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보는 TV에서 듣는 TV로”

“이제 보는 TV에서 듣는 TV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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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술저널=백선하) “좋은 음향이란 단순히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소리를 보고 있는 것 같이 시각화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좋은 음향이라고 말할 수 있다.”

김성영 미국 로체스터 공과대학교 교수는 1월 16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 5층 국제회의실에서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주최로 열린 ‘미래 음향 및 국제 중계 기술 세미나’에 강연자로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이날 김 교수는 ‘미래 공간 음향에 관한 고찰 : 몰입감, 상호성, 그리고 적응’이라는 제목의 강의를 통해 좋은 음향이란 무엇이고, 현재 음향 기술은 어떤 식으로 발전하고 있는지 그리고 미래 음향 기술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강의를 진행하기에 앞서 참석자들에게 음향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듣느냐(How to listen)’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붉은색과 파란색의 가리킨 뒤 “시각은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누구나 붉은색 또는 파란색을 구분할 수 있지만 소리는 그렇지 않다. 지금 내가 ‘아~’라고 소리를 냈을 때 이 소리가 소리 전체 스펙트럼에서 어느 정도에 해당하는지 바로 구분할 수 없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음향 전문가들은 남들이 듣지 못하는 것을 크리티컬(critical)하게 들을 수 있도록 듣는 훈련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본격적으로 진행된 강의에서는 소리를 시각화할 수 있을 때 더 좋은 소리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뇌파 측정 결과를 공개하면서 “모노(mono) 사운드를 들려줬을 때와 서라운드를 들려줬을 때 알파파에 큰 차이가 있다”며 “좋은 서라운드였을 때 뇌파를 보면 시각적으로 봤을 때만 반응하는 부분이 훨씬 크게 나타난다. 이 말은 즉 좋은 서라운드는 단순히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마치 보고 있는 것과 같은 효과를 준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즉 단순한 모노 사운드에서 스테레오(stereo) 사운드 여기서 더 발전된 서라운드 시스템으로 발전할수록 사람들이 소리를 시각화해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5.1채널에서 22.2채널까지”

그는 이어 “일각에서 아직 5.1채널도 제대로 도입되지 않고 있는데 7.1채널, 10.1채널, 22.2채널까지 발전할 수 있느냐, 현실적이지 않다는 주장을 하는데 사람의 귀가 생각보다 적응력이 뛰어나 22.2채널까지 듣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최근 젊은 층에게 5.1채널 나아가 마니아들은 7.1채널까지 낯설지 않다. 초고화질(UHD) TV가 상용화되면서 광고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는 5.1채널은 음원이 5.1개인 오디오 시스템을 말한다. 5개의 음원이란 청취자를 중심으로 중앙, 전반부 좌우, 후반부 좌우 등 5개의 음원과 저음을 보강하기 위한 서브 우퍼(0.1)를 통칭하는 것으로 전체 음향 신호를 분리해서 각각 독립된 5개의 스피커와 서브 우퍼로 출력한다.

심지어 지난해 KBS는 소치동계올림픽을 5.1채널 돌비 서라운드 음향으로 중계하기도 했다. 좌, 우, 중앙, 좌후방, 우후방, 저음 우버 등 총 6개의 스피커를 이용해 청취자가 마치 경기장에 있는 듯한 현장감을 극대화시켰다. KBS 관계자는 “소치동계올림픽뿐만 아니라 이전 몇몇 월드컵과 올림픽도 5.1채널로 중계한 적이 있는데 최근 5.1채널 음향 시스템을 갖춘 기기를 많은 가정에서 가지고 있어 더 많은 시청자들이 실감방송을 시청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1881년 파리 엑스포에서 최초 오디오 방송이 전화선을 통해 전달됐을 때 많은 사람들이 어매이징하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지금 우리가 그 소리를 듣는다면 같은 반응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사람의 귀는 적응력이 뛰어나서 우리가 5.1채널이나 7.1채널, 10.2채널 등을 한 번 들으면 그 아래 레벨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에 음향 기술이 발전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미래 음향의 핵심은 height-채널”

미래 음향의 또 다른 키워드는 height-채널이다. 마치 TV 속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강한 몰입감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height-채널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국내에서 개발해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 차세대 방송을 위한 8개의 오디오 기술 표준 중 하나로 최종 승인된 10.2채널이 바로 그것이다. 10.2채널은 인체를 기준으로 머리 위, 귀 높이, 바닥의 입체 음향을 제공한다.

김 교수는 “5.1채널에서 (머리) 위에 2개 채널을 추가한 7.1채널부터 height-채널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일본이 height-채널을 가장 많이 활용하고 있는데 NHK뿐만 아니라 피겨스케이팅 경기장을 보면 장내 스피커가 천장에 있는데 이럴 경우 실감나는 몰입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height-채널을 가장 활발하게 활용하고 있는 일본 NHK는 오는 2020년 HD보다 16배 높은 화질의 8K(7680×4320) 방송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바로 이 8K 방송에서 22.2채널의 서라운드 음향을 제공할 수 있다고 한다. 미래 음향이라고 불리는 22.2채널은 청취자의 귀를 중심으로 위쪽에 9개, 귀 높이에 10개, 바닥에 5개 등 총 24개 방향에서 소리가 들리게 하는 첨단 서라운드 음향 기술이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미래 음향은 결국 다양한 방향에서 많은 스피커를 쓰는 것인데 문제는 마케팅 하는 입장에서 보면 누가 그 많은 스피커를 사겠느냐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그렇기 때문에 가상으로 재생하는 방법과 공간을 재현하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공간 재현은 주목할 만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미래 음향은 일방적이어서는 안 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액티브 어쿠스틱’ 즉 듣는 사람이 주체적으로 자기가 있는 공간 자체를 TV 속 공간으로 바꿔줘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말하는 액티브 어쿠스틱이란 이미 큰 공연장에서는 많이 사용되고 있는 방법으로 각각의 공연장에서 소리의 반응을 측정해 가정에서도 같은 음향 환경을 재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이 방법은 아직까지 연구 중인 부분으로 현재 방송에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부분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김 교수는 미래 음향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방향은 액티브 어쿠스틱으로 청취자가 주체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이 돼야 한다고 강조해 참석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한편 KBS 라디오기술국 출신인 김 교수는 지난 2001년 캐나다로 건너가 맥길대학교(McGill University)에서 사운드 레코딩 전공 석·박사 과정을 마쳤으며, 일본 (주)야마하 선임연구원을 거쳐 현재는 미국 뉴욕 로체스터 공과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