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백선하) 제로TV. TV를 보지 않거나 보더라도 전통적 형태의 TV 수상기를 통한 것이 아니라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을 통해 TV를 보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 들어 젊은 층을 중심으로 TV를 보지 않는 이른바 제로TV가구가 늘어나고 있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조사 결과 20대 가구주의 경우 제로TV가구가 15.3%에 달했으며, 국내 이동통신 이용자 중 방송이나 영상 서비스 시청 시 스마트폰을 주 기기로 사용한다고 답한 비율이 20.5%에 달한다는 KT경제경영연구소 설문조사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에 방송기술저널은 제로TV가구의 증가가 어느 정도 선까지 이뤄질지 과연 일각의 주장대로 TV 종말의 시대가 올지 전망해보고 지상파 방송사를 비롯한 방송 업계가 이 같은 미디어 시청 패턴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논의하고자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는 서지희 KBS 플랫폼개발부 부장, 신지형 KISDI ICT 통계분석센터 연구책임자가 참석한 가운데 지난 2월 11일 이후삼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 사회(이후삼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회장) = 최근 들어 미디어 소비 패턴이 변하면서 제로TV가구가 크게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신문지상에 꽤 자주 오르내리고 있는 제로TV라는 단어에 대해 설명한다면.
신지형 KISDI ICT 통계분석센터 연구책임자 |
▶ 신지형 KISDI ICT 통계분석센터 연구책임자 = 미국 미디어 시장 조사업체인 닐슨에서 보고서를 발간하는데 2012년도 4분기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13년 3월에 발표한 <크로스 플랫폼 리포트 2013>에서 처음 소개됐다. TV 수상기 소유 유무에 관계없이 지상파방송을 직접 수신하거나 유료방송에 가입되어 있지 않는 가구를 의미한다. 한 마디로 TV 프로그램의 직간접 수신 없이 방송프로그램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온가족이 TV 앞에 모여서 방송을 시청했는데 요즘에는 꼭 TV가 아니어도 방송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TV를 방송이 아니라 영화 DVD나 게임 등 다른 용도로 활용하고 있다. 제로TV, 제로TV가구 등의 현상이 주목을 받은 게 OTT(Over The Top) 시장이 커지면서 부터다. TV뿐 아니라 스마트폰, 태블릿 PC 등 다양한 스마트 기기들을 이용해 영상 콘텐츠를 즐길 수 있게 되면서 제로TV가 이슈로 떠오른 것이다.
– 사회 = 미국의 시장 조사업체인 닐슨에서 처음 소개됐다는 것은 주로 미국의 미디어 시청 패턴이 많이 반영됐다는 것인데 제로TV 현상이 세계적인 추세인지, 또 우리나라도 미국처럼 제로TV가구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하는지.
▶ 신 연구책임자 = 미국과 우리나라를 1대1로 비교하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유료방송 시장이 어떻게 형성되어 있는가에 따라 각 국가별 제로TV 현상이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먼저 미국에서 제로TV가구가 증가한 배경을 보면 (뒤에서 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유료방송 가격이 자리 잡고 있다. 유료방송 가격이 높기 때문에 유료방송을 해지하거나 가입하지 않고 다른 기기로 방송을 보는 가구들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료방송 가입 가구가 아직도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때문에 젊은 층을 중심으로 미디어 시청 패턴이 변하고는 있지만 미국처럼 제로TV가구가 급격히 증가하거나 ‘코드커팅(cord cutting, 유료방송 가입 탈퇴)’ 현상이 가속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나라 제로TV가구 수는 전체 가구 수 대비 4~5% 정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다만 제로TV가구가 주로 1인 가구, 39세 미만 가구, 애 없는 맞벌이 가구 등으로 구성돼 있어 앞으로 1인 가구가 증가한다면 이에 맞춰 같이 증가하지 않을까라고 내다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서지희 KBS 플랫폼개발부 부장 |
▶ 서지희 KBS 플랫폼개발부 부장 = 넷플릭스의 세계 시장 진출이 비실시간 방송 서비스의 보급이 부진했던 국가에서도 경쟁 사업자의 적극적인 서비스 제공을 이끌어 내면서 시청자들에게 다양한 비실시간 콘텐츠가 제공되고 이러한 서비스가 다시 제로TV 현상을 가속화 시키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넷플릭스는 현재 50개 국가에서 향후 200개 국가까지 진출을 늘리겠다는 공격적인 마케팅 플랜을 발표했고 3월 호주와 뉴질랜드에 이어 가을에는 일본까지 진출할 예정이다. 그런데, 넷플릭스의 가입자 수를 보면 2013년도 4분기 말 5,740만 가구이고, 그 중 3,900만 가구가 미국 내 가구이다.
