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미디어법 유효” 판결 … 야당 강력 반발

헌재 “미디어법 유효” 판결 … 야당 강력 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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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29일 민주당 등 야당 의원 93명이 김형오 국회의장과 이윤성 국회부의장을 상대로 낸 권한쟁의 심판 청구에 대해 신문법과 방송법의 효력은 유효하다고 결정했다. 헌재는 거대 신문사와 재벌의 방송 진출을 허용하는 내용의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야당 의원들의 심의․표결권을 침해하는 절차적 문제가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법안의 효력은 유효하다고 밝혀 결과적으로 정부와 한나라당의 손을 들어준 모양새가 됐다.  


한나라당은 헌재의 판결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히며 언론 선진화를 위한 후속 조치 추진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하지만 민주당 등 야권은 이번 헌재의 판결이 명백한 정치적 판결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언론․시민․사회단체 역시 절차적 위법성의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법통과를 인정한다는 헌재의 논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며 강력 대응할 방침을 천명하고 있다.


미디어법 강행처리 후 뜨거운 논쟁이 됐던 대리투표는 결국 사실로 인정됐다. 이강국 헌재소장 등 재판관 5명은 방송사 화면 등을 살펴본 결과 여야 의원들이 모두 대리투표를 했으며, 전자투표 로그기록 등을 살펴봤을 때 신문법 표결이 정상적인 상황에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헌재는 또 5대 4의 표차로, 방송법 첫 표결 시 의사정족수 부족으로 표결이 무산된 것을 국회부의장이 재투표에 부쳐 가결한 것은 ‘일사부재의 원칙’에 어긋나는 행위라고 판결했다. 조대현 재판관 등 다수는 “법 통과 당시 본회의 사회를 맡은 국회 부의장이 “표결 종료”를 선언했다가 의결정족수가 미달하자 다시 투표를 했는데 이미 부결된 법안을 재의한 것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대리투표와 재투표 문제뿐만 아니라 신문법 투표 직전 의원들의 질의․토론 절차를 생략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 소장 등 다수의 재판관은 법안 가결과정에서 질의․토론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심의․의결권 침해’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헌재는 권한쟁의 심판에서 문제점을 지적하는 수준에 머무름으로써 해당 기관의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논리를 부각시키며 공을 국회로 돌렸다. 다수결 원칙이나 회의공개 원칙 같이 헌법에 명시된 규정을 어긴 것이 아니라면 법률 수준의 국회법을 어겼다고 이미 통과된 법률을 무효라고 결정지을 권한이 헌재에 없다고 본 것이다.


한나라당은 헌재의 미디어법 효력 인정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조해진 한나라당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헌재의 이번 결정은 의회의 자율성을 존중해온 전통적 입장을 견지한 것”이라며 “이번 결정으로 미디어법 통과에 대한 위헌 시비의 근거가 사라진 만큼 야당은 더 이상 정략적 공세를 그만둬야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아직까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지만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등 야권은 헌재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이날 열린 의원총회에서 “헌재 스스로 존재 의의를 부정한 결정”이라며 “이를 교정하지 않고 넘어가면 앞으로 국회 내에서 어떤 불법 행위를 해도 넘어가는 상황이 일어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주당은 “일사부재의 원칙 위반, 대리투표 등 절차적 위법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법 개정이 필요하다”며 미디어법 재개정 협상을 추진하면서 원내외 병행투쟁도 벌이겠다는 각오다.


한편 판결의 부당성을 제기하며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하는 의원도 추가로 나왔다. 앞서 정세균․천정배․최문순 의원이 미디어법 날치기 처리에 항의하며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한 바 있다. 장세환 민주당 의원은 “야당 의원들의 입법권이 침해됐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부당한 처사”라며 의원직 사퇴서를 제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