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상 칼럼>지상파방송 주주들의 ‘사회적 책임’

<조준상 칼럼>지상파방송 주주들의 ‘사회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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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에서 지상파방송은, KBS를 빼곤 모두 ‘주식회사’ 형태를 띠고 있다. 주식회사의 핵심 워리는 ‘유한 책임“이다. 자신이 주식을 소유한 기업이 1조원의 부채를 안고 망해도, 자신이 소유한 주식이 100만원이면 딱 이것만 손해 보면 된다는 게 이 원리다. 기업의 위험을 부담하되, 소유한 만큼만 위험을 진다는 얘기다. 이런 유한책임 원리 때문에 대규모 자본 동원이 가능했다는 이유로, 주식회사는 흔히들 ‘자본주의의 꽃’으로 불리고 있다.

 이 주식회사의 주권(sovereignty)은 누구에게 있을까? 주지하다시피, 주주 주권과 경영자 주권이 양립해오다, 1980년대 이후 시장근본주의 창궐과 함께 주주 주권이 패권을 잡았다. 경영자 주권은 주식 소유의 분산과 자유로운 주식 거래에 따라 주주가 기업이란 조직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만큼 경영자에게 자연스럽게 점점 더 집중되는데 이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지닌다. 후자는 주주야말로 위험을 부담하는 유일한 주체이기 때문에 기업의 진짜 주인이라는 논리다. 비록 한국에서는 주주 주권의 도전 앞에 재벌총수 주권이 방어에 성공해 ‘총수 주권과 주주 주권의 악조합’이라는 결과를 낳았지만, 어쨌든 선언적인 차원에서 주주 주권이 대세다. 주주 주권이 상징하는 소유권은 기업 통제권과 수익 전유권으로 이뤄진다.

 그렇다면 ‘민영 주식회사’ 지상파방송의 주권은 누구에 있을까? 지상파방송은 천지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한 ‘공적 자산’인 주파수를 기본으로 한다. 그것도 5년 한도 안에서 3년마다 주파수 사용권의 재허가를 받아야 한다. 등록제나 신고제가 아닌 허가제가 지상파방송의 뼈대를 이룬다. 게다가 전파법에 따라 지상파방송은 주파수에 대한 배타적 이용권을 갖는 것도 아니다. 주파수의 용도를 자기 마음대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주식회사’ 지상파방송의 자궁이다. 지상파방송의 주인은 시청자이고, 그래서 시청자 주권이다.

 그러면 ‘민영 주식회사’라는 원리는 이것과 어떻게 결합할 수 있을까? 결합이 가능한 것인가, 아니면 지상파방송은 주식회사라는 형태를 띠지 말아야 하는 것인가?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민영’방송의 개념은 두 가지 모호한 의미를 대별해왔다. 하나는 국가나 공공기관이 운영하지 않고 민간 기업이 운영한다는 의미였고, 또 다른 하나는 영리를 추구해 이익금을 남겨도 용인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영리를 추구해 이익금을 남겨도 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이 이익금을 주주들이 가져간다는 의미에서 민영 주식회사 지상파방송의 주주들은 주권을 갖고 있다.

 문제는 무엇이 선차성을 갖느냐 하는 것이다. 민영 주식회사 지상파방송의 주주들이 소유하는 것은 전파가 아니다. 방송시설과 설비를 소유할 따름이며, 전파에 대해서는 한시적인 이용권만을 갖는다. 그런데 이 방송시설과 설비를 가지고 주파수를 이용해 나오는 수익을 주주들이 배당을 통해 나눠 갖는다. 물론 방송통신발전기금으로 일부 납부하고 공적 출연금을 일부 내기도 하지만, 그 나머지는 모조리 주주들의 수중으로 떨어진다.

 이런 상황을 지양해야 한다. ‘방송사를 운영해 영리 추구를 통해 이익금을 남겨도 용인할 수 있다’는 민영 개념을 보완하는 작업을 벌여야 한다. 그 출발은 지상파방송 전체에 ‘비영리’ 개념을 적용하는 것이다. 국내 민법에서는 영리 법인과 비영리 법인을 구분하는 기준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느냐 않느냐’ 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기준이 매우 모호하다는 것이다. 독립영화 <원앙소리>는 영리를 목적으로 제작한 것인가, 아니면 그렇지 않았는데 ‘대박’이 난 것인가?

 비영리 법인이라고 해서 이익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아니다. 이건 민법도 인정하고 있다. 핵심은 발생한 이익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 하는 데 있다. 주주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주주의 사회적 책임’이고, ‘비영리 지상파방송’의 운영 원리는 주주의 사회적 책임에서 비롯한다. 그래서 이익이 해당 기업을 통제하는 사람들에게 분배되는 것에 제한이 두는 게 ‘비영리’의 본령이다. 지상파방송의 이익이 주주들에게 배당되는 것에 일정한 상한선을 설정하고, 민주사회적 제도인 지상파방송 그 자체를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 ‘비영리 지상파방송’의 바람직한 상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