미국 시장의 코드 커팅의 경우 아시는 것처럼 미국의 유료방송서비스가 매우 고가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넷플릭스가 손쉽게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지만, 국내 유료방송 시장은 가격대가 저렴할 뿐 아니라 이미 국내 시청자들이 IPTV와 디지털케이블 등을 통해 비 실시간 시청 행태에 익숙해져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조금 다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강점은 전 세계적으로 수집된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넷플릭스는 미국 내 콘텐츠뿐 아니라 진출국가에서의 콘텐츠 수집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콘텐츠로 무장한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했을 때 국내 시청자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아직은 미지수이지만, 국내에서 미국과 같은 급격한 시장변화가 나타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 사회 = 두 분 다 우리나라 유료방송 가격이 높지 않기 때문에 미국처럼 제로TV가구가 급격히 증가한다던지 코드커팅 현상이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으셨는데 그렇다면 우리나라 유료방송의 가입비가 갑자기 상승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시는지.
▶ 서 부장 = 가격이라는 게 내성이 있어서 오르고 난 다음에는 시청자들이 익숙해질지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IPTV와 케이블 그리고, 티빙과 같은 OTT 서비스까지 서비스 플랫폼간의 경쟁이 치열하고, 저가형 대체재도 많기 때문에 (유료방송에서) 기존 가입자들의 이탈을 감수하면서까지 가격을 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사회 = 위에 질문과 연장선에 있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는데 최근 우리나라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이 과거 실시간 시청에서 ‘주문형 비디오(Video On Demand, VOD)’ 몰아보기 등으로 변화하고 있다. 이런 미디어 소비 패턴의 변화가 제로TV가구의 증가를 불러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 신 연구책임자 = VOD를 보기 위해 접속하는 경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유료방송을 통해 VOD를 시청하고 있다. 2013년 이전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VOD를 이용하는 가장 큰 매체가 TV로 전체 VOD 시청 시장의 69%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외의 나머지를 데스크톱이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최근 2013~2014년 설문조사를 보면 TV를 통해 VOD를 시청하는 시청자들이 90%까지 올라갔다. 주로 유료방송을 통해 VOD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주로 케이블이나 IPTV를 통해 VOD를 시청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늘어났으면 늘어났지 VOD로 인해 유료방송 가입 수가 더 줄어들 것 같지는 않다.
▶ 서 부장 = 기존의 TV가 방송사가 제공하는 콘텐츠를 시청자가 수동적으로 시청하는 방식이었다면, 앞으로의 TV는 시청자가 자신이 원하는 콘텐츠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방식으로 시청하는 방식으로 변화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콘텐츠 생산자들이 새로운 제로 TV 환경 속에서 콘텐츠에 충분히 투자할 수 있는 수익을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것일 것이며, 소비자의 입장에서는 다양한 양질의 콘텐츠를 어떻게 지속적으로 이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 사회 =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미뤄보면 제로TV가구 증가, 코드커팅 현상의 가속화 등과 같은 주로 미국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미디어 지형의 변화가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다는 것인데 두 분의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해도 되는 것인지.
▶ 서 부장 = 제로TV가구가 미국처럼 급속하게 증가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지, 제로TV 현상이 우리나라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과거 IPTV 도입 당시 지상파 방송사는 위기의식이 높지 않았던 것 같다. IPTV가 방송 산업의 지형을 바꿀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런데 2015년에 이르러 IPTV가 케이블을 위협할 정도로 성장했고 심지어 시청 패턴까지 변화시키고 있다. 제로 TV 현상이 앞으로 시장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올지 보다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본다. 지상파 광고 시장이 지난 2011년 정점을 찍은 이후 3년 연속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다. 실시간 방송의 시청률이 떨어지면서, 광고주들 또한 이러한 시장 변화에 따라 이동하고 있다. 특히 젊은 여성 시청자를 대상으로 한 화장품 광고의 경우 그러한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실시간 방송에 강점이 있는 프로그램이 스포츠인데 이마저도 과도한 중계권료로 인해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다.
