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의 마지막회를 보고 를 집어들다

<문화> 드라마 [추적자]의 마지막회를 보고 [법은 왜 부조리한가]를 집어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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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혈압에 좋다고 소문난 드라마, 우리 사회의 치명적인 치부를 적나라하게 까발려주는 다큐멘터리로 칭송받는 드라마. 축축한 망각을 걷어내고 굳이 대면하고 싶지 않았던 불편한 진실을 마주보게 만드는 드라마. SBS의 명품 드라마 [추적자]가 종영했다. 정말이지 이런 드라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연기력도 ‘갑’이요. 스토리도 ‘갑’이요. 심지어 엑스트라 아줌마의 국밥 떨어트리는 연기도 ‘갑’이었던 [추적자]가 이제 끝났다. 하지만 당분간 그 여운은 계속되지 않을까. 91.4%에 숨어있는 비현실적인 국민의 의지를 다시 확인시켜주고 스스로가 하지 못했던 많은 변명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게 만드는 이 명품 이야기는 오랫동안 모두의 가슴속에 새겨졌으리라.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자, 충실한 시민의 경찰로 살아온 우리 시대의 소시민 ‘백홍석’. 그는 사랑하는 딸 수정이의 억울한 죽음을 극복하고 진범을 잡기 위해 최고 권력과의 처절한 싸움을 이어간다. 그리고 몇 번의 죽을 고비와 위험을 겪지만, 믿을 수 있는 동료의 협조로 결국 승리한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던 그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악인’들의 꿈을 좌절시키고 세상에 진실을 선물했던 것이다.

그러나 드라마 [추적자]는 이를 마냥 해피엔딩으로 포장하지 않는 날카로운 현실의식을 반영했다. 모든 복수를 끝내고, 사랑하는 딸 수정이의 명예를 회복한 백홍석은 결국 법정 살인과 도주 등등의 죄로 인해 15년을 선고받는다. 그에 비해 사람의 목숨을 우습게 알고 자신의 야망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모든 것을 짖밟아버리는 냉혈한 강동윤은 8년. 8년. 8년과 15년…혹시 8.15 특사로 나온다는 뜻일까? 씁쓸해지는 대목이다.

나는 그렇게 드라마 속 백홍석에게 15년형을 구형하는 법원의 모습을 보며, 말도 안된다며 소리지르는 방청객들을 보며, 혹시나 했던 희망에 눈을 감고 기도했던 백홍석의 동료들을 보며, 너무나 자연스럽게 레오 카츠의 [법은 왜 부조리한가]를 집어들었다. 시청자로서 스며드는 먹먹한 심정의 한켠에서, 최소한 가상의 세계에서 찾아온 이 분노의 근원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레오 카츠는 말한다.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법이 사람들이 간절히 원하는 바나 직관에 어긋나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추적자]로 바꿔말하면 ‘백홍석 같은 소시민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법이 왜 그들이 간절히 원하는 소박한 행복과 가치를 가혹하게 박탈해 가는가?’로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에 레오 카츠는 대답한다. 법의 모순들은 집단의사 결정 과정에서 일어나는 ‘논리적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즉, 법은 완전하지 않은 현실 세계의 다양한 논리를 확고히 정해진 단 하나의 이론으로 설명하려 노력하고. 이 과정에서 파열음이 발생한다고 전하고 있다. 동시에 그는 말한다. 법은 스스로의 부조리를 방임하고 있으며 나아가 도덕과 상식을 배반하기까지 한다고. 이쯤되면 거의 ‘쇼크’다. 아니, 백홍석 씨를 15년이나 감옥에 있게 만든 그 법이 부조리를 방임하고 나아가 도덕과 상식을 배신한 것이라고? 그렇다면 모든 복수를 마무리하고 선선히 법의 심판에 자신을 맡긴 백홍석 씨는 도대체 무엇이 되는 것인가. 부조리함에 자신을 던져버린 것인가.

그러나 레오 카츠는 그 다음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분노를 사그라트린다. 그는 뒤이어 법의 철학과 상식 간의 괴리를 고찰하고 복잡하게 얽힌 다양한 사례, 폭넓은 고찰 등을 제시하며 법이 왜 부조리하며 그 명문화된 모두의 약속이 왜 우리 스스로를 얽매게 하는지 친절히 설명한다.

여기서 레오 카츠의 재미있는 이론아닌 이론을 소개하겠다. 바로 ‘응급 순위 순환론’인데. 의사가 한 명 뿐인 응급실에 부부가 들어온다. 남편은 두 다리를 모두 다쳤고 아내는 집게 손가락이 중상이다. 그런데 남편은 아내를 먼저 치료하길 바란다. 아내는 피아니스트이기 때문이다. 그러자 뒤이어 응급실에 들어온 두 다리를 다친 다른 남자가 “그 여자의 집게 손가락을 먼저 치료할 것이면 자신부터 치료하라”고 주장한다. 자, 의사는 누구를 치료해야 할까. 레오 카츠는 여기서 여러 가지 기준과 대안이 상충하는 상황에서는 적용할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즉 자신의 우선권을 타인에게 양도하려면 그 우선권의 기반도 양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남편이 아내에게 우선권을 넘기고 싶으면 아내가 자신보다 더 심각한 부상을 입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법이다.

   
 

다시 [추적자]로 돌아와보자. 백홍석의 법정 15년 형이 구형된 직후,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 사이로 한 소녀가 들어온다. 그리고 그 소녀는 마치 꿈결같은 표정으로 백홍석의 앞에 선다. 언제나 귀엽고 착한 나의 딸. 백홍석의 딸 수정이는 말한다. ‘아빠는 무죄야’

법은 부조리하다. 그것은 현실이 말해주고 있고 드라마가 지적하고 있으며 레오 카츠가 확인해주고 있다. 그러나 법이 부조리하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 부정함에 몸을 던질 것인가? 레오 카츠는 그러지 말라고, 알아야 한다고 전하고 있다. [법은 왜 부조리한가]. 레오 카츠는 그렇게 질문한다.

법은 왜 부조리한가
레오 카츠 지음|이주만 옮김|와이즈베리|336쪽|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