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스마트TV와 보이스톡 차단을 계기로 망중립성 논란이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KT가 이르면 다음 달부터 DPI(Deep Packet Inspection)를 통한 망 관리를 시작한다고 알려져 이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DPI란 심층패킷검사의 줄임말로 특정 서비스를 차단할 수 있는 침입 차단 시스템(IPS)과 패킷 내용을 살펴볼 수 있는 침입 탐지 시스템(IDS) 기능을 모두 보유한 장비다. 다시 말하자면 망 관리자인 통신사가 패킷을 관찰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패킷(Packet)이란 일반적으로 망을 통해 주고받는 이메일이나 금융거래, 카카오톡 등의 내용을 작은 단위로 쪼개 놓은 데이터다.
현재 KT와 SK텔레콤은 3G와 LTE 등 이동 통신망에 DPI 시스템을 도입해 운용 중이며, LG유플러스도 LTE 망에 이어 올 하반기에는 3G 망에도 DPI를 적용할 계획이다. 특히 17일자 <전자신문> 보도에 따르면 KT는 올 하반기부터 이동 통신망에 이어 초고속 인터넷망에도 DPI 시스템을 적용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으로 트래픽 문제가 나타나면서 통신사들은 mVoIP 등에만 이 기술을 제한적으로 적용해왔는데 망 중립성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자 이제 전체적인 망으로 적용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이들은 DPI를 통한 망 관리로 소수의 ‘헤비 유저’를 관리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문제는 DPI란 기술 자체가 사생활을 침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DPI 기술은 패킷의 패턴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필요한 경우 어떤 내용인지까지 분석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일반인들의 메일 내용, 무선인터넷 전화 내용, 카카오톡 내용 등을 엿볼 수 있고, 자사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으로도 이용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제도적 보안 대책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이에 시민단체와 콘텐츠 업체들은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DPI 기술은 모니터링이라는 기능도 있지만 데이터 내용의 차단이나 조작으로 사생활을 침해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통신사들은 사생활 침해를 할 수 없다며 반박하고 있지만 시민단체에서는 “DPI 기술로 패킷의 전송 주소를 알 수 있기 때문에 결국 통신사가 누가 누구에게 편지를 보냈는지 알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그 전송 여부 자체도 결정할 수 있다”며 통신사의 반박을 일축했다.
하지만 지난주 방송통신위원회가 내놓은 ‘통신망의 합리적 관리 및 이용에 관한 기준안’은 우선 통신사들의 주장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어 통신사에 힘을 실어주는 형국이다. 공평한 인터넷 이용환경을 보장하기 위해선 통신사가 트래픽을 관리할 수 있다고 명시했기 때문이다.
이에 콘텐츠 업계와 시민단체 측에서는 방통위가 한쪽으로 치우친 결정을 내리기 보다는 중립적인 입장에 서서 망중립성에 대한 개념부터 정립한 뒤 제도 개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 주파수까지 욕심을 내고 있는 통신사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 전에 먼저 통신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주파수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있는지를 분석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다.
트래픽 관리를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스마트 기기 보급으로 트래픽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과 비용 분담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통신업계 뿐만 아니라 콘텐츠 업계, 시민단체 모두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통신사가 주파수 관리를 효율적으로 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사회 모두가 공감하는 망중립성 기준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현재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방통위가 DPI 기술로 인한 ‘2차 망중립성 공방전’이 시작된다면 과연 중립에 서서 다양한 목소리를 받아들일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