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화의 디지털 세상 보기>
IPTV 시대 똠방각하?
방송통신위원회가 작업 중인 IPTV 시행령을 둘러싸고 이해당사자간에 ‘콘텐츠 동등접근권’과 ‘망 동등접근권’을 두고 치열한 논리 공방이 오고가는 가운데, KT의 콘텐츠 확보 전략 하나가 기사화 되어 눈길을 끌었다. 소위 ‘양방향성 IPTV 영화’를 만든다는 것이다.
기사에 따르면, KT가 2005년에 인수한 영화제작사인 싸이더스FNH를 통해 IPTV의 양방향 특성에 맞는 실험 영화를 편당 2억 5천 만 원 정도의 제작비를 들여 4 편정도 제작한다고 한다. 다른 영화와 달리 시청자가 영화 중간에 리모컨으로 줄거리나 결말을 각기 다른 내용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여 시청자와의 소통이 가능한 프로그램을 구현해 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프로그램에 포함된 상품을 클릭할 수 있도록 하여 쇼핑까지 연계시킴으로써 수익모델로서의 가능성도 짚어보겠다는 것이다.
90년대 중반 국내 한 방송사가 ‘그래! 결정했어!’하며 출연자가 중요한 대목에서 두 가지 케이스 중 하나를 결정하여 스토리를 선택적으로 이어가는 시트콤이 인기를 끌었었는데, 그것이 아날로그 TV시대에 공급자 관점의 모델이었다면, 이번에 발표한 IPTV 영화는 수용자 관점에서 양방향성을 높이려는 서비스모델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시도는 이미 작년 말 유럽에서 발표된 바 있다. EU에서 지난 3년여 동안 약 750만 유로(한화 약 110억원)를 투입해 BT(British Telecom) 등 13개 업체가 참여한‘’NM2(New Media 2)’ 프로젝트가 그것인데, NM2를 통해 TV쇼·드라마·뉴스·다큐멘터리·코미디 등 8가지의 시청자 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고 하니 KT가 발표한 수준 이상의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BT Vision’이라는 브랜드의 IPTV를 론칭한지 1년여 지난 현재 약 15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BT도 그간 IPTV 서비스모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왔는데, 시청자참여를 극대화하면서 새로운 수익창출을 도모하기 위한 차별화된 시범모델로 NM2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는 듯하다.
특별히 개발된 TV수상기의 소프트웨어를 통해 시청자가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의 줄거리와 구성에 참여하고, TV쇼의 무대와 소품 등에 간여하게 한다는 것인데, IPTV가 아니면 생각해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를테면 드라마의 후반부 결정적인 대목에서 다수의 줄거리와 옵션을 제공하여 시청자들의 반응에 따라 콘텐츠를 편집하여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게 된다.
다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미리 필요한 장면을 찍어놓아 여러 가지 스토리를 선택 가능하도록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제작비 추가가 불가피하지만, BT측은 디지털화에 따른 제작비 절감 과 새로운 수익창출 가능성이 그런 문제를 해소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서비스를 창출함에 있어서 방송제작자들이 달라진 제작요구사항을 얼마나 진지하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며, PPV(pay-per-view), 가입형 수익모델, 광고를 통한 무료모델까지 수익모델로서의 가능성은 다양하게 열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제작비의 상승부분과 추가적인 수익이 어떤 관계를 가질 것인지 계속 고민해야 할 것이며, 컨버전스 콘텐츠로서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파일럿프로그램을 만들어 시청자 반응과 효과를 측정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와 같은 시도를 방송사가 아닌 통신사업자가 주축이 되어 하고 있다는 국내외 뉴스는 방송인들을 적잖이 위축시키고 있다. 미래 TV의 주도권이 양방향 인프라와 막강한 자금력을 쥔 통신 사업자에게 넘어가고 있음을 예시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IPTV 영화나 드라마에 그치지 아니하고 모든 프로그램에 양방향 소통의 도구를 동원하여 프로그램의 기능성을 높이고 새로운 수익까지 창출하려 한다면 그 파장은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KT가 KTF와 지분 51%를 확보해 영화제작 및 배급부문에서 싸이더스FNH를 계열사로 거느림과 동시에, TV 드라마쪽에서는 164억 원을 투자해 올리브나인의 최대주주가 되었으며, 소프트뱅크와 400억 원 규모의 콘텐츠 펀드를 계획하는 등 통신사업자로부터 종합미디어·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변신을 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콘텐츠 정복자가 되기 위한 정해진 수순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변신이 KT에 그치지 않고 SKT, LG데이콤 등 IPTV 예비사업자들에게도 확대되어 서로 콘텐츠 확보에 열을 올리면서 기존 콘텐츠 업체와 지상파방송사의 콘텐츠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 기존 방송사 앞에 케이블TV나 통신사업자군단, 인터넷사업자 연합군, 심지어 신문사업자까지 줄지어 콘텐츠 말타기에 나서니 즐거울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아예 말 사냥을 하겠다고 나서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금이야 IPTV 예비사업자들이 ‘콘텐츠 동등접근권’의 범위를 개별 프로그램이 아니라 채널 자체라고 말하고 있지만, 시청률 낮은 프로그램까지 모두 채널이라는 틀 안에 안고 언제까지 그렇게 갈 수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왜냐하면 IPTV 앞에 있는 시청자는 더 이상 채널번호를 누르지 않고 IPTV 사업자들이 깔아주는 첫 화면, 다음화면 또는 하단 메뉴를 통해 채널이나 특정 프로그램을 자의반 타의반 보게 될 것이고 수익과 연계하여 그들의 의도대로 그렇게 노출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수익이 되고 시청률이 높은 프로그램은 시청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겠지만, 반면에 시청률이 낮은 프로그램 시간 동안에는 시청자들로 하여금 다른 채널이나 다른 프로그램으로 유인하는 등 각종 합법적인 수단을 동원할 것이며 급기야 프로그램 줄 세우기를 자행할지도 모른다. IPTV 시행령 및 고시 제정 과정에서 실시간 재전송 채널에 대한 확실한 보호막을 칠 수 있다면, 또는 방송사가 단독으로 운영하는 TV포털 서비스로 일정수준 IPTV 화면의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수익 달성을 명령받고 훈련받아온 그들의 영업전략 앞에서 ‘불특정 다수를 위한 공공적 서비스’로서의 방송 철학을 과연 얼마나 지킬 수 있을지 모를 일이다. 매몰찬 수익성 앞에 단련된 그들의 눈에 방송이 서서히 똠방각하 정도로 보여 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이종화, KBS 방송기술연구소, 공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