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방송 무료로 보세요”

“디지털 방송 무료로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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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12월 31일이면 디지털 방송으로 전환되는 거 아시죠? 무료 체험 기간이 있으니깐 그동안 디지털 상품 써보시고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위약금 없이도 해지할 수 있으니깐 한 번 사용해 보세요.”

무료 체험을 미끼로 고객을 유인한 후 자동으로 유료 고객으로 전환하는 영업 상술로 인한 소비자들의 피해가 나날이 늘고 있다.

최근 한 종합유선방송사업자로부터 무료 체험 서비스를 받은 서울 광진구의 김복진(68) 씨는 며칠 전 청구서를 받아보고 깜짝 놀랐다. 무료 체험 기간이 끝난 줄 모르고 있다가 자동으로 요금이 부과된 것이다. 김 씨는 “무료 기간 중 서비스 해지를 요청하려 했는데 연락이 잘 안 돼 계약이 저절로 해지된 줄 알았다”면서 분통을 터뜨렸다.

이처럼 무료 체험 서비스 권유에 덜컥 동의했다가 뜻하지 않게 낭패를 보는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케이블TV나 위성방송, IPTV 등 유료 방송 서비스 거래에 있어 계약 해지 후에도 요금이 청구되거나 결합상품을 이용하던 중 어느 하나의 결함으로 계약해지를 요구해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 심지어는 소비자의 동의 없이 유료 상품으로 가입돼 있는 경우까지 디지털 전환을 앞두고 유료방송 서비스 관련 피해가 점점 빈번하게 일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원 부산본부는 지난 2009년 1월부터 올 6월까지 접수된 유료 방송 서비스 관련 피해구제 457건을 분석한 결과, 가입자를 늘리기 위한 업체들의 과잉 경쟁이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IPTV 등의 성장세에 각축전이 되어 가고 있는 유료 방송 시장에서 디지털 방송 가입자 확보를 위해 디지털 전환이라는 이슈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영업에 업체의 사활을 걸고 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유료 방송의 꼼수에 걸려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히 다수의 피해자들이 50대 이상의 노인들과 저소득층으로 이들은 ‘2013년부터 TV를 볼 수 없다’는 영업 직원의 말을 단순히 믿은 경우가 많다.

대다수 노인들과 저소득층의 경우 유료 방송에 가입하지 않더라도 안테나나 컨버터를 이용해 방송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를뿐더러 디지털TV를 새로 구매해야 한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어 직접 찾아와 설명해 주는 유료 방송 영업 직원들의 말을 더 믿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이를 막을 만한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방송통신위원회는 관련 업체들을 대상으로 경고와 주의 조치를 취하고, 일부 업체에 한해 과징금 처분을 내리고 있으나 사실상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그런지 소비자들의 피해는 전혀 줄지 않고 있다.

방통위 입장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다. 처벌을 하려면 명백한 근거 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무료 체험 서비스’와 같은 경우는 구두 계약인 상황이 많아 처벌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소비자원 측에서는 “구두 계약의 경우에도 계약서를 따로 챙겨야 하고, 계약 시에도 약관 내용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하지만 피해자 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노인들의 경우 계약서는 물론이고 깨알 같은 글씨로 채워져 있는 약관까지 챙겨보기 힘들기 때문에 당분간 유료 방송 서비스 계약으로 인한 피해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