▶ 신 연구책임자 = 실시간 방송에 대한 니즈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지상파 방송사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상파 방송사들도 ‘플레이어 K’나 ‘POOQ(푹)’ 등 다양한 사업 모델을 모색하고 있고 결국 이 모든 채널들은 양질의 콘텐츠로 귀결되기 때문에 양질의 콘텐츠 생산이라는 장점을 살린다면 아직까지는 지상파 방송사에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 사회 = 한 가지 더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우리가 지금까지 제로TV현상을 이야기 하면서 젊은 층에 국한되어 있는 현상 정도로 이야기했는데 이 시청자들이 나이가 들면 몇 년 뒤엔 TV의 주 시청층인 40대 이후로 접어들게 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이제 지상파의 시대는 끝났다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데 정말 TV 종말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보는가.
▶ 서 부장 = 제로TV라는 것이 실시간 방송을 TV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지 방송 자체를 보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상파 방송사로서는 시청행태의 변화로 인해 실시간에 대한 주목도가 떨어지고, 수익의 기반이 되는 광고시장이 위협을 받는 것일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콘텐츠의 중요성이 더 강조되는 것 같다. 콘텐츠 홍수 속에서 시청자들이 주목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것. 결국 기존의 콘텐츠에 대한 강점을 지상파가 어떻게 지켜나갈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것 같다.
▶ 신 연구책임자 = 제로TV현상이 유료방송에 코드커팅 등의 영향을 미치겠냐는 질문에는 의문이지만 시청자들의 소비 패턴이 비실시간 동영상 콘텐츠를 선호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청 패턴의 변화가 지상파 방송사에는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양질의 콘텐츠는 시청자들이 VOD를 통해서라도 어떻게든 찾아서 본다. 양질의 콘텐츠 생산이 현 미디어 상황에서 가장 큰 변수라는 것이다. 최근 미디어 소비에 있어서 주목해야 할 가장 큰 부분을 뽑으라면, 미디어 소비가 모바일로도 많이 이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바일 방송에서는 또 어떤 현상으로 진행될 지 아직 아무도 모른다. 결국 양질의 콘텐츠만 제대로 생산해낸다면 시청자들의 시청 패턴이 어떻게 변하든 생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사회 = 우리나라에서 제로TV현상은 유료방송보다는 오히려 지상파 방송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그래도 지상파 방송사에서 생산하는 콘텐츠의 질이 좋다면 이러한 위기 상황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최근 시청 패턴 변화에 따라 모바일 등 다양한 사업 모델을 구축한다면 위기는 오히려 기회가 되는 등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마지막으로 지상파 방송사가 생존을 위해 어떤 방법을 모색하고 있는지.
▶ 서 부장 = 지상파 방송사들은 지상파 콘텐츠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플랫폼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하여 다양한 노력하고 있다. Pooq과 SMR과 같은 지상파 연합 플랫폼들은 그러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HBO go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콘텐츠 브랜드의 가치가 갈수록 중요해 지고 있다. 아무리 좋은 플랫폼일지라도 킬러 콘텐츠가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방송사의 생존 전략은 결국 콘텐츠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경쟁력을 가진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 그리고 그 콘텐츠를 바탕으로 플랫폼의 경쟁력을 지켜나가는 것. 그것이 방송사가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본다. KBS는 더 이상 TV 앞에 앉지 않은 젊은 시청자를 위한 다양한 콘텐츠와 플랫폼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1월 1일에 론칭한 KBS역사포털은 다양한 역사콘텐츠를 24시간 인터넷 실시간 방송과 VOD로 서비스하는 인터넷 기반 서비스로 대한민국 영상 역사 교과서로서 학생과 지식층을 공략하고 있다. 지난 2월 9일에는 다음카카오와 웹드라마 육성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 KBS는 젊은 층에 소구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 생산을 지원하고 다양한 신규 플랫폼을 육성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