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술저널 백선하 기자] 지상파 방송사와 유료방송 사업자 간 재송신 갈등으로 방송 중단 등의 문제가 예상될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직권으로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인 직권조정 조항이 삭제된 방송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지상파 방송사 측은 ‘방송 유지 재개 명령권’이 유지됨으로써 정부가 언제든지 시장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겼다며 불만을 나타냈고, 반대로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직권조정 및 재정 제도 조항이 삭제되면서 방통위의 중재 기능이 힘을 발휘할 수 없게 됐다며 반발했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는 11월 18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직권조정과 재정 제도를 삭제한 방송법 개정안 절충안을 통과시켰다. 또 그동안 애매하다고 지적된 ‘방송 중단 임박 시’라는 표현을 ‘사전 통지된 경우’로 바꾸기로 했다. 이에 따라 방통위는 지상파 방송사와 유료방송 사업자 간 협상이 불발돼 방송이 중단될 경우 30일 내에 방송 재개를 명령할 수 있는 ‘방송 유지 및 재개 명령권’만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앞서 방통위는 지난 4월 21일 △직권조정 △재정 제도 △방송 유지 및 재개 명령권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 개정안을 확정했지만 업계와 학계,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정부의 직접적인 시장 개입이 시장 조정보다는 사업자 간 협상을 저해함으로써 특정 사업자의 이익으로 작용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직권조정은 지상파 방송사와 유료방송 사업자 간 재송신 협상 과정에서 방송 중단 등의 문제가 예상될 경우 방통위가 직권으로 방송분쟁조정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로 당사자 신청 없이도 개시가 가능하고, 재정 제도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등 보편적 시청권 관련 분쟁의 경우 방통위가 직접 협상에 관여하는 것으로 준사법적 절차라고 볼 수 있다.
당시 한국방송협회를 비롯한 업계 관계자들은 “방통위가 추진하려는 방송법 개정안은 민주주의의 질서를 훼손하고 사업자의 사업권 및 영업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문제를 더 어렵고 꼬이게 하는 방안일 뿐”이라며 반대 의사를 표하고,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재송신 협상은 사업자 간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았지만 방통위는 방송법 개정안 추진을 강행했다.
이에 대해 방송협회는 성명서를 통해 “방통위는 방송 사업자 간 분쟁을 효율적으로 해결해 월드컵, 올림픽 등 국민 관심 행사에 대한 국민의 안정적인 시청권을 보장하겠다며 방송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지만 지상파 방송사는 시청권을 훼손한 일이 없다”며 방송법 개정안의 철회를 거듭 촉구했다.
이어 “현재 주요 지상파 방송사와 인터넷TV(IPTV) 3개사,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 5개사의 재송신 계약 기간은 이미 모두 종료됐지만 채널 공급은 중단되지 않고 있으며 일부 협상도 진행 중인데 방통위가 추진 중인 방송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협상은 아예 불가능하게 된다”며 “규제를 철폐하겠다는 현 정부의 기조 아래서 어떻게 정부의 시장 개입을 확대하는 이 같은 법안이 나오게 됐는지 전체적인 정책의 일관성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고 의문을 표했다.
또한 KNN, 부산MBC, 대구MBC 등 지역방송사장협의회도 성명을 내놓고 “정부가 재송신 영역에 강제 개입하면 자율적인 재송신 질서와 운영 원칙을 무너뜨리고 유료 플랫폼 사업자들의 협상 지연 및 협상력 강화만을 만들어내 경영 환경이 열악한 지역 방송사에 미치는 피해는 막심할 것”이라며 “규제기관의 불합리한 사적 계약 개입과 이를 통한 지역 방송 고사 정책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지상파 방송사 측의 요구대로 직권조정 및 재정 제도 조항이 삭제된 방송법 개정안이 이번 법안소위를 통과했지만 지상파 방송사는 여전히 정부의 과도한 개입이 우려스럽다는 입장이다. 지상파 방송사 관계자는 “직권조정과 재정 제도가 없어졌지만 방송 유지 및 재개 명령권은 여전히 남아 있다. 지상파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반면 정부의 개입을 환영했던 케이블 방송사 등 유료방송 사업자들은 “방송 사업자들 간 협상이 원활하지 않을 경우 시청권 보호를 위해 정부가 개입해야 하는데 직권조정 등 핵심 조항이 빠진 방송법 개정안으로는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며 “국회가 지상파 방송사들의 압박으로 형식적인 법안 심사를 진행했다”고 반발하고 있어 방송법 개정안을 둘러싼 귀추가 주목된다.