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백선하) 지상파 방송사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주파수를 활용해 UHD 방송을 할 수 있다는 일부 언론 보도 내용이 왜곡된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 언론들은 최성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지난 19일 오전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진행된 한국IT리더스포럼 강연에서 “700MHz 등 새로운 주파수를 배정하지 않고 지상파가 기존 주파수를 효율화해 UHD로 쓰는 방법도 있다”고 발언했다며 700MHz 대역 주파수 할당 없이도 지상파 UHD 방송을 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같은 보도 내용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최 위원장의 발언 내용이 왜곡 보도되었을 뿐 아니라 700MHz 대역 주파수 할당 없이 지상파 UHD 방송을 할 수 있다는 보도 내용도 잘못된 것으로 나타났다.
최 위원장은 이날 ‘기존 주파수를 효율화하는 방법을 들은 바 있다’, ‘기술 발전으로 기존에 쓰던 주파수를 내놓을 수도 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최 위원장이 말한 ‘기존 주파수를 효율화하는 방법’은 새로운 신기술이 아닌 이전부터 지상파 방송사에서도 검토해 온 기술이고, ‘기술 발전으로 기존 주파수를 내놓을 수도 있다’는 내용 역시 지상파 방송사들이 <국민행복700플랜>을 통해 제시한 내용이라는 점이다.
한 KBS 관계자는 “(이들 언론에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하 ETRI)의 ‘디지털 방송 중계 장비(지상파 DTV 분산 중계기)’를 신기술인 것처럼 보도해 700MHz 대역 주파수 할당 없이 지상파 UHD 방송이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은 명백한 오보”라며 “기사에 언급된 지상파 DTV 분산 중계 기술은 이미 수년 전부터 ETRI와 지상파 방송사에서 검토했으나 기술적 한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현재 지상파 디지털 전송 방식은 미국식인 ATSC 방식이다. 유럽식인 OFDM 방식은 다수 캐리어 전송 방식이기 때문에 ‘단일주파수망(SFN)’ 구성이 가능하지만 미국식인 ATSC 방식은 단일 캐리어 방식으로 다수의 주파수를 사용하는 ‘다중주파수망(MFN)’으로 구성해야 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미국식인 ATSC 방식은 MFN으로 중계기에서 F1의 주파수를 받으면 F2라는 주파수로 변환해 전파를 쏴아 혼선이 없는데, 유럽식인 OFDM 방식은 SFN으로 중계기에서 F1의 주파수를 받아 그대로 F1의 주파수로 전파를 쏴도 혼선이 없다는 것이다. 당연히 주파수를 바꾸지 않아도 되는 SFN 구성이 효율성이 높다.
그런데 ETRI가 2009년 개발한 지상파 DTV 분산 중계기를 도입하면 미국식인 ATSC 방식에서도 SFN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주파수를 효율화해 기존 주파수에서도 지상파 UHD 방송을 할 수 있다. 이것이 ETRI와 일부 언론의 주장이다.
하지만 조사 결과 ETRI의 지상파 DTV 분산 중계기를 도입해도 기존 주파수로 지상파 UHD 방송을 하기에는 기술적 한계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먼저 ATSC 방식에서 SFN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ghost 간섭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ghost 간섭은 정상적으로 수신되는 상 이외에 유령과 같이 희미한 상이 여러 겹 겹쳐 TV 화면에 나타나는 것으로 수신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발생한다. TV의 ghost 특성을 감안하면 ATSC SFN 구성이 가능한 커버리지는 약 3~4 Km 정도 수준이다. 물론 최근 기술 발전으로 ghost 처리 능력이 높은 TV들이 나오고 있지만 과거 TV 수신기와의 혼선 문제도 있어 완벽한 ATSC SFN 망 구축은 기술적으로 어렵다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ATSC SFN을 구성한다면 상당수 가구에서 TV를 보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또 미국 일부 지역에서 ATSC SFN을 적용하고 있다는 주장 역시 보도 내용과는 사정이 다른 것으로 조사됐다. 올 3월 기준으로 미국 8개주 14개 방송국에서 SFN을 구축해 운영 중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들 방송국의 출력을 확인한 결과 수십 km 거리에서 대출력으로 송신하는 사례는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처럼 평야나 사막지대가 아닌 산악지형 위주인 우리나라에서 소출력이 아닌 대출력으로 송신해야 지상파 UHD 방송의 경우 기술적 한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분산 중계 기술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간 분산 송신 기술의 경우도 표준 변경 문제가 있고, 운용비용도 높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분산 송신 기술의 경우 현재 표준 채택을 위해 제안 중인 기술로 아직 채택 여부가 불명확하다. 뿐만 아니라 표준으로 채택이 되더라도 현재 디지털 방송을 하고 있는 주파수 대역의 재배치가 필요하기 때문에 디지털 전환 과정과 같은 과정을 또 한 번 겪어야 한다.
SBS 관계자는 “(분산 송신 기술을 적용한다는 가정 아래) 현 DTV 대역에서 UHD 방송을 하기 위한 주파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송·중계소 장비를 분산 송·중계기로 개조 또는 교체해야 하고, 전국 단위의 채널 재배치도 필요하다”며 “이 경우 아날로그 방송 종료와 채널 재배치로 인해 불편을 겪어야 했던 시청자들이 동일한 불편을 또다시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비용적인 부분도 만만치 않다. 전국 단위의 송·중계소 장비 교체에 약 3000억 원 이상의 비용이 들어가고, 채널 재배치에도 추가로 비용이 들어가야 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쉽게 말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표준으로 채택된다는 가정 하에 지적된 부분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볼 때 ATSC 방식에서 SFN 적용을 통한 주파수 효율화의 가능성은 무척 낮다고 볼 수 있다. 기존 주파수 대역을 활용한 지상파 UHD 방송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에도 불구하고 일부 언론은 700MHz 대역 주파수 할당 없이 지상파 UHD 방송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왜곡 보도에 흔들리지 않고 어떻게 하면 공공의 재산인 주파수를 공익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방통위의 진지한 태도가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