. 짧은 시간에 공장 기계처럼 음악을 찍어내야 했기에 다양한 음악들을 듣고 다니는 것이 필수적인 업무 준비 과정 중 하나였다. 처음엔 휴대용 CD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면서 음악을 들었는데, 단순한 감상자의 입장이 아니다보니 엑기스(?)만 골라 집중적으로 들어야했다. 음악을 음악처럼 듣지 못하는 그 상황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이런 상황 속에서 가방 속 CD플레이어를 꺼내서 CD를 자주 바꿔 넣는 것이 출퇴근 시간의 큰 일 중 하나였다.

 

그래서 구입하게 되었던 MP3 플레이어. MP3 플레이어를 구입한 뒤론 CD를 구입하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이 CD의 음악들을 MP3로 추출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름 음악 애호가로서 음질이나 기타 여러 감상적인 면을 따지고 싶기도 했지만, 나에게 있어 MP3의 편리함이 그런 점을 압도하고도 남는 것을 보면 역시 “나름의” 음악 애호가로서만 남아야지 어디 가서 주절거릴 입장은 못 되는 것 같다. (웃기는 얘기지만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의 제목도, 뮤지션의 이름도 모르는 경우가 상당하다!)

 

잠시 벗어난 얘기지만, 요즘에 살아남는 콘텐츠는 소비되는 콘텐츠 밖에 없다는 것은 굳이 콘텐츠를 다루는 회사 직원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꼭 대중 미디어뿐만 아니라 현대 음악이나, 현대 미술 등 모든 분야가 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이런 측면에서 ‘MP3와 같이 완벽하지 못한 음악을 길거리에서 싸구려 이어폰으로 듣는’ 최악의 모니터링 환경에서조차 감동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레코딩, 믹싱, 마스터링이야말로 ‘잘 만들어진 음향의 조건’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음향도 취향을 타다보니 호불호가 갈리지만 개인적으로 Michael Minkler라는 엔지니어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이 엔지니어는 Dream Girls, Chicago 등 유명 영화들의 음향을 많이 담당한 엔지니어인데, 뮤지컬 음악의 Live한 느낌을 특정 대역이 다 걸러진 MP3에서 이토록 잘 전달하는 걸 보면 그저 경이로울 따름이다. 물론 음악 자체의 높은 완성도와 뮤지션들의 걸출한 능력도 한 몫 하고 있겠지만 그걸 고대로 담아내는 노하우가 진심으로 궁금하기도 하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매일 같이 이어폰을 귀에 꽂는 것이 버릇처럼 굳어졌지만 최근에는 음악을 꼭 재생시키지는 않는다. 소리가 나지도 않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귀마개 대용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참 바보 같은 행동 같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울림 없는 이어폰을 통해서 음악 말고 더 많은 세상의 소리가 귀속을 파고든다. 평소 때는 느끼지 못했던 세상의 ‘잡음’들을 듣고 있노라면 참 예쁘고 좋은 소리들이 많다. 어쩔 땐 그 시끄러운 버스들의 엔진소리 조차도 기분 좋게 가슴 속으로 울려 퍼질 때도 있으니 말이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가 출근길 버스에서 훌륭하게 울려 퍼지다니 참 웃기다.

 

의도한 이어폰의 침묵”을 뚫고 들어오는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면, 세상의 소리가 참 색다르고 신선하다. 집음 할 때는 골치 아픈 잡음들도 원래는 모두 아름다운 것 같다. 이런 소리에 귀도 열고 마음도 열고 살 수 있는 여유와 함께 어떤 소리도 감동으로 전달할 수 있는 실력도 갖추면 좋겠다.

 

이상 “소리” 애호가가 사는 법이었다.

댓글 없음

댓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